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끝나지 않는 노래”
이희중 지음, <참 오래 쓴 가위>, 문학동네, 2002
글쓰기 원칙 중에 ‘현재진행형을 쓴다’가 있다. ‘지금 상태’를 쓰라는 것이다. 책상 위에 계통 없는 책들이 엎어져 있다. 써야 할 글과 하고 싶은 말이 갈등한다. 당연히 후자 승. 어차피 앞의 것은 안 써지기 때문이다. 이 시는 요즘 나의 타령이다. 다른 책에도 인용했다. 나는 꽃도 모르고 시도 모른다. 지난주 꽃다발처럼 이 시도 같은 친구가 보내준 것이다. 이희중 시집 <참 오래 쓴 가위>에 수록된 “끝나지 않는 노래”(116~117쪽) 전문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까꼭 끝난 줄 알았네
이 노래 언제 끝납니까
안 끝납니까
끝이 없는 노랩니까
그런 줄 알았다면 신청하지 않았을 거야
제가 신청한 게 아니라구요
그랬던가요 그 사람이 누굽니까
이해할 수 없군
근데 왜 저만 듣고 앉아 있습니까
전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다른 노래를 듣고 싶다구요
꼭 듣고 싶은 다른 노래도 있습니다
기다리면 들을 수나 있습니까
여기서 꼭 듣고 싶은데, 들어야 하는데
딴 데는 가지 못합니다
세월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발, 이 노래 좀 그치게 해, 이씨 수학의 언어는 공식. 수학이 아름다운 이유는 공식 때문이다. 공식은 무한한 언어이자 최소한의 기호로, 삼라만상을 파악할 수 있다. (좋은) 시가 미학의 절정인 이유도 이와 같다. 시 한 줄이 사전이다. 은유, 메타포. 말뜻이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독자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어떻게 읽어도 말이 된다. 시야말로 읽는 자의 것이다. 리듬감이 좋은 이 시는 내가 아는 작품 중 상당히 큰 사전류에 속한다. 세상에 끝나지 않는 노래가 한둘이겠는가. 누구에게나 끝나지 않는 노래가 무수할 것이다. 가사의 사연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전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는 묘하게 밝고 희망적이다. 심지어 옛날 음악다방에서 반복이 아니라 연주 시간이 긴 음악을 듣는 무료한 대학생의 투정 같다. “다른 노래를 듣고 싶다구요” 시인은 다른 노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다른 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노래도 언젠가는 지긋지긋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하나밖에 없는 어떤 개별 단위가 끝나는 것이다. 삶은 반복, 진퇴, 연속하는 흐르는 시간이 아니다. 역사가 시간의 서사라는(역사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가는 세월은 잡을 수 없지만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인생은 바로 이곳에서, 단 한번 일어나는 일이다. “지긋지긋”은 세상의 끝이다. 데드 엔드(dead end), 막다른 곳, 막장(幕章)…. 미국 수사 드라마 시에스아이(CSI) 시리즈 중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잦은 가정폭력 신고에 신참과 베테랑 두 여형사가 출동한다. 신참이 남자를 현장에서 체포하자고 주장하자 선배 형사는 말한다. “그럴 필요 없어. 남자는 금방 풀려날 거고, 우리는 두 달쯤 후에 이 집에 다시 오게 될 거야. 그때는 여자가 죽어 있겠지.” 이것이 지긋지긋함이다.
|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