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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부산 사직동의 빌딩 지하 정화조에서 오수를 처리하고 있다. 부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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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쏙] ‘살인공기 공포’ 지하노동자의 여름
똥·오줌이 쌓이는 정화조와 생활하수가 흐르는 지하 하수도는 ‘살인 공기’의 둥지다. 그 곳에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깔끔한 도시생활을 지하에서 떠받치는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살인 공기에 노출돼 있다. 더러운 노동현장에서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두려움으로 여름을 맞는 지하 노동자의 작업 현장에 동행했다. 1.5m 높이의 작은 철문을 열자, 안에 꽉 차 있던 똥 냄새가 순식간에 쏟아져 나왔다. 지하 2층 기계식 정화조에서 시작된 냄새는 계단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조금 뒤 1층에 있는 슈퍼 주인이 다짜고짜 소리쳤다. “장사 방해할 낍니까. 빨리 끝내소!” 마스크 하나 갖추지 못한 신아무개(48)씨는 맨몸으로 호스를 이고 허리를 굽혀 똥 냄새 속으로 들어갔다. 기자가 들고 간 측정기를 보니 8평짜리 정화조 안의 산소농도는 20.9%로 정상 범위(18~23.5%)였고, 황화수소 농도는 0.3ppm으로 역시 정상 수치(10ppm 미만)였다. 악취가 올라왔다…분뇨탱크 1m아래 측정기를 넣었더니
85ppm로 수치가 치솟았다
10ppm 넘으면 맡는 즉시 쓰러진다
“마 쓰러집니대이, 퍼뜩 나가소” 정화조 안쪽까지 들어가니 바닥에 가로세로 60㎝의 구멍이 나 있었다. 5층 상가건물에서 나오는 분뇨를 담는 20t짜리 분뇨탱크가 그 구멍 아래에 있다. 똥은 탱크의 3분의 2까지 차올라 있었다. 지난 1년간 쌓인 양이다. 신씨가 호스를 똥에 꽂았다. 말랑한 고무호스는 찐득찐득한 똥 속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폭기합시데이.” 신씨가 소리치자, 밖에 있던 정화조 관리인 김아무개(43)씨가 버튼을 눌렀다. 분뇨탱크 안에 설치된 모터가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호스가 똥을 빨아들이기 쉽도록 공기를 주입해 휘저어 묽게 만드는 작업이다. 똥이 부글부글 끓는 듯 출렁였다. 메탄·황화수소·암모니아가 뒤섞인 악취가 올라왔다. 황화수소 측정기를 탱크 1m 아래에 집어넣었더니 수치가 85.1ppm까지 치솟았다. 10ppm 이상이면 그 공기를 맡는 즉시 쓰러진다. 탱크 안으로 들어가면 즉사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오래 있으몬 마 쓰러집니데이. 퍼뜩 나가소.” 신씨가 기자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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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부산 사직동의 빌딩 지하 정화조에서 오수를 처리하고 있다. 부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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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조원동 대형 하수도관에서 하수도 노동자가 하수도관에 쌓인 슬러지를 걷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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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하고, 환기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한 집이라도 퍼뜩해야 하는데
언제 다 지키고 있겠어예” 산업안전보건법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보면, 맨홀·정화조·우물·터널·암거 등 17개 장소를 ‘밀폐공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곳에서 작업하려면 반드시 사전에 주변 공기를 측정해 산소 18% 이상, 메탄가스 10% 이하, 황화수소 10ppm 미만, 일산화탄소 30ppm 미만 등 4가지 수치가 기준치에 부합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기준에 맞지 않으면 환기를 하고 기다려야 한다. 작업 전 공기 농도가 정상이라도 작업 도중 언제든지 유독가스가 새어나올 수 있어 계속 환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지키는 현장은 거의 없다. “규칙대로 하면 작업 속도가 늦어져서 안 됩니더. 한 집이라도 퍼뜩 청소해야 하는데 언제 다 지키고 있겠어예.” 이씨가 말했다. 실제로 지하 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질식사의 90% 이상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인재’다. 지난 5월 서울 동대문환경자원센터 지하 2층 작업장에서 용접작업을 하던 용역업체 직원이 음식물쓰레기 투입구 안으로 떨어진 철판을 꺼내러 들어갔다가 산소 결핍으로 질식해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지난 4월에도 경기 파주시의 한 육군부대 오수처리장에서 용역업체 직원이 정화조 내부 철판 실리콘 마감 작업을 하다 황화수소에 질식돼 목숨을 잃었다. 두 사례 모두 작업 전 가스 측정, 환기 등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왜 안전관리가 안 될까. 질식사한 지하 노동자들은 영세한 민간 용역업체 소속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정화조 청소업체는 전국적으로 1162개, 노동자는 4049명(2010년 환경부 조사)에 이른다. 분뇨처리는 이들 업체가 도맡는다. 구청은 각 가정에 1년에 한번 이상 정화조 청소를 하라고 통지하고, 기간 내에 청소했는지 확인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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