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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인도네시아 인근 자바해에 추락해 사라진 에어아시아 8501편의 항공기인 에어버스 320-200(등록부호 PK-AXC)이 2011년 8월7일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활주로를 달리고 있다. 이 항공기는 에어아시아의 상징인 빨간색을 칠하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수라바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등 단거리를 비행했다. 에어버스 320 시리즈는 지난 11월말까지 6000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기종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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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에어아시아 추락 시나리오
▶ 지난 12월28일 새벽, 한국인 세 명을 포함한 승객과 승무원 162명을 태운 에어아시아 여객기 8501편이 인도네시아 자바해 해상으로 추락했습니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현대의 항공기는 웬만한 악천후에도 끄떡없다는 게 항공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항공재난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에서 온다.’ 아직은 단정하기 이르지만, 2009년 악천후 속에서 대서양에 추락한 ‘에어프랑스 447’ 사고가 떠오릅니다. 이번 사고의 한 시나리오를 추적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는 자카르타를 잇는 인구 300만명의 제2의 도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 도시 사람들도 싱가포르에 가서 노동을 하고 업무를 보고 때로는 관광을 한다. 28일 새벽 5시35분에 출발하는 에어아시아(QZ) 8501편에 탄 승객 155명 가운데 149명이 인도네시아 사람이었다. 한국인이 3명, 싱가포르인, 말레이시아인, 영국인이 각각 1명이었다. 인도네시아인 이리얀토 기장과 프랑스인 부기장, 5명의 승무원과 엔지니어를 포함해 모두 162명이 새벽 비행기에 탔다.
난기류 때문에 우회로를 선택했다면
이륙한 에어아시아 8501은 유럽의 항공기제작사 ‘에어버스’가 만든 ‘A(에어버스)320’ 시리즈 중 하나였다. 미국의 항공제작사 ‘보잉’의 737과 함께 주로 대륙 내 중·단거리 구간을 운항하는 기종으로, 에어버스 누리집에 따르면 2014년 11월 기준으로 6331대가 주문돼 6092대가 운항 중인 ‘베스트셀러’다.
에어아시아 8501은 이날도 바지런히 날았다. 항공정보 웹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를 보면, 등록부호 PK-AXC의 이 항공기는 저가항공의 젊은 이미지를 상징하는 빨간색 도색을 하고 수라바야,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등 동남아시아 자바해 연안의 도시를 쉼없이 돌아다녔다. 사고 전날인 27일만 하더라도 새벽 5시53분 수라바야를 출발해 쿠알라룸푸르를 갔다 왔고 다시 수라바야를 기점으로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의 왕복 비행을 완수했다. 총 여섯 번의 비행이었다. 한 시간 안팎 연착하고 40여분 만에 승객을 내리고 태우는 등 저가항공의 특성인 빡빡한 스케줄을 완수했지만, 자바해에 짙게 깔린 검은 구름을 보기까지 이 빨간 비행기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8일 오전 6시12분 이리얀토 기장은 상공의 먹구름 때문에 왼쪽으로 기수를 틀고 운항고도를 해발 3만2000피트(9754m)에서 3만8000피트(11,582m)로 올리겠다며 인도네시아 관제탑에 항로 변경을 요청한다. 그러나 관제탑은 해당 고도에 다른 항공기가 운항 중이라고 답한다. 이것이 마지막 교신이었다. 2분 뒤 관제탑은 왼쪽으로 7마일(11㎞)을 비행해 3만4000피트(10,363m)에 진입하라고 안내한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6시16분만 해도 8501은 관제탑 레이더에서 개미처럼 북진하고 있었다. 2분 뒤인 6시18분, 비행기는 레이더에서 사라진다. 7시30분 싱가포르 창이공항, 인도네시아 노동자와 여행객들을 내려주기로 되어 있던 빨간 비행기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원래 이번 사고는 지난해 3월 일어난 말레이시아항공(MH) 370 실종사건을 연상케 했다. 뚜렷한 이유 없이 레이더망에서 사라진 말레이시아항공 370은 아직까지도 항공기로 확증될 만한 잔해가 발견되지 않아 항공사고 최대의 미스터리로 떠올랐다. 에어아시아 8501도 수수께끼의 심연 속으로 빨려드는 듯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30일 인도네시아 중부 칼리만탄 해안에서 약 170㎞ 떨어진 바다에서 기체 잔해가 발견되면서, 사고의 원인을 두고 여러 가지 추정이 나오고 있다.
맨 먼저 드는 의문은 왜 인도네시아 관제탑이 사고기의 항로 변경을 재빨리 승인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2분 뒤에야 우회항로를 제안한 건 너무 늦은 것인가. 그러나 항공전문가들은 낯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보통 적란운이나 먹구름, 태풍 등 기상현상이 예상되면 항공기는 정규항로를 이탈하여 우회로를 선택한다. 조종사는 관제탑에서 전달하는 기상정보와 비행기에 부착된 웨더레이더(레이더를 통해 기상현상을 감지하는 장치)가 주는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위험지대를 피해 간다. 고도를 높여 구름 위로 지나가거나 아예 에둘러 가는 게 일반적이다. 사고기도 정규항로 왼쪽의 고지대로 우회하는 항로를 요청했다. 근처에 형성됐던 것으로 보이는 두께 5~10㎞의 적란운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게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들의 추측이다.
하지만 항공 교통량이 많으면 우회로도 붐빈다. 사고 당시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이 3만8000피트(11,582m) 상공에서 운항하는 등 주변 항공기만 5대였다. 대도시 국제공항 주변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항공기가 정체하기 때문에 낯선 일은 아니다. 에어아시아가 관제탑의 우회항로 불승인 뒤에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다수 항공전문가는 설사 항공기에 호의적이지 않은 기상지대를 통과하더라도 치명적이진 않다고 말한다. 비행기를 타본 사람이라면 터뷸런스(난기류)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경우다. 기장은 속도를 낮추고 기류의 흐름을 탄다. 덜컹거림 때문에 승객들은 불안해하지만 기장에게는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타고 가는 것과 비슷하다. 한 국내항공사의 한 기장은 “터뷸런스가 나타나면 권장속도로 속도를 줄인다. 엔진이나 날개의 장치를 켜서 계측장치가 얼지 않도록 조심히 통과한다”고 말했다.
그럼, 문제는 에어아시아 8501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추락에 이르렀느냐다. 항공기가 어떤 기상현상에 직면했고, 항로 변경을 승인받지 못한 이리얀토 기장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항공기가 ‘공기역학적 실속’(aerodynamic stall·비행기가 양력을 상실한 상태)에 빠져들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사고기가 악천후로 인해 물리적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다. 항공기는 생각보다 자주 번개를 맞는다. 지금까지도 1963년 12월 팬암 214 여객기(보잉 701-121)가 번개에 맞은 사고는 항공재난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당시 메릴랜드 상공을 날고 있던 기체의 날개를 번개가 직접 때리자, 날개 하단의 연료탱크가 폭발했다. 조종사는 “메이데이”(비행기 위급상황시 조난신호)를 외쳤지만, 항공기는 이내 추락했고, 탑승객 전원인 81명이 숨졌다. 이 사고로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미국 상공을 운항하는 민항기에 낙뢰사고를 방지하는 방전장치의 부착을 의무화했고, 지금은 세계의 거의 모든 민항기가 번개의 위험 없이 운항한다. 번개의 고압전류는 날개와 꼬리 뒷부분에 있는 방전장치를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그을음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카르타 찍고 쿠알라룸푸르 찍고…바지런히 날던 저가항공
기장 “왼쪽으로 상승하겠다”
관제탑에 요청하고 사라져
‘미스터리의 6분’은 블랙박스에 시속 700~800㎞로 돌진하는 항공기
조종사의 감각은 부품에 달렸다
속도·고도 측정하는 ‘피토관’
얇게 얼어도 계기판은 엉망 된다
‘에어프랑스 447’ 사고의 재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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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 머리 부분에 장착돼 속도, 고도를 측정하는 피토관. 2009년 에어프랑스 447 추락사고 이후 악천후 때 얇게 끼는 얼음 문제로 논란이 되어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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