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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02 22:39 수정 : 2012.09.03 14:08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10대 가출 청소년들의 변론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의 사무실 직원들이 지난 2008년 10월12일, 범행 현장인 수원 매교동 수원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피고인들의 동선을 재연하고 있다. 법무법인 경기 박준영 변호사 제공

[무죄의 재구성] 노숙소녀 살인사건 ⑥증거
노숙자 나씨, 2심서 진술 번복
“나도, 인철이도 안죽였다”
당시 무인카메라에 아무도 안찍혀
대법, 검찰상고 기각 무죄 확정

교문은 낮았다. 차량 통행을 막는 철제 울타리는 허리 높이밖에 되지 않았다. 누구나 쉽게 넘을 수 있었다. 반면 학교 담장은 높았다.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담장의 높이는 2m가 넘었다. 건장한 남성이라 해도 타넘기 힘든 높이였다.

2007년 5월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처음 지목됐던 노숙인 나주용(가명·당시 29살)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저는 (학교 정문인) 철문을 넘었고, 나머지(또다른 노숙인과 10대 청소년들)는 학교 담을 넘었다”고 진술했다.

박준영(38) 변호사는 경기도 수원시 수원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한참 동안 생각했다. ‘경찰은 현장을 제대로 살펴보기나 한 걸까?’ 2008년 4월 피해자 김아무개(15)양이 숨진 채 발견된 고등학교를 둘러보고 나서야 “사건 수사가 처음부터 잘못됐고, 기소된 이들 가운데 아무도 진범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박 변호사는 말했다.

전남의 작은 섬마을 출신인 박 변호사는 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다. 죽을힘을 다해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류대학 출신들에게 밀려 사건 수임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할 수 없이 택한 게 국선 변호사였다.

2008년 2월, 2년차 새내기 변호사에게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이 맡겨졌다. 돌보는 이 없이 거리를 떠돌던 10대 청소년 5명이 피의자였다. ‘일단 이 사건을 잘 이끌면 나한테도 다른 기회가 오겠지.’ 처음엔 내심 그런 계산을 했다고 박 변호사는 말했다.

밥벌이의 계산을 넘어 사건 실체를 보기 시작한 것은 한 달여 뒤였다. 경기도 청소년상담지원센터의 상담교사들이 그를 찾아왔다. “아이들에게 죄가 없는 것 같아요.” 국선 변호사는 그 말을 다 믿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하나같이 자백을 했는데, 두어명은 범인이겠지.’

확신은 없었으나 처음부터 다시 기록을 뒤졌다. 다시 들여다본 사건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살해된 10대 청소년에 대해 어느 아이는 “그날 처음 만났다”고 진술했고, 또다른 아이는 “옛날부터 어울리던 사이”라고 말했다. 한 아이가 “(정문의) 담을 넘어갔다”고 말하다 곧이어 “철문을 넘어간 것이 맞다”고 진술하는가 하면, 다른 아이는 “후문이 열려 있어 그리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검사 아저씨가 겁을 줬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도 변호사는 자신이 없었다. “검사가 아이들을 협박·회유했을 거라고 신참 변호사가 어떻게 주장하겠어요?” 박 변호사는 말했다. 1심 막바지에야 박 변호사는 검찰의 진술녹화 영상을 증거로 요청했다. 잡혀온 소년이 자백을 뒤집고 40여분간 범행을 부인하는 것을 박 변호사는 영상에서 확인했다.

막힘없이 범행을 자백한 신문조서와 달리 아이들이 머뭇거리며 수사관의 설명을 따른 것도 영상 속에서 확인됐다. “큰 건물 옆에 뭐 기억나는 것 없어? 화단 옆이라든지 아니면 무슨 계단이라든지?” “화단 옆에서 시체가 발견됐는데?” 아이들이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 수사관은 조서를 작성했다. 그렇게 작성된 진술조서에서 아이들은 “큰 건물 앞 화단 옆이었다”고 범행 장소를 정확히 밝힌 것으로 기록됐고, 그 자료는 그대로 법정에 제출됐다.

변호사는 사건 현장도 다시 둘러봤다. 노숙 청소년들이 새벽 시간에, 인적 드문 수원역 뒤편을 두고 30분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 고등학교까지 피해자를 데려가 폭행했다는 경찰 수사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수원역과 수원고 정문에 설치된 수십여대의 무인카메라에도 아이들의 모습은 전혀 찍히지 않았다.

그러나 범행 당시 10대 노숙 청소년들이 ‘함께 있었다’고 진술한 노숙인들의 증언이 여전히 유죄의 증거로 남아 있었다. 처음엔 송인철(가명·당시 29살)씨를, 나중엔 10대 청소년들을 범인으로 지목한 또다른 피의자 나주용씨가 2008년 10월 2심 법정에 섰다. “나도 안 죽이고, (공범으로 기소된) 인철이도 안 죽였어요. 인철이나 애들이 그 고등학교에 간 적이 없어요.”

나씨의 진술은 2심에서 중요한 증거로 채택됐다. 2009년 1월 2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은 “피고인들이 검찰에서 한 자백진술은 그 경위에 비춰 볼 때 신빙성에 의심이 든다”며 10대 가출 청소년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10년 7월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이제 이 사건 범인으로 남은 것은 경찰이 처음 체포한 노숙인 송인철씨와 나주용씨, 두 명뿐이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⑦‘원점’에서는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던 노숙인이 무죄 증거가 다시 발견돼 재심을 받게 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무죄의 재구성] 노숙소녀 살인사건

 ① [자백] 지적 장애 나씨, 감방생활이 두려워 송씨를 지목하다

 ② [회유] “나가게 해줄게” 형사의 구슬림에 넘어갔다

 ③ [반전] 처음엔 노숙인의 범행이라더니, 이제는 가출 10대가 ‘진범’이라고…

 ④ [조작] 울면서 “결백” 외치자 검사 “너 연기 잘한다”

 ⑤ [호소] “쌤만은 저를 믿어주세요” 한통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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