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이 조 회장의 자녀들인 조현아, 원태, 현민씨로 승계되고 있다. 주식 증자를 통한 지분율 높이기, 알짜 회사를 통한 현금 모으기 등 여러가지 방식이 동원됐다. 사진은 조현아씨. <한겨레> 자료사진
|
[토요판] 뉴스분석, 왜?
‘땅콩 리턴’ 재벌 3세의 탄생
▶ 많은 이들이 분노하기 이전에 놀랐습니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서비스에 격노해 비행기를 되돌린 사건 말입니다. 부사장은 문제없고, 직원이 잘못했다는 ‘사과문’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그런데 한진그룹 내 대다수 직원들은 이 모든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고 합니다. 이 인식의 격차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단초는 한진가 재벌 3세가 그룹 내에서 영향력을 키워온 지난 10여년의 시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조현아(40) 대한항공 부사장이 대한항공에 입사한 시기는 1999년,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미국 명문대인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전공을 살려 호텔면세사업본부에 입사했고, 3년 뒤에 기내판매팀장을 맡았다. 입사하고서 7년 뒤인 2006년엔 상무보로 승진해 처음으로 임원을 달았다. 2012년부터 대한항공의 등기이사를 맡았고 이듬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계열사인 한진관광, 칼호텔네트워크, 왕산레저개발 등의 대표이사이자, 항공종합서비스의 이사도 역임하고 있다.
한살 터울 동생 조원태(39) 부사장의 승진 속도는 더 빨랐다. 그는 2003년 8월 한진정보통신에 입사해 4년 만에 대한항공의 임원을 달았다. 대한항공에서 여객사업본부장, 경영전략본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현재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대표이사, 아이티(IT) 서비스 업체인 유니컨버스의 대표다. 등기이사로만 이름을 올린 계열사만 대한항공, 한진, 한국공항, 토파스여행정보, 진에어 등 9곳이다.
참고로 등기이사는 기업에서 역할이 막중하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은 크게 이사회와 주주총회, 두 곳에서 내려진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역시 이사회에서 결정되고 그 경영자는 이사들을 대표한다는 의미로 ‘대표이사’라고 부른다. 대한항공에서 사내 등기이사는 총 6명, 이 중 4명이 친인척 관계다. 조양호 회장과 그의 매형인 이태희 법률고문, 삼십대인 2012년부터 등기이사를 맡아 온 조현아, 조원태 부사장이 그들이다.
한진 재벌가 3세 중 막내인 조현민(31) 대한항공 전무는 입사하고서 3년 만인 2010년에 임원을 달았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조 전무는 지금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집단 가운데 최연소 임원이다. 그는 대한항공의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전무이자, 한진그룹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정석기업의 대표이사다. 또 저가항공사인 진에어의 등기이사도 겸임한다.
|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이 조 회장의 자녀들인 조현아, 원태, 현민씨로 승계되고 있다. 주식 증자를 통한 지분율 높이기, 알짜 회사를 통한 현금 모으기 등 여러가지 방식이 동원됐다. 사진은 조원태씨. <한겨레> 자료사진
|
|
부사장의 무리한 요구 뒤엔
‘한진가’ 경영권 승계 위한
조현아·원태·현민 삼남매
재벌 3세 몰아주기 있었다 석연치 않은 가격의 자사주 매입
알짜회사 통해 현금 조달…
삼남매 소유의 주식자산은
5년 동안 20배 뛰었다
한진그룹은 이렇게 ‘상속’되는가 알짜회사는 삼남매의 현금 창구? 삼남매가 지난 10여년간 자금을 마련하는 데 요긴한 역할을 한 두 업체가 있다. 바로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다. 2000년 6월에 설립된 싸이버스카이는 대한항공이 파는 면세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업체다. 인터넷 쇼핑몰인 싸이버스카이, 이스카이숍, 한진몰 등을 운영한다. 이 업체는 매출액 규모가 연 50억원 정도로 큰 기업은 아니지만, 매년 1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알짜회사다. 지난해엔 영업이익이 9억5200만원이었고, 2010년부터 4년간 매년 영업이익이 10억원을 넘었다. 매출에서 한진그룹 계열사들이 차지하는 내부거래 비중도 70~80%에 육박한다. 지난해 매출액 42.9억원 가운데 35.9억원이 내부거래에서 발생했다. 전체의 83.7%다. 이 회사는 삼남매인 조현아, 조원태, 조현민이 지분을 33.33%씩 동등하게 나눠 갖고 있는 회사다. 당연히 이익의 대부분이 삼남매에게 귀속된다. <한겨레>는 대한항공과 싸이버스카이 쪽에 ‘지난 5년간 싸이버스카이의 배당 현황’ 자료를 요청했으나 업체 쪽은 “재벌 3세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좋지 않은 민감한 시기라 밝힐 수 없다”고 알려왔다. 한진그룹의 시스템통합(SI) 서비스업체인 유니컨버스는 삼남매가 전체 지분의 85%를 보유하고 있다. 유니컨버스 역시 전체 매출에서 계열사들이 차지하는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지난해 매출액 269.1억원 가운데 178.1억원이 내부거래에서 발생했다. 유니컨버스 역시 2010년부터 매년 1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기록중이다. <한겨레>는 이 회사의 배당금에 대한 자료도 요청했으나 싸이버스카이와 같은 이유로 받지 못했다. 유니컨버스 역시 기업의 이익잉여금으로 대한항공, 한진칼 등의 지분을 매입했다. 현재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주식을 각각 2만7230주, 1만3158주를 보유중이다. 유니컨버스가 단행한 투자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2011년 4월 투자사인 ‘유니컨버스투자’를 자회사로 설립한 것이다. 유니컨버스투자가 현재까지 유일하게 투자한 업체는 토파스여행정보라는 업체로 이 회사의 지분 27%를 보유중이다. 토파스여행정보는 항공사들로선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불리는 항공예약사업을 영위하며 지난해 매출액 584억원에 영업이익이 168억원에 달했다. 영업이익률이 무려 28.7%다. 한진그룹의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석기업은 올해 8월28일 석연치 않은 자사주 매입을 했다. 이 거래에도 조현아, 조원태, 조현민 삼남매가 관련돼 있다. 당시 정석기업은 삼남매가 보유한 자사주 7만1880주를 사들였다. 삼남매는 매각대금으로 현금 178억1100만원을 손에 쥐었다. 문제는 정석기업이 삼남매로부터 매입한 주식 가격이 적정했느냐다. 정석기업은 자사주의 가격을 주당 24만7796원으로 책정했다. 삼남매가 2009년 주당 10만7958원에 취득한 것에 비해 2.4배가량 오른 금액이다. 실제 삼남매는 77억6000만원에 이 지분을 사들여 178억1100만원에 팔아 5년 만에 100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먼저 삼남매가 정석기업의 주식을 사들인 것은 자산관리공사의 공개매각을 통해서다. 한진그룹의 창업자인 조중훈 회장이 보유했던 정석기업의 지분을 상속받으면서 조양호 회장과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등은 상속세의 일부를 현물인 주식으로 납부했다. 이때 납부한 주식 7만1880주가 자산관리공사로 넘어가 공개매각 절차를 밟았고, 2009년 7월과 8월 세 차례에 걸친 입찰이 유찰됐다. 네 번째 입찰일인 9월9일에 주당 10만7958원에 낙찰된다. 이때 낙찰받은 이가 삼남매였다. 삼남매는 이 주식을 사기 이전에 거액의 대출을 받았다. 2009년 3월 삼남매는 보유하고 있던 대한항공 주식 19만여주를 담보로 51억원을 대출받았다. 그렇게 사들인 정석기업의 주식은 5년 뒤 2.4배의 가치로 팔렸다. 하지만 실제 가치가 그만큼 올랐을까. 정석기업처럼 비상장기업의 주식가치를 판정할 땐 주로 주당순자산가치(BPS)를 참고한다. 기업의 순자산을 주식 수로 나눈 이 지표는 상장기업의 주가가 적정한가를 판별할 때도 사용된다. 문제는 정석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할 때 책정한 가격이 이 주당순자산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지난해 연말을 기준으로 정석기업의 주당순자산가치는 15만6410원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에 거래된 자사주 가격은 이보다 9만원 이상 비싼 24만7796원이었다. 참고로 삼남매가 이 주식을 취득할 때의 주당순자산가치는 13만8806원이었다. 즉 삼남매는 당시 주당순자산가치보다 22.2% 낮은 가격에 사서, 지금의 주당순자산가치보다 57.38% 높은 가격에 되판 것이다. 이에 대해 한진그룹 쪽은 “복수의 회계법인을 통해 공정한 방법으로 가치를 산정했고, 구체적인 산정방법이나 회계법인 이름은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이 조 회장의 자녀들인 조현아, 원태, 현민씨로 승계되고 있다. 주식 증자를 통한 지분율 높이기, 알짜 회사를 통한 현금 모으기 등 여러가지 방식이 동원됐다. 사진은 조현민씨. <한겨레> 자료사진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