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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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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다섯살 카톡의 위기
▶ 다섯살 카카오톡이 울고 있다. 2010년 3월 태어나 스마트폰 바람을 타고 승승장구하던 카카오톡이 검찰발 ‘사이버 검열’ 태풍을 만나, 다섯살짜리로서는 결코 헤쳐나가기 쉽지 않은 시련을 겪고 있다. 이리저리 벗어날 길을 찾아 허둥대다 보니 몸은 상처투성이고, 이용자들로부터는 ‘늑대소년’ 취급까지 당하고 있다. “나한테 왜 이러냐”고 울부짖는다. 필요할 때는 창조경제의 모델이라고 치켜세우며 ‘멘토’라고 부르기까지 하더니 한순간에 낯빛을 바꾸는 어른(정부)이 밉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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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들의 정서적 아킬레스건이
무엇인지 고민 흔적 안 보여
‘사이버 검열’ 논란으로 촉발된
불안 막으려는 행동 계속 꼬였다 아이폰 국내 보급 속에 탄생한
카톡은 전세계 1억6000만명 가입
임직원 3200명, 시가총액 9조원대
애니팡과 신용카드 간편결제 등
손대는 것마다 대박 쳐왔는데… 달콤하던 호시절은… 다음카카오는 이처럼 출범 뒤 첫 열흘 이상을 ‘악몽’처럼 보냈다. 첫 시련이다. 카카오 출신의 직원은 “액땜치고는 너무 고약하고 힘들었다”며 눈물까지 훔쳤다. ‘카카오톡 가입자 1억6000만명. 국내 가입자 3800만명. 임직원 3200명. 시가총액 9조원대.’ 외형으로 보면 다음카카오는 대기업에 가깝다. 하지만 ‘얼굴’ 사업인 카톡 서비스는 2010년 3월 시작돼, 다섯살밖에 안 됐다. 다섯살짜리가 ‘사이버 검열’ 논란이란 태풍에 휘말렸으니, 어찌 보면 중심 잡기를 기대하는 것조차 무리였을 수도 있다. 더욱이 그동안은 비바람조차 맞지 않고 승승장구의 길만 걸어왔다. 카톡의 탄생은 아이폰의 국내 보급과 궤를 같이한다. 다음카카오는 “2009년 말 케이티(KT)가 아이폰을 들여오면서 스마트폰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앞으로는 모바일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그 탄생 배경을 밝히고 있다. 김 의장은 바로 기존 웹 기반 사업을 덮고 모바일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불과 서너달 만에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단체 수다 서비스 성격의 ‘카카오수다’, 모바일 블로그 성격의 ‘카카오아지트’ 등 3가지 서비스를 함께 내놓는다. 그리고 10명가량인 직원을 세팀으로 나눠, 각각 하나씩 맡겼다. 당시 회사 이름은 ‘아이위랩’이었다. 김 의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삼성에스디에스(SDS)에서 근무하다 나와 한게임을 창업했다. 그는 이어 한게임과 네이버를 합병해 엔에이치엔(NHN)을 출범시킨 뒤 대표이사를 맡다가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몇년 동안 미국 새너제이 등을 떠돌다 2006년 아이위랩을 설립했다. 이후 ‘부루닷컴’과 ‘위지아닷컴’ 등 온라인 서비스를 내놨으나 모두 실패했다. 한게임 사업으로 벌어둔 돈도 떨어져갔다. 그만큼 모바일 서비스 사업의 성공이 절실했다. 그는 먼저 모바일 서비스의 정체성을 고민했다. 그리고 ‘달콤함’을 찾았다. 이용자들이 스마트폰으로 달콤함을 나눌 수 있도록 원료 구실을 하겠다고 비즈니스 콘셉트를 잡았다. 이름이 ‘카카오’라고 지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카카오의 영문은 ‘CACAO’라고 쓰는데, 왜 ‘KAKAO’라고 했을까. 다음카카오는 “영문 카카오 도메인을 누가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 발음의 카카오를 쓰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2010년 3월 카카오톡 서비스 개시 뒤, 10월에는 회사 이름까지 ‘카카오’로 바꿨다. 이를 통해 ‘가볍고, 말랑말랑하고, 달콤하고, 편하다’는 이미지를 완성했다. 결과적으로 함께 탄생한 카카오 3남매 중 카톡은 대박 성공을 거뒀고, 카아지트는 겨우겨우 유지되고 있다. 카수다는 접었다. 다음카카오는 카톡 대박 비결을 “처음부터 이용자들과 실시간 소통하고, 이용자들의 의견이나 요구사항을 거의 실시간으로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이용자들이 건당으로 요금을 받는 이동전화 문자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40자씩 꼭꼭 채워 보내고 있다는 것과, 비용 부담 없이 실시간으로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즉시 반영했고, 대박의 문이 열렸다. 당시 엔에이치엔(지금의 네이버), 에스케이(SK)커뮤니케이션즈, 다음커뮤니케이션 등 기존 대형업체들도 스마트폰 대중화 흐름을 보며 모바일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돈 잘 벌어주는 기존 서비스가 있어, 김 의장만큼 절박하지 않았다. 기껏 준비한 모바일 서비스도 기존 온라인 서비스를 스마트폰 화면에 맞춰 축소한 수준에 그쳤다. “2011년쯤인가. 카톡 이용자들로부터 사진을 여러 장 넣을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나왔다. 사진을 많이 넣게 하면 브랜드 이미지 가운데 ‘가볍고, 말랑말랑하게’가 훼손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2012년 3월에 따로 ‘카카오스토리’를 만들어 이용하게 했는데, 삽시간에 이용자가 1000만명을 넘었다.” 카톡이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김범수는 왜 침묵하나 그해 7월에는 ‘카카오 게임하기’를 내놨다. 넥슨, 엔씨소프트, 엔에이치엔을 포함해 주요 게임업체들을 불렀다. 다들 시큰둥했다. 모바일 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 게다가 이들도 갈퀴로 긁듯 돈을 벌어주는 온라인게임이 있었다. 신생 업체 중심으로 7개 업체가 10개 게임을 올렸다. 머지않아 ‘애니팡’이 대박을 터뜨렸다. 기존 업체들이 “아차!” 하며 달려왔지만, 이미 게임하기 앞에는 장사진이 펼쳐져 줄을 서야 했다. 이후 ‘카카오 선물하기’, ‘신용카드 간편결제’ 등 카카오가 손을 대는 것마다 ‘대박’을 치고 있다. 카카오가 손을 대는 즉시 기존 사업자들의 기득권이 박살나고, 기존 질서가 허물어진다. 카카오 선물하기에 에스케이플래닛의 ‘기프티콘’과 케이티엠하우스의 ‘기프티쇼’ 등이 졸지에 ‘을’의 처지로 전락했고, 신용카드 간편결제로 카드사들의 기득권이 깨졌다. 카카오 송금하기에는 국내 굴지의 은행들까지 줄을 서고 있다. 다음카카오는 “70여개의 티에프팀이 운영되고 있다. 모두 이용자와 소통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라고 밝혔다. 그만큼 많은 종류의 새 서비스가 준비되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카카오가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 뒤 열흘 정도는 이용자의 눈높이와 정서에 맞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용자들이 불편해하고, 달콤함보다 쌉싸름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를 알아차리지도,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했다. 이미 국내 텔레그램 이용자가 200만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카톡 이미지에 큰 흠집이 생긴 셈이다. 그런데도 김범수 의장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카톡으로 4조원대의 재산을 가진 부자가 됐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사이버 사찰 관련 카카오톡 일지
9월16일
박근혜 대통령,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
18일
대검찰청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단 범정부 대책회의’ 개최. 카카오톡 등 민간기업 관계자들도 참석
19~20일
SNS 등에서 카카오톡 감시 불안감 확산. 대안 메신저 모색 움직임 일면서 ‘텔레그램’ 주목받기 시작
22일
검찰 관계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말로 오해를 하는 것 같다. 상시 모니터링은 포털사이트 등을 대상으로 한 것. 카카오톡이나 메신저 감시는 불가능한 일” 해명
카카오팀 트위터 “카카오톡은 감시와 검열의 대상이 아닙니다. 대화 내용은 3~7일간만 저장하고, 엄격한 법적 절차 없이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24일
국내 앱스토어에서 텔레그램이 카톡 제치고 무료 앱 부문 1위 차지. 5일 만에 111위에서 1위로 부각
25일
검찰 사이버허위사실유포전담수사팀 발족
30일
카카오팀 트위터 ‘7일 지난 대화 내용 서버에 존재하지 않는다. 압수수색영장 발부 때만 대화 기록이나 내용을 제공. 카카오는 정보통신법, 형사소송법, 통신비밀보호법 준수 의무 있다’
10월1일
다음카카오 출범 기자회견. 이석우 대표이사 “(검찰이 대책회의에) 오라는데 안 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발언.
2일
다음카카오 구태언 고문변호사 라디오 인터뷰 “실시간 검열은 영장 가져와도 기술상 불가능” 발언
10일
다음카카오 블로그 “다음카카오 법무팀은 카톡 대화 내용을 선별하지 않습니다”
13일
이석우 대표 긴급 기자회견 “감청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
16일
이석우 대표, 서울고검·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 참고인 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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