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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제이엠(SJM), 유성기업 등의 노동자들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용역경비직원들이 폭력도구로 사용한 자동차 부품 ‘밸로우즈’를 공개하며 용역경비업체와 이를 방조한 경찰을 규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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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폭력을 말하다] ④ 노동자
노조쪽 “치밀한 경영권승계 전략”식당 여성노동자들 생산직 발령
중국산 부품 수입해 원청에 납품
단협위반·해고불안조성하며 자극
대표이사 12차례 협상 모두 불참 사쪽 “노조파괴 공작은 일방주장” 여름날 아침은 빨리 밝았다. 7월27일 오전 4시30분, 푸르스름한 새벽빛을 등지고 공장 철문을 넘어오는 용역경비직원들이 보였다. ‘용역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진 전날 밤부터 노동자 150여명이 공장에 비상대기했다. 반신반의했으나 결국 그들은 쳐들어왔다.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 자동차 부품회사 에스제이엠(SJM)에서 15년째 일해온 김신태(45)씨는 복면을 쓰고 곤봉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용역경비원들을 기억한다. 그들에게 떠밀린 노동자들은 공장 2층으로 달아났다. 김씨 등은 사무실 집기 등으로 계단을 막았다. 반면 용역경비직원들이 기억하는 폭력의 시작은 사뭇 다르다. 나중에 경찰에 불려간 용역경비업체 콘택터스 관계자들은 “노조원들이 먼저 폭력을 휘둘렀다”고 진술했다. 공장에 진입하는 용역경비직원들을 노조원들이 물리적으로 막아섰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 진입했던 어느 용역팀장은 “노조원들이 먼저 각목을 휘둘렀다”고 <한겨레>에 말했다. 노동자와 용역경비원이 엉켜붙은 현장에선 ‘폭력의 기원’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에스제이엠 노동자들은 그 시작을 3년 전으로 잡는다. “2009년 4월, 회사가 갑자기 경영컨설팅 전문가를 영입했어요.” 노조 조직부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50대의 ㅁ아무개 이사의 등장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소속이었지만, 노사 관계는 매우 좋았다. 처음 노조가 생겼을 때인 1996년을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의 파업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ㅁ이사가 경영 전반을 컨설팅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처음에는 근태관리를 강화하는 듯 했다. 퇴근시간 직전에 마무리 작업과 청소를 하면 “일을 더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결국 마무리 작업 시간만큼 실제 노동시간은 더 늘었다. “노사 분위기가 워낙 좋았으니까, 처음에만 해도 노조 역시 굳이 문제삼지 말자는 쪽이었죠.” 그러나 올들어 이상한 일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지난 3월, 회사가 중국산 부품을 수입해 원청회사에 납품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단가를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고 회사는 설명했지만, 부품 만드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그 자체가 단체협약 위반이기도 했지만, 이런 일이 거듭 되면 대량해고가 불보듯 뻔했다. 단체협상을 코앞에 둔 지난 4월에는 공장 식당에서 일하던 여성들을 생산직으로 발령내고 식당 운영을 외주업체에 맡겨버렸다. 역시 단협 위반 행위였다. 노동자들 사이에 정리해고의 불안감이 번졌다. 2010년 직장폐쇄 뒤 용역경비를 투입해 노조를 무력화한 경주 발레오만도 사태도 처음엔 식당 등을 외주업체에 맡기는 것부터 시작했다. 지난 4월 노사 단체협상은 이런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12차례 협상 동안 대표이사는 단 한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애초부터 노조 쪽 말은 아예 듣지 않기로 작정한 거 같았어요.” 김씨가 회고했다. 협상은 계속 결렬됐고 노조는 마지막 수단으로 노동위원회 조정과 총회투표 등 합법적 절차를 통한 파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와중이던 지난달 27일 자정, 회사는 사전통고 없이 기습적인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불과 4시간여 뒤 용역경비원들을 전격 투입해 노동자들을 폭행했다. 에스제이엠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 기간은 18년이다. 평균 임금은 연봉 4천만원 정도다. 회사는 매년 100억원 이상 흑자를 내고 있다. 올해는 사상 최대인 300억원 흑자를 예상하고 있다. 에스제이엠 노동자들은 노사갈등 분위기를 높이고 파업을 유도하여 직장폐쇄를 단행하려는 치밀한 노조파괴 공작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노동자들이 보기에 그 목적은 경영권 승계다. 에스제이엠의 최대주주는 지주회사인 에스제이엠홀딩스다. 고령에 이른 에스제이엠의 대표이사는 지난 2010년 아들에게 에스제이엠홀딩스의 최대주주 자리를 넘겨줬다. “재산 상속을 마쳤으니 이제 경영권을 넘겨줘야 하는데, 그 전에 노조부터 없애려 했던거죠.” 김씨가 말했다. 이에 대해 에스제이엠 경영진은 “노조가 불법파업으로 공장을 점거하여 용역경비업체와 계약을 맺었을 뿐, 경영권 승계나 노조 파괴 공작 등은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고 밝혔다. 김씨 등의 주장대로라면, 전국을 떠들석하게 한 ‘사설 폭력’은 자식에게 재산권·경영권을 넘겨주려는 고용주의 구상에서 시작됐다. 기업은 주주와 경영진의 소유이며 이를 위해 노동자는 언제든 내칠 수 있다는 풍토가 용역폭력을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그래도 회장님이 이 사태를 풀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용역폭력이 휩쓸고 간 뒤에도, 모든 것은 고용주의 마음에 달렸다는 김씨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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