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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검사’와 ‘조폭 두목’의 악연은 끈질기다. 자신을 구속시킨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23년이 지난 지금, 진실 확인 작업을 공개적으로 제의한 여운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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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은퇴 건달’ 여운환의 폭로
▶ 이미 24년 전에 조직폭력배 간부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아 실형을 살았습니다. 세인의 기억에서도 거의 잊혀진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억울하다고 합니다. 검사가 공명심에서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자신을 기소한 검사를 상대로 진실을 가리자며 공개 토론을 제안했습니다. 검사는 바로 홍준표 경남도지사입니다. 그는 정말 억울한지 알아보았습니다.
러시아 가요 <백학>의 장중한 배경음악이 깔리며 수십대의 검은색 고급 승용차가 아스팔트를 줄지어 달린다. 짙은 노란색 은행나무 낙엽이 검은 타이어에 묻어나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멋지게 흩날린다. 멈춰진 승용차가 열리며 건장한 체구의 사나이들이 도열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1990년대 중반 친구인 검사와 조직폭력배 두목의 이야기를 다룬 텔레비전 드라마 <모래시계>는 공전의 히트를 치며 ‘국민 드라마’가 됐다. 드라마의 실제 모델이 된 당시 검사 홍준표(60)는 ‘국민 검사’라고 불리면서 정계에 진출해 성공하며, 경남도지사로 미래의 대권까지 노리고 있다. 드라마의 조폭 두목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여운환(61)씨는 실형을 살고 나와 광주에서 어엿한 기업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검사도 조폭도 모두 과거의 주인공인 듯했다.
그런데 홍 검사에 의해 국제-피제이(PJ)파 두목으로 기소돼 실형을 살고 나온 여씨가 지난 4월 돌연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모래시계에 갇힌 시간>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홍 지사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보자는 것이다. 비록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긴 했으나, 당시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분위기를 타고 홍 검사가 자신에게 조폭 ‘두목’이라는 누명을 씌워 억울한 옥살이를 시켰다는 주장이다.
홍 지사는 1995년 <홍검사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라는 책을 통해 10년간 범죄와 거친 싸움을 벌인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책에는 여씨의 검거와 수사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히 수록돼 있다.
여씨는 홍 지사에게 보낸 서한에서 “과거 홍 지사님께서 광주에서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오랜 기간에 걸쳐 저를 수사하고 기소하여 실형을 받게 했습니다. 이러한 사법부의 판단은 오래전에 이미 났지만 아직도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양심과 진실에 대한 판단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 지사님도 그동안 저와 관련된 내용을 담아 책을 썼고, 저 역시도 늦게나마 책을 쓰게 됐으니 과연 어느 쪽이 진실과 양심에 가까운지를 공개토론을 통해 가려보고 싶은 마음 너무 간절하기에, 감히 공개토론을 요청하고자 합니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검사 시절 범죄와의 전쟁 분위기를 타고
자신에게 ‘조폭 누명’ 씌웠다는
여운환씨가 진실을 밝히자며
홍 지사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국제-피제이파 두목 지목됐지만
두목이라 인정할만한 증거 없자
재판부는 ‘두목의 고문급’으로
4년형 감형해 대법원에서 확정
‘두목의 고문급’ 명칭은 처음 ‘이용호 게이트’에도 연루 총 8년형 홍 지사 쪽에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여씨는 각 언론사에 자신의 책과 홍 지사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 등을 보냈다. 1990년대 초반 서울지검을 출입했던 기자는 여씨의 책을 읽으며 궁금증이 커졌다. 자신의 ‘과거’를 세탁하려는 노회한 행동일까, 아니면 정말로 억울한 사정이 있는 것일까. 지난 5월 중순 서울의 인사동 거리에서 처음 만난 여씨는 ‘조폭 두목’이라기보다는 ‘치밀한 사업가’ 인상이었다. 말투도 상냥했다. “이대로 진실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은 삶의 의미가 없다고 느꼈어요. 늘 가족들에게 떳떳한 가장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낙인찍히는 이가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해요. 그는 “비록 사법부의 판단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지만 양심과 진실에 대한 판단은 아직 남아 있다고 봅니다.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자식과 친척들은 나에게 씌워져 있는 ‘조폭 경력’을 엄청 부담스러워하고 있어요. 나 스스로는 참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친인척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까지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여씨는 1991년 당시 호남 최대 폭력조직인 국제-피제이파의 두목으로 지목되어 4년의 징역을 살았다. 출소해 사업가로 살던 여씨는 2001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 최대 권력 스캔들이었던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무고죄와 경매방해죄가 추가되어 1년2개월을 더 사는 등 모두 8년의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낸 뒤 2005년 11월 만기 출소했다. 홍 검사로 인해 조폭 ‘두목’으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이용호 게이트에도 억울하게 휩쓸려 들어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홍 지사는 검사 생활을 마치며 쓴 자신의 책 서문에서 “검사 생활 11년 동안 내 청춘을 바쳐 이 사회의 부정과 비리와 맞서 싸우며 하루라도 편하게 지낸 날이 없었다. 밤을 꼬박 새우며 고위 권력자의 비리를 추적하다가 이를 밝혀냈을 때 느꼈던 환희도, 부당한 압력에 단호히 맞서서 내 전부를 내던져 이를 이겨냈을 때의 쾌감도 이젠 아스라한 기억의 언덕으로 넘어가 버렸다. 나는 이제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집착하던 이 사회 정의의 수호자로서의 검사는 아닌 것이다”라고 썼다. 홍 검사에게 여씨는 사회 정의 수호를 위해 제거돼야 할 대상이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씨에 대해 알아야 했다. 여씨는 자신의 책에서 광주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밝혔다. 아버지는 면장을 지냈고, 정미소와 운수업을 하는 지역의 유지였다. 고향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공덕비가 있다고도 했다. 어릴 때 공부를 잘했으나 중학 시절부터 불량서클에 들어가 거리를 맴돌았다. 그때 같이 어울렸던 주먹이 서방파 두목이 된 김태촌(사망)이었다. 건달끼리 싸움이 붙으면 앞장서서 활약했던 여씨는 21살 때 생선회칼을 휘둘러 상대방을 크게 다치게 했다. 피해자와 합의하고 집행유예로 40일 만에 출소한 그는 그길로 건달 생활을 청산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여씨가 훗날 조폭 두목으로 낙인찍히는 불행의 씨앗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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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4년 실형을 살면서 모범수형수로 선정돼 하루 동안 사회 참관차 외출 나온 여운환씨(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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