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곧장 반론이 나왔다. 신동원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다산의 엄밀한 고증학적 접근 태도를 잘못 이해해 ‘임상 경험 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와하라 교수의 지적대로 다산의 과학기술이 그의 사상 전체에서 큰 구실을 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역병을 막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여 써낸 <마과회통>은 시대를 고민하는 당대 지식인이 내놓을 수 있는 최대치였다”고 반박했다.
짧은 논쟁이었지만, 이 풍경에서 다산이 태어난 지 250년이 된 오늘날 다산 연구 앞에 놓인 과제들을 읽어낼 수 있다. ‘과학기술에 천착했다’는 막연한 평가에 그치지 않고 ‘다산에게 과학기술이 얼마나 중요했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것, 당대 시대적 한계 속에서 다산의 작업이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밝혀내는 것, 동아시아 전반을 무대로 삼아 다산학을 새롭게 제시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다산의 학문은 ‘뿌리’와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유학 고전들을 재해석하는 연구가 ‘뿌리’인 경학이라면, 현실 정치제도부터 과학기술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에서 펼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연구는 ‘가지’인 경세론·경세학에 해당한다. 학계에서는 다산 연구의 흐름에 대해 대체로 “‘경세론’의 측면에 중점을 두고 연구되던 것이 ‘경학’에 대한 연구와 과학사와 연관된 연구로 영역이 확대돼 왔다”고 설명한다.
다산을 발굴·조명하는 계기가 됐던 1930년대 ‘조선학운동’ 이래 그동안 다산 관련 연구에는 ‘전근대 사회 속에서 근대로 가는 돌파구를 뚫으려 했던 계몽적 지식인’의 이미지가 강하게 반영됐던 게 사실이다. 실학을 성리학에 반발하는 흐름으로 보고, 여기에 근대적인 성격을 부여하려는 경향이 강했던 셈이다. 그러나 근대적 요소를 캐는 데 주력하다 보니 뿌리인 경학보다 가지인 경세학이 더 눈에 들어오기 쉬웠고, 그 영역도 워낙 다양해 다산의 종합적 면모를 제대로 밝히기는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에 대한 성찰을 거듭한 뒤로, 최근 다산에 대한 학계 연구는 크게 두가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첫째는 다산의 ‘거대 구상’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려는 흐름이다. 경학과 경세학이 맞물리는 지점들을 탐색해, 다산이 살았던 시대적 맥락 속에 다산의 학문을 자리매김하려는 작업이다.
둘째는 시야를 조선에서 동아시아 전반으로 넓혀, 동아시아가 공통으로 처했던 ‘문명의 전환기’ 속에 다산의 학문을 대입해보려는 흐름이다. 당시 조선의 실학은 중국의 고증학, 일본의 고학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흐름 위에 놓여 있었는데, 이들의 상세한 내용을 비교해보려는 시도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이런 흐름에 하나의 과제를 추가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과거 근대화라는 목표에 매달렸을 때엔 다산을 거기에 꿰어맞춰 조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서구적 근대가 많은 문제를 낳고 있는 지금은 근대를 반성하는 관점에서 다산을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다산으로부터 근대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는 것이 앞으로 다산 연구의 선도적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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