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그의 슬픔과 기쁨>
정혜윤 지음, 후마니타스, 2014
“2009년 여름. 경찰 헬기에서는 봉투에 넣은 최루액이 살포되었다(가스가 아니다). 그해 뿌려진 최루액의 95%가량이 쌍용자동차 공장 옥상에 쏟아져 내렸다. 최루액을 맞은 스티로폼은 녹아내렸다.”(51쪽) 나는 쌍용차 사건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기억나는 것은 경사진 건물 옥상에서 전투 경찰이 노동자의 몸을 쥔 채 방망이로 패는 장면과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재임 중)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말뿐이다.
‘투쟁 기록’은 예상 가능하다는 편견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은 예상을 뒤엎는다. 내용은 일률적이지도 일관되지도 않다. 내가 매일 하는 고민과 비슷하고 모두 내 이야기 같다. 쌍용자동차 사태의 본질은 중국 자본의 진출과 국민을 ‘표적 사냥’한 공권력이다. 이 과정조차 상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책이 아니더라도 아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복합 ‘장르’라는 사실이다.
“정비사는 손끝이 눈이라는 말이 있어요. 손끝이 굉장히 발달해요.” 이 책은 솜씨, 장인(匠人)들의 이야기다. 자동차 정비와 비교할 만한 사연은 아니지만 나도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좋아한다. 뜨개질, 바느질, 종이 공작, 경필(硬筆), 포장 아트… 손끝이 야무진 사람은 성실하다.
“내 인생의 절반은 차였어요. 그런데 이제 그 절반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자동차를 좋아하는 노동자가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이 책은 인생의 의미와 직업에 관한 이야기다. 나 역시 공부와 글쓰기가 인생의 전부였을 때, 나보다 그것을 ‘훨씬 못하는’ 자들이 진학을 가로막은 적이 있다. 나는 지금도 그들을 탈곡기에 넣고 싶을 만큼 분노한다.
“저놈 있어야 완벽한 차가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살았어요. 노조 활동도 안 했고 공장 일은 혼자 다 하는 사람이 왜 해고되어야 하나요.” 이 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은 사람의 고통스런 이야기다.
정혜윤의 글쓰기는 유독 이 책에서 빛을 발하는데, 유려하면서도 단단하다. 구성이 탄탄한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는 듯하다. 그는 듣는 자의 위치성을 잘 알고 있다. 상황에 깊이 개입하면서도 대상화하거나 감상적이지 않다. 저자의 주된 질문은 “무엇 때문에 5년간의 길거리 생활을 버틸 수 있었는가”이다. 생계와 복직, 공권력에 대한 분노, 3년간 22명 동료의 사망… 이것만이 이유였을까. 협업이 중요한 자동차 공장에서 각자가 서로의 몸이 되어 일하던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함께 살자”, “같이 죽자는 말이냐”, “다 죽일 셈이냐”, “다 죽자는 말이냐”, “너 살자고 날 죽이냐”, “차라리 함께 죽자”는 말이 오가는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사람은 어떻게 살아지는가. “살면서 두 번 다시 그런 고통을 받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은 바로 배신감이었어요,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 마음의 밑바닥을 보는 것이었어요.”(35쪽) 배신, 사람의 바닥. 여기서 나는 오래 서 있었다. 사람이 싫어지면 삶은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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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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