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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경기 현장에서 작전을 지시하는 두 감독. 3월18일 낮 대전 충무체육관 경기 때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왼쪽)과 12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의 신영철 대한항공 감독. 두 팀 모두 각각 현대캐피탈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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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승부
신치용 vs 신영철
2005년 출범한 한국 프로배구가 8년째를 맞고 있다. 여자부와 달리, 남자부는 ‘신치용 배구’의 철옹성이 좀체 흔들리지 않고 있다. 신치용 감독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써비스가 양분하던 실업팀 배구의 균형과 경쟁구도를 완전히 뒤바꿔놓더니, 프로 출범 이후 올해까지 단 한번도 챔피언결정전에서 탈락하지 않고 있다. 그게 어느덧 16년의 세월이다. 그리고 김호철 감독의 현대캐피탈이 두차례 우승을 차지했을 뿐 나머지 13차례는 모두 신 감독의 것이었다. 그러니 삼성화재의 정규리그 우승, 또는 챔프전 진출은 너무도 당연스러운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과연 올해도 신 감독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을 것인가? 신 감독을 견제할 또다른 신 감독이 ‘뉴 페이스’로 코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 대한항공의 신영철 감독이다.
회상
2011년 4월3일 일요일 저녁 7시 인천 도원체육관. 창단 42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대한항공의 안방은 통합우승에로의 열망과 기대감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뜨겁던 축제의 열기는 1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주심의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소리로 시작된 대한항공-삼성화재의 챔피언결정 1차전. 누가 봐도 시즌 상대전적 4승1패로 앞선 대한항공의 승리가 예상됐다. 역시 1세트는 25-22로 대한항공의 승리. 2세트도 센터 진상헌의 속공으로 만든 대한항공의 24-22 우세, 이제 1점만 보태면 1차전 승리의 7부 능선은 넘게 되는 상황이었다.
순식간이었다. 진상헌의 서브 때 김정훈의 시간차 공격에 당해 1점 차로 쫓겼다. 이영택의 속공이 가빈의 블로킹에 막혔다. 듀스 상황이었다. 느긋하게 도전자를 기다린 대한항공과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 총 6경기를 치르며 간신히 챔프전에 진출한 삼성화재의 대결. 승부란 역시 미묘한 차이로 갈리는 것이었다. 접전은 27-27까지였고, 대한항공은 범실과 가빈의 후위공격을 막지 못해 2세트 역전극을 허용했다. 2세트가 결국 대한항공 1-3 패배의 분수령이었다. 이 1차전의 향방은 챔프전 시리즈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신영철 감독은 “상대는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올라와 마음이 편한 상태였다”며 “특히 1차전 역전극을 펼친 뒤 경기를 거듭할수록 더 강해지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결국 2차전과 4차전 모두 풀세트 접전이었지만 5세트 승리는 모두 삼성화재의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대한항공은 세터 한선수가 2차전 4세트 초반 무릎부상까지 당했다. 선수 구성 등 객관적 전력과 시즌 상대전적에서도 앞섰던 대한항공의 참패(4패)는 그러나 다음 시즌 대한항공을 더 강하게 만드는 기반이 됐다.
챔프전 16번, 우승컵 13번배구판 독주하는 신치용
떠오르는 명장 신영철의 대결 시즌 성적 29승7패-28승8패
삼성은 챔프전에 직행했고
대한항공은 현대를 꺾어야 한다 만남 정규리그 1위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과 2위 신영철 대한항공 감독이 최근 경기도 성남시 분당 한 음식점에서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여유로운 시간을 나눴다. 신치용 감독이 소주와 맥주를 섞은 첫 폭탄주를 단숨에 비웠지만, 신영철 감독의 잔엔 3분의 1쯤 남아 있다. 두 잔을 더 비운 신 감독이 “시즌 최종전 끝내고 목이 말라 먹는 거야, 신 감독도 나만큼은 하잖아”라며 보챈다. 보조를 맞추느라 두 잔까지 비운 신영철 감독의 얼굴은 붉은 빛깔로 바뀌었다. “몸 생각하네, 반샷 하고.” “폭탄주 많이 마셨다가 쓰러진 적 있습니다. 뒤로 넘어졌는데 다행히 나무에 부딪쳤습니다.” 주고받는 대화에서 스타일의 차이가 느껴진다. 50대 중반을 넘긴 신 감독은 거침이 없지만 40대 중반의 신 감독은 공손함과 신중함, 그대로다. 둘은 같은 신(申)씨 성을 쓴다. 두 팀의 시즌 성적은 29승7패(신치용), 28승8패(신영철)로 1경기 차다. 3위 현대캐피탈 하종화 감독(22승14패)과 제법 차이가 난다. 대한항공이 올해도 챔프전을 치르려면 현대캐피탈을 꺾어야 한다. “현대는 센터, 세터 모두 국내 최고야,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지. 그런데 힘을 못 써.” “그래도 항상 무섭게 생각합니다. 언제든 해낼 수 있는 팀이니까요.” “그건 그렇지,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욕먹어.” 신영철 감독은 올해 현대캐피탈에 5승1패를 거뒀다. 5승 중 2승이 풀세트 접전. 또 딱 한번 졌던 1패가 5라운드 인천 안방경기였던 2월9일의 0-3 완패였다. 풀세트 접전과 최근의 패배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다. “현대는 큰 경기를 많이 해봐서 그게 강점 아닙니까? 그 경험을 무시 못합니다.” “스타팅이 너무 자주 바뀌네. 국가대표까지 다 해봤던 애들인데 그러면 조율이 쉽지 않지. 현대처럼 국내 최고 세터가 둘이나 있다는 게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조화가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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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18일 저녁, 신치용 삼성화재 배구단 감독(오른쪽)과 신영철 대한항공 배구단 감독이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 음식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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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배구단이 3월18일 낮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정규리그 현대캐피탈과의 마지막 경기를 하고 있다. 삼성이 1 대 3으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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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프전 우승을 잡은 삼성
대한항공의 첫 우승이 좌절됐다 올해도 그들이 다시 만난다면?
“대한항공 기세가 워낙 좋아
서브와 리시브의 대결이 되겠지”
“삼성을 상대하긴 쉽지 않죠
하지만 작년 꼴은 안 날 겁니다” 그렇다고 늘 감독이 시시콜콜 얘기를 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했다. “감독도 마음과 생각, 지혜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선수들에겐 게으른 지도자가 돼야 합니다. 감독이 자꾸 모든 것을 다 하려 하면, 코치와 선수들이 설 자리, 해야 할 일들이 없어지죠. 경기 중에도 잘못을 꾸짖는 게 아니라, 잘 안된 문제를 지적해 팀이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는 가급적 선수들을 풀어주는 쪽으로 관리하는 스타일이다. 경기에서도, 운영에서도 그렇다. 외박, 휴가 일정도 미리미리 알려줘 쉬는 것도 선수들이 계획성 있게 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선수들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분담의 역학을 통해 자발성과 창의성에 기초한 조직력으로 팀을 만들려는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날 드림식스와의 안방 최종전은 졸전 끝에 1-3 패배였다. 경기를 마치고 점보스의 전용버스에 오르는 선수들에게 신 감독이 한마디 건넨다. “팀 공격성공률 33.3%다. 세터만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공격수들도 뭐가 문제인지 깨달아야 한다.” 비주전 멤버들의 다음날 훈련스케줄이 신 감독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출사표 2011~2012 V리그 챔프전(7전4승제)은 4월7일 삼성화재 안방인 대전에서 시작한다. 삼성화재는 넉넉한 시간이 또 하나의 큰 전력 요소다. 대한항공은 31일부터 시작하는 플레이오프(3전2승제)에서 현대캐피탈을 물리쳐야 챔프전에 나간다. 3차전까지 간다면 4일에 종료되니 휴식일은 이틀밖에 없다는 게 불리한 요소다. 승부의 세계는 특히 큰 경기일수록 유·불리한 요소들이 승패를 늘 좌우하기보단 그게 반작용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 지난 시즌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까지 6차전을 치르고 올라온 삼성화재가 챔프전에 직행한 대한항공을 제압한 게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올핸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대한항공이 유리할까? 두 감독의 저녁식사가 끝나갈 무렵 신치용 감독이 다시 대한항공에 대해 말을 꺼냈다. “선수 구성으론 현대가 결코 밀리지 않는데 대한항공에 비해선 힘이 덜 느껴진다. 힘이 느껴지지 않는 현대는 그래서 무섭지가 않다. 그런데 대한항공은 확실히 올해 변했다. 짜임새가 좋다. 이건 엄살떨기가 아니다.” 그러자 신영철 감독의 반론이 나왔다. “단기전은 다릅니다. 정규리그처럼 길게 가는 게 아니니, 집중력 싸움이지요. 삼성화재의 응집력과 큰 경기의 전통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국내 최고인 가빈의 한 방도 있구요.” 두 감독의 말 속에 다시 묘한 긴장감이 들자, 신치용 감독이 대뜸 한마디 내뱉는다. “작년에 한번 해봤잖나. 철마다 꼴뚜기냐.”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에서 또 한번의 ‘공방전’이 오갔다. 신치용 감독은 “이번 챔피언결정전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대한항공의 기세가 워낙 좋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신영철 감독은 “우리 팀은 톱니바퀴처럼 팀이 돌아가야 경기가 풀리는 만큼 모든 선수들이 제 몫을 해줘야 한다”며 “챔프전에 간다면 더이상 작년과 같은 상황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두 감독은 물론 해설위원 등 전문가들 눈에도 서로에 대한 분석과 작전 구상은 모두 끝난 셈이다. 신치용 감독은 대한항공과 맞붙는다면 이번 챔프전의 승부처는 바로 이것이라고 단언했다. “대한항공의 서브가 잘 들어오면 우리가 힘들어지고, 우리 리시브가 살아나면 대한항공이 어려워질 것이다. 바로 서브와 리시브의 대결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의 싸움으로 귀결될 것이다.” 챔프전 2년 연속 만남은 두 감독에겐 너무나 큰 차이로, 그리고 의미도 다르게 다가오고 있다. ‘작은 신’ 감독에겐 다시 ‘도전’의 기회로, ‘큰 신’ 감독에겐 정규리그 2승4패로 대한항공에 밀렸던 열세를 만회하려는 또 한번의 ‘반전’의 기회로 말이다. 대전·인천·용인·성남·천안/글 권오상 기자 kos@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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