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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이었던 지난 5월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앰네스티 활동가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 중단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거리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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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국외로 가는 병역거부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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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이었던 지난 5월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제앰네스티 활동가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 중단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는 거리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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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워킹홀리데이 등 다양한 방식으로 ‘헬조선’을 탈출하려는 청년들이 있다. 드물긴 하지만,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받았다는 한국인 청년들의 소식도 더는 낯설지 않다. 서민영(가명)은 지난해말 프랑스 정부로부터 난민임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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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5일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 6’ 조항이 폐지되길 바라는 인권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창살 안에 갇힌 성소수자 군인을 상징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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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난민지위 인정
학창시절 학교 폭력 피해
군대식 훈련 거부감 커져
“동성과 성관계한 군인 처벌
‘동성애 혐오 사회’ 실감했다”
종교·신념 따른 병역거부자
감옥행 말고 대안 없어 -어린 시절, 남과 다르다는 데 대한 고민이 컸을 것 같다. “남성성과 멀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은 엄연히 ‘폭력’이라는 걸 알게 됐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른 대안이 없나 고민했다. 고3 때인 2004년 언론 보도를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 개념을 발견했는데, 불교도이자 평화주의 사유로 군대에 갈 수 없다는 분과 내 고민이 다르지 않았다.” -난민 신청서를 보면, 정신병원에도 입원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동성애를 질병으로 여기셨던 것 같다. 만약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그 경중에 따라 군대가 면제되니 병역거부를 할 일도 없다고 생각하셨다. 나도 상담을 받아보고 싶었던 상황이었던지라 못 이기는 척 병원에 갔다.” 입영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입대하지 않으면, 병역법 제88조 1항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돼 있다. 총을 들지 않겠다는 신념을 지닌 한국인이 국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의 양심을 꺾고 입대를 하거나 통상 1년6개월의 실형(재징집을 면할 수 있는 최저형)을 사는 것이다. 다만, 2015년 이후 재판에 넘겨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하급심(1심) 법원의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엔 항소심(2심) 법원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왔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군대에 가지 않을 ‘정당한 사유’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6월25일 대법원은 또다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1년6개월의 징역형을 확정했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7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근거 조항인 병역법 제88조 1항 헌법소원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으나, 아직 결론을 내놓지 않았다. 감옥이 두려웠다 병무청이 지난해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07년부터 2016년 10월말까지 모두 4943명이 종교·신념 등의 사유로 입영과 집총을 거부해 징역형을 살았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운데 99%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다. 여호와의 증인 누리집을 보면, 올해 4월 기준 401명이 군대를 가지 않아 감옥에 갇혀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정치적 중립을 원칙으로 하지만, 국가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법을 존중하고 세금을 내는 이들은 군대 대신 감옥으로 향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 9월 국방부는 대체복무제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권이 바뀐 뒤 2008년 12월 국민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며 계획을 번복해 버렸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마음대로 체포하거나 억류하는 ‘자의적 구금’이 발생한 인권침해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 59개국 가운데 몽골·러시아·그리스 등 약 20개 국가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해 두고 있다. 한때 병역거부자를 13년씩이나 가두던 대만은 2000년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대만은 2018년부터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 전환 계획을 밝혔다. -2007년 대체복무제가 도입됐다면, 난민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군 입대 외에 다른 선택지가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대체복무제 도입 자체를 뒤집긴 힘들 것이라 생각해 계속 입대를 연기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기대마저 없어졌지만.” -난민 신청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 “현실적으로 감옥에 가는 방법밖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감옥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거기도 위계질서가 있고 인권침해가 있으니까. 그러다 이예다씨 사례를 보고 난민으로 사는 게 가능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한국을 떠날 땐 부채감이 있었다. 이렇게 내 한 몸 빠져도 되는 걸까. 다행히 소속 단체의 거의 모든 회원들이 (내 선택에 공감하는) ‘감정이입’을 해주었다.” -3년 가까이 난민신청자 신분으로 사는 것은 어땠나? “여러모로 운도 좋았고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지만,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회에 적응하는 건 굉장히 힘들었다. 현실적으로 금전적인 문제도 크다. 난민 신청을 하고 9개월이 지나면 일을 할 수 있긴 한데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제한적이다.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 불안정한 신분이므로 사용자들이 채용하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나?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분야에도 ‘군기 잡는 문화’가 있다더라. 병역거부를 하면 출소 이후 직업을 얻는 데 제약이 많으니 학원 강사일을 할까 생각했다. 여기서도 생존을 위한 일을 준비하고 있지만, 억눌렀던 코미디언에 대한 꿈이 되살아나고 있다.” 한국은 나를 억압하는 곳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이었다. 여당 의원들의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병역법·예비군법 개정안 발의도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 청년이 난민이 됐다는 소식은 또 들려올지 모른다. 2015년초 결성된 반군사주의 네트워크인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서울지부장 안악희씨는 일주일에 한번꼴로 난민 신청을 고민하는 이들의 연락을 받는다. 20대 초반에 국외로 나가 난민 신청을 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와 감옥에 가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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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프랑스로 향한 1986년생 서민영(가명)은 지난해 11월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파리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있는 서민영의 뒷모습. 서민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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