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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 공장에서 사쪽이 고용한 경비용역직원들이 회사 정문 앞에 있는 노조원들을 향해 소화기를 던지고 있다. 아산/금속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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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폭력을 말하다 ③ 기업 노무담당자
노조저항 예상 땐 도급액 달라져사업주가 사실상 폭력 행사 동의
법조계 “집단폭행 방조죄 가능성” 용역업체 평소에도 ‘담당자 관리’
계약사항·액수 등 뭉뚱그려 적어
기업 쪽 ‘폭력문제 책임’ 피하기도 박근철(가명)씨는 어느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노무담당자다. 부장급인 그는 용역경비원들과 계약을 맺고 사업장에 투입한 경험을 갖고 있다. 지난달 27일 용역폭력이 발생한 에스제이엠(SJM)처럼,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용역경비직원들을 투입한 뒤 강성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원래 노조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었는데, 용역직원 투입 뒤 기존 노조에 대항하는 새 노조가 만들어졌다. 이젠 새 노조 조합원이 금속노조 조합원보다 더 많다. “금속노조만 제대로 된 노조인 건 아니잖아요.” <한겨레>와 인터뷰한 박씨는 “복수노조는 법으로 허용된 일”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어용노조’ 설립이 불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박씨는 법적 정당성을 내세우지만, 그의 회사가 용역경비업체와 체결한 계약에는 불법적 요소가 있다. “용역경비업체와 계약할 때는 노조의 저항이 예상되는 경우 또는 시설물의 위험도 등에 따라 도급액을 결정하죠.” 노동자의 저항이 예상되는 경우엔 추가 금액을 지불하는 ‘옵션 계약’을 맺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는 “경비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할 때 폭력이 발생할 것을 사업주가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집단폭행죄를 방조한 방조범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 것 자체가 폭행 방조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박씨의 증언을 종합하면, 용역경비업무 체결에 대한 ‘시장가’는 없다. 여러 ‘옵션’을 붙여 그때그때 금액을 정한다. 경비원 1명당 주·야간 근무 수당으로 얼마를 지급하고, 숙식은 별도로 제공한다는 식으로 뭉뚱그려 계약서를 쓴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항목이 세분화된 계약서 같은 걸 적지는 않아요.” 에스제이엠에 투입된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의 경우, 1명당 하루 약 34만원을 받았다. 무슨 명목으로 하루에 30만원이 넘는 돈으로 받은 것인지, 계약서만 봐서는 알 수 없다.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데 그냥 일당 30만원을 주겠어요?” 박씨가 되물었다. “노조원들의 극렬한 저항이 예상되는 경우엔 회사 쪽에선 계약액을 올릴 수 밖에 없어요.” 그러나 박씨와 같은 노무담당자도 시키는 일을 할 뿐이다. 용역경비직원 투입 여부는 기업 임원진들이 결정한다. “노조원들과 평소 교류하는 건 우리 같은 노무담당이지만, 정작 중요한 결정에선 우리도 배제되는 거죠.” 사쪽이 걸핏하면 용역경비 투입을 결정하는 배경에는 ‘모든 파업은 불법파업’이라는 경영진의 편견이 있다. 노조가 쟁의를 일으키면, 일반적으로 사쪽은 직장폐쇄부터 결정하고 곧바로 대체인력 투입을 명분삼아 용역경비직원들을 끌어들인다. “이때 경영진은 노조의 파업이 불법이라고 ‘가정’하고 시작하죠. 그게 불법인지 아닌지 법원 판결까지 기다릴 시간은 없잖아요.” 법률적 고민은 추후로 미뤄두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합법파업에 대해선 대체인력 고용이 금지돼 있다. 대체인력과 그 작업장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용역경비직원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불법이 된다. 그러나 현행법은 사쪽이 직장을 폐쇄하는 길도 열어뒀다. 노조 파괴 등을 염두에 둔 부당노동행위라는 점을 노조가 입증하지 않는 한, 직장폐쇄 조처 때문에 사쪽이 처벌받는 일은 드물다. 사쪽은 이런 법의 헛점을 이용한다고 박씨는 설명했다. 파업의 합법·불법성을 충분히 따지기 전에라도 직장폐쇄부터 결정하면, 점거 농성을 하는 노조원들을 몰아낼 수 있고, 이를 위해 경비용역업체를 선정한다는 것이다. 업체 선정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박씨는 전했다. “최근엔 용역업체들이 영업차원에서 평소에 각 기업 노무담당자들을 만나고 다녀요.” 평소 ‘영업 활동’을 할만큼, 노조파괴를 위한 용역폭력 시장이 이미 형성돼 있는 것이다. “(직장폐쇄했다는) 기사를 보고 업체 쪽에서 먼저 찾아와 ‘노조원들을 몰아내 주겠다’고 제안한 경우도 있습니다.” 찾아오는 용역경비업체가 없어도 역시 문제는 없다. “미리 업체를 정해둘 필요도 없어요.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적절한 곳을 고르면 되니까.” 에스제이엠에 투입된 컨택터스는 각종 최신 장비와 사업 이력 등을 소개하며 인터넷 홍보에 열을 올린 바 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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