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거꾸로 읽는 개미와 베짱이>, 프랑수아즈 사강 글, JB 드루오 그림, 이정주 옮김, 국민서관, 2013 겨울 내내 개미는 먹을 것을 차곡차곡 모았어요. 여름이 되자 먹을 것이 차고 넘쳤어요. 이 많은 파리와 작은 벌레를 어떡하죠? 개미는 이웃에 사는 베짱이를 찾아갔어요. 개미는 봄까지 먹을 음식을 사 두라고 베짱이를 부추겼어요. “베짱이님을 믿고 먹을 것을 빌려 드릴게요. 빌린 음식은 이자를 쳐서 가을 즈음에 주시면 돼요. 곤충의 이름을 걸고 꼭 갚아 주세요.” 하지만 베짱이는 많이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것이 베짱이의 자그마한 단점이지요. “겨울 내내 뭘 하신 거죠?” 베짱이는 개미에게 물었어요. “전 밤낮으로 쉬지 않고 먹을 것을 모았어요.” “먹을 것을 모았다고요? 대단하네요. 그럼 이제 싸게 팔면 되겠군요.” 위 글은 프랑수아즈 사강이 쓴 <거꾸로 읽는 개미와 베짱이>의 전편이다. 아주 짧다. 왼쪽 면 그림, 오른쪽 면 한 문장으로 구성된 그림동화다. 요즘은 새롭고 다양한 동화도 많고 권정생 같은 작가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동화나 우화는 순수한 이야기로 포장된 ‘아동에게 그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학습시키는 도구’였다. 특히 여자 어린이가 주로 읽는 동화는 가부장제의 원형을 주입한다. 어느 사회에나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이유다. 신데렐라, 재투성이 아가씨, 콩쥐팥쥐…. 내용이 익숙해서 그렇지 주의 깊게 읽으면 잔혹하고 여성 비하적이다. 왕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리를 자르고 목소리와 목숨까지 바치는 인어공주를 생각해보라.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가’들은 동화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흑설공주>도 있고, 백설공주가 왕자와 결혼했는데 가정폭력범이어서 이혼하고 독립적으로 살았다든가, ‘일곱 난쟁이’들이 왜 장애인은 언제나 비장애인 결혼의 조력자인가를 비판하는 시위로 끝나는 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는 여러 버전이 있는데, 이 책의 원작은 17세기 프랑스의 작가 라퐁텐이 쓴 것으로 원래는 매미였다고 한다. 알려진 대로 원작은 근면과 저축을 강조한다. 지금은 노동과 저축도 아니고 재테크, 상속, 건물임대로 돈이 ‘생기면’ 명품과 고급 취미를 즐기는 소비 주체가 되기를 욕망하는 사람이 많지만, 현재 40~50대만 해도 개미는 인생의 모델이었다. 어른들은 말했다. “공부 안 하고 놀면 저렇게- 노숙자, 거지, 돈 꾸러 다니는 사람….” 게으름뱅이는 겨울에 얼어 죽는다는 협박은 무서웠다. 주변에서 나더러 일중독자라고 한다.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다. 특히 이번 여름에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사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 개미의 삶이 옳은가? 그렇다고 갑자기 베짱이 캐릭터가 될 수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잡념 중에 활자가 지긋지긋해져서 공부하던 도서관 어린이 서고에 내려갔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작가는 유통, 금융 자본주의를 조롱한다. 때문에 원작과 달리 계절이 바뀐 점이 중요하다. 겨울에 죽어라 일하니 여름에 “파리와 작은 벌레” 같은 농산물이 부패해 상품 가치가 떨어졌는데도, 정신을 못 차린 개미는 이자까지 쳐서 팔겠다고 한다. 베짱이는 “그러니까 이제 싸게 팔면 되겠네요!”라고 화를 돋운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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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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