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승부 / 홍명보 vs 차케로니
▶ ‘다른 팀에게 져도, 너에게만큼은 질 수 없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사상 첫 월드컵 16강에 오른 일본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한국팀이 월드컵 4강에 진출했기 때문이죠. 숙명의 라이벌인 한국과 일본의 축구 국가대표팀, 이번 2014 브라질월드컵에선 어떤 선의의 경쟁을 펼칠까요. 실마리를 풀어보기 위해 두 팀의 감독인 홍명보, 차케로니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24년 동안 무려 6차례의 월드컵 중계 방송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명승부를 꼽는다 해도 한일전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일본과의 축구 경기는 늘 흥분되고 기대되는 맛(?)있는 경기다. 해설자 시절에 한일전 오프닝 멘트는 늘 이렇게 시작했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지만 역사적으로, 정서적으로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나라 일본과의 경기, 우리 선수들은 과거 선배들이 해왔듯이 기필코 승리하겠다는 의지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승리할 겁니다.” 이렇게 전투적인 오프닝 멘트 덕분인지 한일전의 시청률은 늘 대박이었다. 1998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당시 한국팀은 차범근 감독이었고, 일본은 가모 슈 감독이었다. 역전골을 허용한 뒤 얼이 빠진 모습으로 하늘을 주시하며 패배의 아픔을 절절히 느끼던 가모 슈 감독은 결국 이 경기의 패자로서 중도사퇴했다. 가모 슈와 러닝메이트였던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오카다 다케시 코치의 절망 어린 표정도 잊을 수 없다. 2014 브라질월드컵은 이미 시작됐다. 월드컵 출전권을 딴 32개의 나라는 나름의 목표와 전략을 바탕으로 월드컵 준비에 올인한다. 한국과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월드컵 본선 전 마무리훈련 캠프로 미국의 마이애미를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일본은 월드컵 8강이라는 거창한 꿈을 향해 총력전을 경주하고 있다. 그 중심에 홍명보 감독과 알베르토 차케로니 감독이 있다.월드컵에만 4차례 출전하고
월드컵대표팀 감독 밑에서
트레이너·코치를 맡아왔던
홍명보 감독은 한국 축구의
준비되고 계획된 황태자였다
압박과 빠른 속공 강조하며
신예·국내파·해외파 동원해
경기마다 실험 계속한 홍명보
그러나 월드컵 성공은 박주영 등
해외파의 경쟁력에 달려있다
런던올림픽 동메달이라는 빛나는 훈장 홍명보 감독은 한국 축구의 준비되고 계획된 황태자였다. 월드컵에만 4차례 출전한 화려한 선수생활과 딕 아드보카트, 거스 히딩크, 김호, 허정무, 이회택 등 한국 월드컵대표팀 역대 감독 밑에서 선수로 활동하거나 트레이너, 코치를 맡으며 축구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단계를 착실히 밟아왔다. 홍 감독은 현역에서 은퇴한 뒤 프로팀 혹은 대학팀 등의 일선 지도자 생활을 하지 않고 청소년대표, 올림픽대표, 국가대표 감독으로 오른 독특한 이력의 지도자다. 2010 남아공월드컵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한국 축구가 원정 16강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뒤 국내 프로리그에서 활동하던 지도자들이 모두 국가대표 감독직을 고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는데 그 배경에는 홍명보가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 감독은 홍명보’라는 강한 묵시적 동의가 축구계에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대표팀 감독 대상 지도자들이 서로 대표팀 감독직을 사양하거나 거부하는 분위기로 확산됐고 결국 축구계 ‘야당 인사’로 꼽히는 조광래 감독이 궁여지책(?)으로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그런 조광래 감독의 경질 빌미는 한일전의 대패였다. 2011년 8월 삿포로에서 열린 일본과의 원정경기에서 0-3으로 지면서 축구협회에 경질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조광래 감독으로서는 당시 박지성, 이영표가 빠진 상황에서 완패를 당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었지만 여론은 3골 차 대패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은 조광래, 최강희를 돌아 자신에게 온 국가대표 감독의 기회를 숙명적 과제로 받아들였다. 홍 감독은 취임 일성으로 ‘한국형 축구’라는 강한 이미지를 내세우며 ‘압박’과 ‘빠른 속공’의 축구를 강조했다. 홍 감독이 강조했던 한국 축구의 실체는 올림픽대표 감독을 맡았던 2012 런던올림픽에서 볼 수 있었다. 강한 체력은 기본이었고, 공격수 미드필더까지 수비에 가담시키며 수비 라인과 폭을 안정시키는 인상적인 경기를 소화했다. 또 수비 상황에서 상대 볼을 끊는 상황이 되면, 무서운 속도의 카운터어택(역습)으로 연결하며 결정적인 골을 뽑아냈다. 한국 축구가 그동안 국제무대 최고의 성과로 내세웠던 1983년 멕시코 청소년축구 4강을 뛰어넘는 올림픽 동메달 쾌거는 홍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신분 상승을 하는 조건으로 충분했다. 홍 감독은 조광래 감독 경질 때도 영입 1순위였다. 최강희 감독의 레임덕 현상 때도 홍 감독에게 올림픽대표팀 지휘권과 국가대표팀까지 전권을 줘야 한다고 축구계 여론은 비등했다. 이때마다 그는 정중히 사양했고, 더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한국 축구와 홍명보의 운명은 한배를 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홍 감독은 축구협회의 거듭된 요청에 마음을 바꿔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했다. 홍 감독은 취임 일성으로 ‘원 팀, 원 골, 원 스피릿’(One team, One goal, One spirit)을 말했다. 왜 홍 감독은 이런 모토를 강조했을까. 조광래, 최강희 감독 지휘 아래 아시아지역 2, 3차 예선전을 거치면서 국가대표팀은 해외파와 국내파 중심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위험한 팀 운영을 했고 심지어 이러한 문제는 기성용의 트위터 사건으로 확대되는 양상으로 치달았다. 홍 감독의 취임 뒤 한국 축구대표팀은 급격히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안정적인 팀 운영에 큰 힘이 된 요인은 런던올림픽 동메달 감독이라는 빛나는 훈장의 배경과 함께,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절대적 선발 기준이라는 원칙에 선수들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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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케로니 감독은 2011년 일본을 아시안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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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으로 20살 전 은퇴했지만
꾸준히 지도자 길 준비하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빅3 팀을
이끈 두명의 감독 중 하나 된
차케로니 일본 대표팀 감독
일본 선수 유럽에 진출시켜
대표팀 경기력 끌어올리며
피파랭킹 아시아 1위 유지
가가와 신지·혼다 게이스케 등
유럽파 부진에 위기 찾아와
맨유의 벤치워머 된 가가와 신지 사실 일본의 승승장구의 중심엔 유럽파가 있었다. 일본은 남아공월드컵 이후 차케로니가 앞장서 많은 선수들을 유럽에 진출시키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표팀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전략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 대표팀의 전술적 핵인 엔도 야스히토(감바 오사카)처럼 국내파를 미드필드에 중용하기도 했지만, J리그 득점왕 출신의 마에다 료이치(주빌로 이와타)를 박대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팀의 주축엔 유럽파를 선호하는 뚝심을 밀어붙인 것이다. 그러나 차케로니는 최근 들어 크게 흔들린다. 승리보다 패배가 많은 A매치 결과 때문이다. 일본은 2013 브라질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3전 3패를 기록했다. 브라질, 이탈리아, 멕시코에 모두 패했다. 일본 대표팀은 엄청난 비판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홈팀 브라질에 0-3, 멕시코전은 1-2, 이탈리아와는 7골이나 주고받는 화끈한 경기를 하며 3-4로 패했다. 3패라는 결과만 보면 차케로니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탈리아전과 멕시코전은 내용적 측면에서 그래도 의미있는 경기를 했다고 주장할 만한다. 날카로운 패싱 플레이가 위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천재 스트라이커 박주영의 부진이 홍 감독의 고민이듯, 일본의 천재 가가와 신지의 부진은 차케로니의 고민이다. 가가와 신지는 물론 박주영보다 다소 나은 입장이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입지는 입단 초기보다 더욱 좁아지고 있다. 가가와가 맨유로 오기 전인 2011~2012 시즌 분데스리가에서의 활약은 세계 축구계로부터 주목받기 충분했다. 도르트문트에서 무려 17골이나 넣는 무서운 폭발력을 보이며 팀 우승의 꽃으로 대접받았다. 영국으로 이적할 당시 앨릭스 퍼거슨 감독의 맨유 세대교체 카드로 영입돼 2012~2013 시즌에는 6골을 넣고 나름의 팀 공헌도가 평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맨유의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 틈에서 생존할 수 있는 틀을 만들며 한차례 해트트릭까지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 들어 상황은 급변했다. 데이비드 모이스 감독 취임 뒤 가가와는 출전 기회를 쉽게 잡지 못하고 벤치워머(후보)로 전락했다. 지난 26일 그리스에서 열렸던 2013~2014 유럽축구연맹컵 16강 1차전 올림피아코스FC와의 경기에서 맨유는 0-2로 패해 충격에 빠졌다. 2-0으로 스코어가 벌어진 뒤 경기 60분 만에 가가와를 교체 투입했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맨유를 떠나 터키로 이적한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혼다 게이스케도 세계적 명문 AC밀란으로 이적했지만 출전 기회는 줄어드는 양상이다. 이들 외에도 일본의 유럽파들은 지난 시즌과 비교해 팀 내 입지가 불안하다. 인터 밀란에서 뛰는 사이드백 나가토모 유토, AC밀란의 혼다 게이스케, 독일에서 뛰고 있는 오른쪽 풀백 우치다 아쓰토(샬케04), 미드필더 사카이 고토쿠(슈투트가르트), 하세베 마코토(볼프스부르크), 미드필더 혹은 수비수 역할을 하는 호소가이 하지메(헤르타 베를린), 공격수 기요타케 히로시(뉘른베르크), 공격수 오카자키 신지(마인츠), 벨기에에서 활약하는 골키퍼 가와시마 에이지(스탕다르) 등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많은 유럽파가 활약중이지만 팀 내 활약은 지난 시즌보다 분명 부진하다. 이러한 일본의 유럽파 선수들이 차케로니의 손에서 다시 조련될 것이다. 신문선 성남시민축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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