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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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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쏙] 여국화씨의 눈물
13일 강원도 원주의 초등학교 6학년생 3명이 20대 지적장애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올해 1월 인천의 무료급식소 운영자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드러난 10대 자매도, 8일 충남 서천에서 마을 주민 2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50대 여성도 지적장애인이었다. 지적장애 여성을 상대로 한 성폭력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이 집계한 장애인 대상 성폭력은 2007년 199건에서 2012년 656건으로 5년 동안 3배 이상으로 늘었는데, 피해자의 70% 이상이 지적장애인이다. 오빠와 양육시설서 자란 여씨성인 돼선 갈 곳 없어 떠돌다
맡겨진 농가서 노예 같은 생활 지난해 충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는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수양딸을 5년 넘게 성폭행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사건을 통해 지적장애 여성이 성범죄의 위험에 노출되는 과정과 끔찍한 범죄가 은폐되는 사회구조, 정부의 지적장애인 보호제도의 문제점 등을 살펴봤다. ■ 7년의 지옥 여국화(가명·28)씨는 1985년 세 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지적장애가 있었다. 어머니는 가출했고 아버지는 여씨가 6살 때 세상을 떠났다. 역시 지적장애가 있는 오빠와 함께 여씨는 충북 청주의 한 양육시설에서 자랐다. 2005년 7월 여씨는 성인이 됐다는 이유로 양육시설을 떠나야 했다. 결혼한 언니(37)는 여씨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양육시설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 집을 전전하다 여씨는 그해 가을 아는 언니의 소개로 아무 연고도 없던 충남의 한 농가에 맡겨졌다. ‘7년의 지옥’이 시작됐다. 여씨가 ‘아빠’와 ‘엄마’라고 부르게 된 임아무개(49)씨와 조아무개(64)씨는 여씨에게 일만 시켰다. 새벽 5시에 일어나 1만평이나 되는 논밭을 뛰어다니며 일을 거들었다. 짚을 나르고 오이를 기르고 집안 청소를 했다. 2007년 봄 여씨는 스물두살이 됐다. 아빠가 여씨를 집 앞 저수지 낚시터로 불러냈다. 아빠는 여씨를 배에 태워 물 위에 뜬 좌대로 데려갔다. 그는 “한번만 안아보자”는 아빠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아빠는 짐승으로 변했다. 저수지 한가운데, 도망칠 곳도 도와줄 이도 없었다. 그날부터 아빠는 수시로 못된 짓을 했다. 여씨는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는 건지도 모른 채 울기만 했다. 어느 날 여씨의 배가 불러왔다. 아빠는 “엄마한테는 ‘낚시터 손님한테 당했다’고 말해라”고 했다. 엄마는 여씨를 산부인과로 데려갔다. 임신 4개월째였다. “병원 갔어요. 검사받고 약 먹고 누워 있었는데 배가 아팠어요. 아기집에서 아기 죽었어요. 화장실에서 이렇게 동그란 게 나와 가지고.” 7살 수준의 지적 능력을 지닌 여씨는 기억을 떠올리며 입술을 떨었다. 스물둘에 시작된 ‘아빠’의 성폭력
집 찾아온 경찰관에 발각
면사무소선 깜깜·주민들은 쉬쉬 ■ 방치와 탈출 여씨가 살던 마을의 면사무소 복지 담당 직원은 여씨의 집에 거의 가보지 않았다. 면사무소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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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 자체 어려워…대책 시급
국가서 기본적 성교육 나서야 ■ 합의 요구하는 ‘아빠’ 시급한 대책은 여씨처럼 수년째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장애 여성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지적장애인들은 대체로 성폭력을 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신고 자체가 어렵다”며 “지적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성교육을 국가가 지속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가 2010년 진행한 ‘성폭력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조사에 응한 성폭력 피해 장애인 중 37%가 ‘그냥 당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이유는 ‘그 사람의 행동이 성폭력인지 몰라서’가 25%, ‘어떤 행동을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가 22.2%였다. 사법부도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장애인이 ‘항거불능 상태’였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일쑤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형사1부(재판장 이동욱)는 1월16일 임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폭행·협박을 동원한 장애인 성폭행으로 보아 징역 10년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그보다 처벌 수위가 낮은 ‘위계에 의한 간음’으로 본 것이다. 여씨는 사건이 알려진 뒤 한 복지시설에 입소했다. 여씨가 원할 때까지 평생 머무를 수 있다. ‘아빠’ 임씨는 여씨에 대한 피해 보상으로 1000만원을 법원에 맡기고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2011년 12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지적장애 인구는 16만7000여명이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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