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 부드러운 햇살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오는 오후, 어느 조그만 빌라의 입구에 붙어 있는 서글픈 우편함에 눈이 간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고단함과 피로가 고스란히 읽히는 초라한 우편함에는 온갖 광고의 흔적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어느새 까치발을 한 채로 살며시 다가온 봄빛은 얄미운 꽃샘추위에 웅크리고 있는 것들에게 자신의 체온을 기꺼이 나누어준다. 수다스럽지 않게 쏟아져 내리는 한 조각 빛의 위로가 생기 잃은 어느 빌라의 우편함에 생기를 준다.
고현주/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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