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08 17:41
수정 : 2012.08.1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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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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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셰프의 단골집
영화 <신용문객잔>의 매력은 서커스단 곡예를 무색하게 하는 검술도, 권력을 차지하려는 지겨운 인간들의 치밀한 권모술수도 아니다. 여관 주인 장만위(장만옥)가 식탁에 올라가 손님에게 툭 던지는 만두다. 먹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는 투다. 친절한 웃음, 감히 기대했다가는 뼈가 으스러진다. 이런 거친 서비스로 한국에서 객잔을 운영한다면 단박에 욕을 먹을 게 뻔하다.
아차, 아니다. 한국에는 ‘욕쟁이 할머니’들이 있다. 욕쟁이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맛집에는 실컷 욕먹고도 사람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온다. 세상에 ‘욕’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거다. 이런 할머니의 구수한 욕이 쫄깃한 면발보다 좋아 찾는 이들이 있다. 사람마다 맛집을 고르는 기준은 다르다. 맛에 가장 민감한 요리사들도 단골 맛집이 있을까? 요리사들은 다른 이들의 맛을 연구하기 위해서나 요즘 음식업계의 트렌드를 익히려고 간다. 역시 ‘일’이다.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요리사들은 무림세계 버금가는 주방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는 맛집에서 허리띠를 푼다. 자신들만의 단골집은 요리사의 해방구다. 그들의 비밀 장부에는 그들만의 맛집 목록이 있다. ‘esc’가 이제부터 살포시 들춰보기로 했다.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 박효남(51) 상무는 요새 ‘금화로불고기’(사진·서울 마포구 동교동 소재)를 자주 찾는다. 오렌지색 간판을 지나면 가정집에서나 볼 법한 좁고 짧은 길이 실내로 인도한다. 박씨의 곁에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함께한다. 술을 한 잔도 못 마시는 박씨는 늦은 밤까지 거나한 술자리 대신 자신이 합격점을 준 맛집에서 우정을 나눈다.
‘금화로불고기’에선 주방 숯불에서 구운 한우불고기가 화로에 올라간 채 나온다. “가격 대비 식재료가 좋다”는 것이 박씨의 평가다. 반찬들의 내공이 탄탄하다고 덧붙인다. “보통 먼저 나오는 반찬이 단단한 솜씨를 발휘하면 주요리의 맛도 좋다”는 것이 그의 오랜 경험이다.
그는 요즘 소위 ‘잘나간다’ 소리 듣는 요리사들과 참 다르다. 180㎝가 넘는 키와 훤칠한 외모에 세련된 매너를 자랑하는 양식 셰프들이 많아진 요즘이다. 하지만 그의 아담한 키에서 울려 퍼지는 요리에 관한 다부진 철학은 누구도 쫓아오기 힘들다. 그는 최근 <한국방송>의 ‘강연 100℃’에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그는 이미 꽤 유명 인사다. ‘중졸 학력으로 최고 요리사 자리에 오른 이’가 그의 이름 석자 앞에 달리는 명패다. 그를 롤모델로 삼는 조리학과 학생들도 많다. 녹록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칼과 도마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선 ‘금화로불고기’ 이외에도 단골 맛집들의 이야기가 줄줄 터져 나온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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