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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15 09:56 수정 : 2012.05.15 13:58

[한겨레 창간 24돌 특집]
탈출! 피로사회

야근·휴일근무가 일상이다. 퇴근 뒤에도 업무로 술을 마신다. 주말에 쉬어도 불안하다. 한국 사회에서 일중독에 걸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주변으로부터 ‘일중독자’라는 소리를 듣는 평범한 30대 직장인의 고백을 통해, 우리 사회가 왜 피로에서 탈출하기 쉽지 않은지를 살폈다.

물론 1000만원 덜 받으며
적당히 일하고
안 잘리는 회사 있다면
그리로 가겠죠

근데 그런 게 없다니까요
난 워커홀릭 아니에요
지금 시장이 요구하는 만큼
일하는 것뿐이라고요

다만 평생 살 동반자가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결혼 못하는 건가

전화를 못 받아 미안해요. 긴급회의가 있어 주말 내내 전국 지사 몇 곳을 돌았어요. 폰 배터리가 1% 남아 업무 외 전화를 받을 수 없었어요. 무슨 출장이냐고요? 지난 3월부터 미국과 체결한 에프티에이가 발효됐잖아요. 그 후속 조처로 다음달부터는 한국으로 들어오는 화물에 대해 미국이 증빙서류를 발급해주는 규정이 생겨요. 얼마 전 회사에서 그걸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췄는데, 각 지사가 잘 운영하는지 알아보러 간 거죠. 전 외국계 무역회사에서 수출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김동현(가명·35)이라고 합니다. 직급은 팀장이고요.

올해 초 팀장으로 승진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를 겁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다 3년 전 남들보다 늦은 32살에 이 회사에 입사했어요. 남들 따라잡으려고 미친 듯이 일했죠. 아침 9시 출근인데, 전 주로 8시까지 도착했어요. 항상 준비가 돼 있으면 실수도 적게 하는 법이거든요. 퇴근은 매일 밤 11시였어요. 그땐 부서가 새로 생겼을 때라, 나 혼자 일을 다 했어요. 사람 한 명을 더 달라는 말은 안 했어요. 저한테 일이 주어지면 일단 다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3년 만에 팀장이 됐죠. 늦은 편은 아닌 것 같아요. 팀장 되면 편해질 줄 알았더니 역시 아침 8시까지 출근해야 하더군요. 협력업체들이 모두 업무를 8시에 시작해요. 일찍 나와서 회사가 주문한 일을 업체가 잘 처리하는지 확인해요. 타이로 보내라고 한 물건이 베트남으로 발송되는 일은 없는지 체크하는 거죠. 사원들 업무 지시할 것도 챙기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요. 아, 물론 9시에 출근해도 지장이 있는 건 아니에요. 정시에 오는 팀장도 있죠. 그러나 조금 더 원활하게 일하려면 아무래도 빨리 출근하는 게 좋겠죠.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부서에서 제가 항상 제일 먼저 회사에 도착하는 편입니다.

대신 퇴근은 좀 빨라졌어요. 약속이 있으면 저녁 7시에도 나가요. 주로 거래처 사람들과의 약속인데, 우리 회사가 ‘갑’일 때도 있고 ‘을’일 때도 있죠. 을일 땐 상대방 분위기 맞춰주느라 새벽까지 룸살롱에서 ‘양폭’을 마셔요. 절대 취하면 안 돼요. 인사불성된 사람들 다 택시 태워 보내고 집에 돌아옵니다. 새벽 2시쯤 되는데 잠시 눈 붙이고 5시 반에 또 일어나 출근 준비하죠. 좀 힘들긴 하지만, 먼저 집에 가거나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요. 주5일 근무제를 하지만, 난 거의 격주로 토요일은 출근해요. 다음주 월요일에 일할 거 미리 준비하면 마음이 편하니까요. 주말 이틀씩 꼬박 챙겨서 쉬면 불안해지더라고요.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유형은 두가지예요. 기본적으로 외국계 회사는 복지가 좋잖아요. 인사평가나 승진에 목 안 매고 적당히 일하면서 자기 취미생활 챙기는 유형이 있어요. 또 하나는, 높은 직급까지 올라가려는 성취욕이 강한 사람들. 이 비율이 보통 7:3 정도입니다. 전 3에 속하는 것 같아요.

마포구 한 건물앞의 직장인들.
왜 그렇게 성취욕이 강하냐고요? 글쎄요, 원래부터 그런 성격이긴 했어요. 하지만 제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내 나이대 직장인들 대체로 그런 것 아닌가요. 현재 내 연봉은 4500만원 정도예요. 같은 나이대의 다른 직원들과 비교하면 얼추 비슷한 것 같아요. 입사가 늦은 것치고는 성과가 있죠. 그게 다 지금까지 한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마흔 되기 전에 연봉 1억원 가까이 받는 게 목표예요.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건 아니에요. 시장에서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평가의 기준이 돈이잖아요. 제 시장가액을 높여야 다른 회사에 더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될 수 있고, 또 이 회사에서 승진할 수도 있고, 기회가 되면 내 회사를 차릴 수도 있는 거죠. 특별히 정해놓은 방향은 없어요. 일단 마흔 전에 최대한 내 시장가치를 끌어올려 제대로 평가받자는 거예요.

언젠가는 저도 이 업계에서 아웃되겠죠. 45살이 될지 50살이 될지 모르죠. 회사에서 퇴직 직전에 재취업 훈련 프로그램 받는 상사들 보면 내 미래도 갑갑해요. 퇴직한 뒤 편히 살고 싶어요. 당연한 바람이죠. 그 생활을 보장받으려면 지금 여기서 열심히 일해야죠. 돈 없는데 편히 살 수 있겠습니까.

내 내면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있는 것 같아요. 한번 인정받으니 계속 앞서나가고 싶다는 욕망도 있고요. 가끔씩 그게 스트레스일 때가 있지만, 그냥 친구들 만나 인생 얘기 들으면서 풀죠. 다들 비슷비슷하게 사는 거 보고 위로를 얻어요.

물론 가족들이 걱정해요. 일이 안 끝나면 집안 제사도 참석 안 하거든요. 어머니는 “건강 챙겨라,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 하지만, 지금이 일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투자하려면 지금 할 수밖에 없다고 해요. 하지만 딜레마가 있어요. 지금은 사회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이런 내 삶에 만족해요. 어느 정도 성과도 내고 있어 행복하다고 할 수도 있죠. 다만 나와 같이 평생을 살 동반자가 이런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이에요. 그래서 아직 결혼을 못하는 것인가 싶기도 해요.

누구는 그래요. 일 좀 줄이고 돈 좀 적게 받고 그냥 여유롭게 살라고 하죠. 하지만 그건 배부른 소리예요. 우리 세대 직장인들이 지금 개처럼 일하는 이유가, 다른 걸 버리고 돈을 택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봐요.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그렇지 않아요. 지금 제 연봉에서 천만원 줄이면 일 적게 할 것 같나요? 아니에요. 이 회사 전에 다니던 중소기업에선 2500만원 받고 일했어요. 그때도 지금과 똑같이 일했어요. 대안적인 삶은 동화책에나 나오는 삶 같아요. 아 물론 3500만원 받으며 적당히 일하고 안 잘리는 회사 있다면 그리로 가겠죠. 근데 그런 게 없다니까요. 알고 보면 난 워커홀릭 아니에요. 지금 시장이 요구하는 만큼 일하는 것뿐이라고요.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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