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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22 20:47 수정 : 2012.05.24 11:39

예치 통한 국가 개혁 ‘경세유표’
덕·능력 갖춘 공직자 ‘목민심서’
억울한 죄인 없어야 ‘흠흠신서’
“현실적인 실학적 독서법 필요”

올해는 조선이 낳은 최고의 지식인으로 꼽히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태어난 지 250년 되는 해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민생 현실과 답을 주지 못하는 정치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 개혁의 큰 꿈을 품었던 다산을 떠올리게 만들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유네스코가 헤르만 헤세, 장자크 루소 등과 함께 그를 2012년 기념할 인물로 꼽아, 다산의 사상이 전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소통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산 탄생 250년을 맞아, <한겨레>는 다산의 삶과 사상을 다양한 방면에서 조명해보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모두 8차례 수요일마다 이어갈 기획 시리즈를 통해 피상적으로 막연하게만 알았던 다산의 삶과 사상을 좀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이해하는 기회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목민심서>를 베트남 지도자 호찌민이 애독했답니다.”

확인되지 않은 얘기다. <경세유표>의 비본이 동학군에게 전해졌다는 것도 개연성이 낮다. 다산 정약용이 서구의 누구와 비견된다 하는 것도 뭔가 외부의 권위에 의탁하려는 것 같아 썩 달갑진 않다. 이제는 그 누구보다 ‘지금 여기’ 사는 우리가 다산의 글 한 줄이라도 읽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2009년 전남 강진군이 수묵인물화가인 김호석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에게 의뢰해 제작한 다산 정약용의 새로운 초상화. 기존 초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돋보기안경이 이채롭다. 전라남도 강진군청 다산기념관 제공
다산의 저서는 실로 방대하다. 500여권으로 분량도 많고 분야도 다방면이다. 시문·경학·정법·역사·지리·언어 등등, 심지어 의학까지 뻗어 있다.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를 ‘일표이서’(一表二書)라고 부르는데, 일표이서는 다산의 저서들 가운데 어떤 위치에 있는가?

그는 자신의 저서를 총괄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육경사서(<시경><서경><예기><악기><역경><춘추> 등 고대 중국의 6가지 경서와 유교의 네 기본 경전인 <대학><논어><맹자><중용>을 합쳐 일컫는 말)의 연구로 수기(修己, 자신의 몸을 닦음)를 하고, 일표이서로 천하국가를 위했으니, 본과 말이 갖추어졌다.”

다산의 학문은 주체의 도덕적 수양을 위한 ‘경학’과, 치국평천하(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함)를 위한 ‘경세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전통시대 학문과 정치가 ‘수기-치인’의 구조를 띠었던 것과 상응했다. 먼저 도덕적 주체로 자신을 확립하고, 사회적 관계와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또한 유학의 패러다임이 도(道)-기(器), 체(體)-용(用), 본(本)-말(末)로 구성된 것과도 통했다.

전통시대의 유학자 관료들은 전자를 중시하여 후자를 소홀히 한 흐름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고원한 이론과 도덕을 말하지만, 실무와 민생에 밝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다산을 비롯한 실학자들은 양자를 모두 중시했다. 다산은 “학문은 수기가 절반이요, 치인이 절반이라” 말했다. 수기의 학만 한다면, 학문의 절반에 불과한 것이다. 다산이 일표이서를 말(末)이라 했지만, 결코 소홀히 여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학문적 완성의 의의를 가졌다.

다산 정약용이 18년의 유배기간 동안 머물렀던 전남 강진군 다산초당의 모습. 다산은 이곳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에 이르는 저술들을 완성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일표이서는 어떤 책들인가? 다산은 이 책들을 왜 썼는가? 스스로 밝힌 글에 의하면, <경세유표>는 국가제도의 전반에 대한 개혁안으로, “우리의 낡은 나라를 새롭게 하려는 생각에서 저술한 것이다.” “털끝 하나 머리카락 하나 병들지 않은 것이 없으니,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하고야 말 것”이라는 절박한 진단과 사대부로서의 사명감 때문이었다.

<목민심서>는 “현행 법제에 따라 우리 백성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애초 제도개혁을 목표로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마냥 제도개혁만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현행 법제도에서라도 현장의 지방행정 책임자가 제대로 잘 운영하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각 편은 6개조로 하여 고금의 자료를 찾아 망라하고 간교함과 거짓됨을 파헤쳐 폭로했다. 목민관에게 주어 부디 한 명의 백성이라도 혜택 입기를 바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목민심서>는 당대까지 등장했던 여러 목민서류와 격을 달리했다. 12개 편목으로 구성되었는데, 직책을 맡게 되는 ‘부임’을 첫 편에 두고, 직책을 마치는 ‘해관’(解官)을 마지막 편에 두었다. 실무 매뉴얼의 모양이지만 그 이상이었다. 앞부분에 ‘율기’(律己:자기 관리)·‘봉공’(奉公:공직에 종사함)·‘애민’(愛民:백성을 사랑함) 3편을 두어 공직자가 꼭 갖추어야 할 세 덕목을 제시했다. 이어서 국가경영체제와 마찬가지로 이·호·예·병·형·공 6전 체제에 따라 지방행정 책임자가 해야 할 업무를 망라했다. 여기에다 흉년에 굶주린 백성을 돌보는 ‘진황’(賑荒)이라는 편목을 특별히 보강했다.

<흠흠신서>는 형사절차에 관한 것이다. 이는 당시 국가경영이나 지방행정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다는 점과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특별히 따로 쓴 것이다. ‘흠흠’(欽欽)이란 ‘신중하고 신중하다’는 뜻이다.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게 옥사를 치르거나 처벌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가경영의 전반적인 개혁 마스터플랜인 <경세유표>, 현행제도 안에서의 지방 행정관 지침서인 <목민심서>, 국가경영과 지방행정 가운데 인명과 관련된 형사절차를 특별히 엮은 <흠흠신서> 등, 일표이서는 체계성을 갖추고 있었다.

<경세유표>의 본디 이름은 ‘방례초본’이었다. ‘방례’란 ‘주례’, 곧 주나라의 예에 대응한 ‘우리나라의 예’란 뜻이다. ‘초본’이라 한 것은 꼭 확정적인 것으로 고집하지 않고 얼마든지 손질하겠다는 뜻이다. 한편 <경세유표>의 모델이 된 <주례>는 일찍이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 실학의 비조라 일컬어지는 유형원 등 국가경영의 실제를 중시했던 경세가들이 관심을 갖고 활용했던 책이다.

방례초본의 서문은 “여기에서 논한 것은 법이다. 법인데도 예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왜인가?”라는 말로 시작된다. 다산은 ‘예’와 ‘법’을 다음과 같이 구별했다. “천리(天理)에 비추어 합당하고 인정(人情)에 어울려 맞는 것을 ‘예’라고 하고,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것으로 협박하여 백성들이 덜덜 떨며 감히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법’이라고 한다.” 다산은 폭력적인 국가 작용을 반대하여 예치의 이념을 밝힌 것이다.

<경세유표>의 ‘경세’란 국가경영을 뜻하고, ‘유표’란 신하가 죽으면서 왕에게 제출하는 글을 이른다. 국가경영의 전반적 개혁 플랜이지만 결코 혁명적일 수 없는 글 형식이다. 그런데 다산의 기본적 정치경제 사상은 이미 ‘탕론’·‘원목’·‘원정’·‘전론’ 등의 짤막한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탕론’에서 왕조 교체의 정당성을 ‘아래로부터의 정치’로 설명했다. ‘원목’에서는 민이 목민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목민관이 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전론’에서는 불로소득자가 없이 모든 사람이 일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원정’에서는 ‘고른 정치’를 주장했다. 이러한 기본 아이디어는 현실을 참작하여 일표이서에 반영되었다.

이상을 향한 전진은 현실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상을 세우는 것 못지않게 현실과 제도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다산은 가치 내지 큰 원칙을 확실하게 세우고 이를 구체적 상황에 잘 관철시키고자 했다.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려 했고, 총론과 각론 모두에 충실했다. 바로 <경세유표>와 <목민심서>가 그 증표이자 결실이다.

우리는 다산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간 근대라는 관점에 구애되어 시야가 좁았던 문제도 없지 않았다. 오랜 세월에도 생명을 잃지 않고 창조적 에너지를 제공해주는 것이 고전이다. 이러한 고전을, 당시의 현실 문제에 대한 궁구와 해법 모색이라는 실천적 관점에서 열린 자세로 읽는 것이 실학이었다. 세계와 소통하며 천하대세를 전망하고 주체를 확립하고 마음을 다하여 실천하고자 노력했던 것이 실학이었다. 고전에 대한 교조적 해석이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박제와 맹목적 찬양은 반(反)실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과 실학은 실학적 독법에 의해 읽어야 한다.

김태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목민심서>의 첫 부분을 읽어보자. 다산은 경고로 시작했다. “다른 벼슬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의 벼슬은 구하지 말라.” 수령이 잘못하면 백성들이 겪는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이어 말했다. “비록 덕이 있더라도 위엄이 없으면 잘할 수 없고, 뜻이 있더라도 밝지 않으면 잘할 수 없다.”

공직자는 덕망이 있고 공공을 위해 복무한다는 뜻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그저 사람만 좋아서는 안 되고 자기 관리를 바탕으로 한 통솔력이 있어야 하며, 잘해 보겠다는 뜻만으로는 안 되고 잘할 수 있는 업무능력이 있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읽었다. 지금의 공직도 마찬가지다.

김태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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