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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15 20:53 수정 : 2013.02.16 15:03

양대 경제지인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는 지난 1~5일 각각 ‘자본시장 독버섯 고발한다’ ‘폭주 언론 매일경제를 고발한다’는 제하의 시리즈 기사를 앞다퉈 내보냈다. 하지만 시리즈 기사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중단됐고, 결국 웬만해선 서로 딴죽을 걸지 않는 한국 언론의 ‘침묵의 카르텔’이 여전히 공고하다는 것만 재확인시켜줬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전체 언론에 불명예 남긴 ‘그들만의 명예전쟁’
[토요판] 뉴스분석 왜?/ 매경-한경 싸움의 전말

▶ “왜 자꾸 싸움을 부추기세요? 여기까지만 합시다.” 자사의 입장을 한 줄이라도 더 기사에 넣어달라며 전화를 하던 <매일경제>와 <한국경제> 관계자들이 며칠 만에 갑자기 태도를 바꿨습니다. 사이좋게 변덕이라도 끓여드신 걸까요?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싸움구경, 그 흥미진진한 싸움 좀 더 봅시다. “독자님들, 이것 좀 보세요. 이게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이랍니다.” 헐, 그런데 깜빡했네요. 저도 그중 한 명이란 걸….

양대 경제지인 <매일경제>(매경)와 <한국경제>(한경)가 1~5일 기사라기보다는 격문에 가까운 표현까지 써가며 전면전을 벌였다.(<한겨레> 6일치 16면) 공고한 ‘침묵의 카르텔’을 한 방에 깨버린 이 사건은 한국 언론사라는 맥락에서 봐도 매우 뜻밖의 사건이었다. “두 신문은 오십보 백보”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고, 이를 시발점으로 해 경제지들의 치부가 더 드러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그런데 예고됐던 매경 대 한경의 ‘2차 대전’은 끝내 벌어지지 않았다. “폭주언론 매경을 고발한다”는 제목으로 시리즈 기사를 예고했던 한경도, “법적 조처와 대응 기사”를 운운했던 매경도 웬일인지 입을 꾹 닫았다. 왜 갑자기 싸움을 멈췄을까? 이번 사건은 단순히 경쟁 매체끼리의 ‘복수 혈전’에 불과한가?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자.

종편 내용에 청와대도 부담스러워했다?

우선 겉으로 드러난 사건의 진행 과정은 이렇다. 한경은 1일치 4면 ‘인사청문회 공포’ 기사에서 장대환 매경 회장이 2002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받았지만 탈세와 위장전입 등 여러 의혹이 제기돼 낙마한 사실을 사진을 써가며 전했다.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의 자격 논란에 따라 과거 사례를 짚은 기사다. 그러자 매경은 2일 1면 머리기사와 7면 한 면을 털어 “자본시장의 독버섯을 고발한다”며 한경의 자매 매체인 <한국경제티브이>의 전 피디와 이 방송에 출연한 증권전문가의 주가조작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응수했다. 이에 한경은 복수라도 하듯 5일 매경을 “폭주언론”으로 규정하며 “광고·협찬을 하지 않으면 무차별 보복 기사를 쓰는 매경의 행태”를 1면 머리기사와 6면 한 면을 통해 전했다.

치고받기가 왜 시작됐는지에 대해 두 신문은 각각 정당한 동기에서 비롯됐다며 엇갈린 주장을 했다. 한경 쪽은 “사주인 장 회장을 건드린 것을 도발로 규정한 매경이 개인의 주가조작 사실을 한경 전체의 문제로 몰고가는 악의적 기사를 썼다”고 주장했다. 매경 쪽은 “검찰 수사로 드러난 한경티브이의 주가조작 사실을 보도하자 한경이 ‘제목을 바꿔 달라’는 등의 요구를 했다. 이를 들어주지 않자 보복하려고 허위 기사를 쓴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후 매경과 한경은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 “막가자는 것이냐”며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한경은 당장 ‘매경 고발 2탄’을 내보낼 태세였고, 매경 역시 기사로 역공에 나서고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도 할 분위기였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는 열리다 말았다. 서로 “자본시장의 독버섯”, “언론이길 포기한 작태”라며 으르렁대던 매경과 한경은 6일부터는 휴전 협정이라도 맺은 듯 후속 보도를 하지 않았다. 법적 조처도 뒤따르지 않았다. 짧은 전쟁의 대명사 격인 ‘6일 전쟁’(1967년 3차 중동전쟁)보다 하루 짧은 ‘5일 전쟁’으로 마무리된 셈이다.

한경은 매경 고발 시리즈를
4회 분량으로 준비했지만
2회가 나가기로 한 날 갑자기
기사가 전면광고로 대체됐다
격문을 써가며 으르릉거리던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웬만해선 서로 딴죽 안 걸던
침묵의 카르텔이 잠깐 깨지며
언론계 치부가 드러나버렸다
그러나 후속보도를 하지 않으며
서로를 비난한 기사의 목적이
사사로운 복수였음을 드러냈다

서양원 매경 경제부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경제지끼리 이전투구하는 것으로 비쳐 부담스러웠다. 또 한경의 질 낮은 싸움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는 내부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서 부장은 법적 대응에 대해서도 “앞으로도 한경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그때 (소송을) 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김수찬 한경 기획부장은 “우리는 매경이 한 만큼 갚아주려고 했는데, 매경이 꼬리를 내렸기 때문에 후속 보도를 안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리즈를 예고하고 기사를 내보내지 않는 것은 독자와의 약속을 어긴 것 아니냐”는 물음에 “독자들에게 죄스럽지만, 계속 싸우는 것도 (독자들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한경은 매경을 고발하는 시리즈를 4회 분량으로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회는 매경이 분양 사업을 하다 손실이 나자 이를 참여 기업들에 떠넘겼다는 의혹에 관한 것이고, 3회는 매경이 광고 유치를 위해 기업들을 압박했다는 의혹에 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4회는 장대환 회장과 후계 구도에 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경 관계자는 “2회가 나가기로 돼 있던 6일 오후 갑자기 국장이 기획을 총괄하던 티에프팀장(경제부장)을 찾았고, 결국 그날 기사는 전면 광고로 대체됐다”고 전했다. 그는 “다음날에도 기사를 내보내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종편 관련 내용이 들어가니 청와대에서도 부담스러워 알아본 것 같더라”고 말했다.

결국 전면전은 더 싸워서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것으로 끝난 셈이다.

기업들의 피로감, 기자들의 자괴감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면서 두 신문 말고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애를 태운 쪽이 있었다. 바로 기사로 압력을 받아 광고나 협찬을 한 것으로 거론되는 기업들이다. 한 기업 홍보실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한 질문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판이다. ‘노코멘트’ 하고 싶다”며 손사래를 쳤다. 서양원 매경 부장은 “5일치 한경 기사에 언급된 기업들이 전화를 해 되레 ‘우리 회사와는 관련이 없다. 한경 쪽에 항의를 하겠다’고 해명을 하더라”고 전했다. 두 유력 경제지가 서로 치부를 들추며 싸울 때 가장 속이 탄 것은 혹시 꼬투리를 잡힐까 걱정하는 기업들이었던 셈이다.

일부 기업은 “경제지들의 횡포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두 신문이 서로 헐뜯으며 흘린 내용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부 기업은 기사를 수단으로 한 광고·협찬 요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종합일간지 등도 마찬가지라며 그들이 직접 겪거나 들은 얘기를 전해줬다.

기업들이 말하는 사례는 이렇다. ㄱ신문은 지난 1월 말 ㅋ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연달아 세 차례 실었다. ‘양심도 없는 ○○사’라는 제목까지 달았다. 관련 업계에서는 ㅋ사가 ㄱ신문의 광고나 협찬에 적극 응하지 않아 당했다는 말이 돌았다. ㄴ신문은 지난해 11월 말, ㅁ사 유제품에서 2011년에 식중독균이 발견됐고, 이 회사가 국외 주류사업에도 손을 대는 것에 대한 원성이 높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한 기업 관계자는 “1년도 더 된 이야기를 묶어서 새삼스레 기사로 쓰는 것은 광고를 달라는 노골적인 요구”라고 말했다.

대선이 끝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하자 인수위원들과의 인연을 내세워 광고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ㄹ사 관계자는 “인수위가 구성된 뒤 경제 매체 두 곳이 연락을 해왔다. 모두 ‘인수위 실세를 아는데, ㄹ사가 속한 업계 관련 정책이 반영되도록 할 수 있으니 앞으로 잘 협조하라’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광고·협찬을 잘해달라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기업이 경쟁 언론사의 취재에는 협조하고 자사에는 그러지 않으면 보복성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다. 2010년 ㄴ신문의 계열 매체가 ㅎ사 회장의 단독 인터뷰를 싣자, 한 경제지가 이튿날 ‘ㅎ사의 황제 경영’을 비판하는 기사를 쓴 사례는 기업들 사이에 유명하다.

기업 쪽에서는 요즘에는 작은 인터넷 매체들까지 심한 압박을 한다고 말한다. ㅅ사 관계자는 “예를 들어 <한겨레>가 단독으로 어떤 회사의 비리를 파헤친 기사를 쓴다고 치자. 그 뒤엔 ‘장’이 선다. 군소 인터넷 언론까지 전화를 해 ‘광고 안 내놓으면 한겨레 기사를 받아 인터넷에 도배하겠다’고 협박하는 식”이라고 하소연했다.

기자들도 이런 현실에 자괴감을 토로한다. 한 경제지 기자는 “기업에 협찬이나 광고를 요구했는데 잘 안 들어주면 윗선에서 출입 기자에게 전화를 한다. ‘해당 기업에 대해 문제삼을 기삿거리를 찾아내라’고 하는데, 이때 위에서 요구하는 아이템(기사 소재)을 잘 물어오면 유능한 기자가 되고, 못 물어오면 무능한 기자가 된다”고 말했다. 다른 경제지 소속 기자도 “우리 신문이 어떤 행사를 기획하면 기업별로 표를 할당해준다. 결국 기자가 출입처에 표를 강매하는 셈”이라고 전했다.

휴전하려면 최소한의 명분은 필요했는데…

매경과 한경의 전면전에서 주목해야 할 또다른 측면은 언론들 사이의 ‘침묵의 카르텔’과 때때로 이조차 무력하게 만드는 자사 이기주의다. 이번 사건이 언론계 안팎에서 관심을 모은 것은 그동안 언론사들이 동종 업계의 비리나 윤리 문제에 대해 관대했기 때문이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나 미디어 전문 매체 등이 언론에 대한 감시 구실을 하지만, 언론사들의 상호 비판 문화는 뿌리가 약하다. 언론사와 기자의 부당한 금품 수수 등은 거의 기사화되지 않는다. 언론사주 문제는 더더욱 기피된다. 기사를 써도 ‘살살’ 다룬다. 기자들은 이런 사안들을 ‘정보 보고용’이라고 부른다. 기사로 쓰지는 않고 회사에 ‘알고나 있으라’며 보고만 하는 경우다.

보수 신문의 여론 독과점과 횡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2000년대 초반에는 언론사들 사이에서도 ‘미디어 비평’이 유행하는 듯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기획국장은 “2000년대 초반 언론사들마다 앞다퉈 미디어면을 만들면서 언론들이 카르텔을 깨고 상호 감시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그런데 경제가 어려워지고 광고가 줄어들면서 언론들이 먹고사는 데 급급해지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서로 딴죽을 걸지 않는다’는 침묵의 카르텔이 되레 심해진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침묵의 카르텔조차 깨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자사나 사주의 이익과 직결되는 경우다.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이번 매경과 한경의 전면전이다. 자사의 이익이 침해됐을 때 언론은 과감히 카르텔을 깨고 지면 혹은 방송을 동원해 반격과 보복에 나선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번 사건이 특이한 것은 자사 이기주의로 인해 언론의 카르텔이 깨졌고, 그로 인해 언론계에 만연한 치부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자신들은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나 ‘깨끗한 언론 문화’를 위해 기사를 썼다고 주장하지만, 후속 보도를 하지 않은 것만 봐도 기사의 목적이 사사로운 복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사나 사주의 이익을 위해 지면이나 방송을 사유화하는 경향은 점점 심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동찬 국장은 “<문화방송>이 한겨레가 정수장학회 문제를 보도하자 메인 뉴스를 동원해 비판한 사례나, <국민일보>가 사주인 조민제 회장의 처벌과 관련해 검찰과, 관련 보도를 한 한겨레를 지면을 통해 비판한 것도 자사 이기주의에 매몰된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침묵의 카르텔이나 지면 사유화는 한 언론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언론 직능 단체인 기자협회와 방송기자협회 등이 나서 문제 제기를 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경 대 한경의 싸움이 시작되고 취재에 들어갔을 때, 두 신문 관계자들은 모두 이 싸움을 ‘명예전쟁’이라 불렀다. 실익이 없더라도 짓밟힌 자존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 속칭 ‘개싸움’도 마다할 수 없다 했다. 하지만 명예를 위한 결투라면 목숨을 걸어야 하고, 휴전을 하려 해도 최소한의 ‘명분’은 필요하다. 그런데 이 두 언론에는 이도 저도 없었다. 결국 그들의 명예전쟁이 독자들 앞에 증명한 것은 우리 언론 전체의 불명예였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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