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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수원역 노숙소녀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5년 실형을 살고 만기출소한 노숙인 송인철(가명)씨가 지난달 6일 임시로 머무르고 있는 경기 수원 팔달구 ‘수원다시서기지원센터’를 나와 거리를 걷고 있다.
수원/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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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의 재구성] 노숙소녀 살인사건 ⑦원점
청소년들이 풀려나고도 2년간감옥에 갇혀 있던 송씨 호소에
담당변호사는 백방으로 뛰었다 범행현장 CCTV엔 송씨가 없었고
사망 시각도 경찰 주장과 달랐다
5년형 만기 앞두고 겨우 재심결정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의 공범으로 몰렸던 10대 가출 청소년들은 2010년 7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자백에만 의존했던 검찰의 구속기소는 무위로 돌아갔다. 이제 송인철(가명·34)씨만 감옥에 남았다. 2012년 5월 송씨는 5년의 형기를 석달 남겨두고 있었다. 몸은 바짝 말라갔다. 터져나오는 기침 때문에 밤에 잠드는 일도 쉽지 않았다. 교도소에 들어와 얻은 결핵균이 밤낮으로 송씨를 괴롭혔다. 식구들과 소식이 끊긴 것은 오래전의 일이었다. 자신을 감옥에 가둔 사법제도의 기묘한 이치를 송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10대 가출 청소년의 유무죄를 다투는 법정에서 송씨는 증언했다. “아이들도, 나도 (소녀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송씨가 거짓으로 증언한다며 위증죄로 또 기소해버렸다. 2심 법정에서 송씨의 노숙인 친구 나주용(가명·34)씨도 같은 내용으로 증언했다. “아이들도, 나도, 인철이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나씨의 증언을 받아들여 10대 가출 청소년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한국의 사법제도는 같은 내용의 증언을 다르게 대접했다. 무엇이 같고 다른 것인지 송씨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씨의 증언이 사실이라고 재판부가 인정했다. 그래서 10대 청소년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같은 내용을 증언한 나도 무죄로 풀려나야 옳은 것 아닐까. 송씨는 생각했다. 그러나 법의 판단은 길고도 복잡했다. 10대 청소년들이 풀려나고도 2년 동안이나 송씨는 감옥에 갇혀 있었다. 상해치사죄로 복역중인 송씨에 대한 재심은 기약이 없었다. 2011년 7월 서울고등법원은 송씨에 대한 재심 청구를 기각해버렸다. “요즘 제가 너무 많이 아프고 힘이 듭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는지, 아니면 여기서 그냥 끝을 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송씨는 자신을 돕고 있는 박준영(38) 변호사에게 호소했다. 10대 가출 청소년들의 국선 변호를 맡았던 박 변호사는 내처 송씨의 변호까지 맡았다. 송씨의 무죄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가 필요했다. 박 변호사는 다시 백방으로 뛰었다. 무죄를 입증할 과학적 증거를 확보했다. 수원고등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된 15살 소녀의 직접적인 사인은 ‘외상성 경막하 출혈’이었다. 외부 충격으로 뇌가 흔들리면서 정맥들이 심하게 늘어나거나 땅기어 파열되고 죽음에 이른 것이다. 경찰이 받아낸 송씨의 진술서를 보면, 송씨에게 얻어맞은 15살 소녀는 2007년 5월14일 새벽 3시40분께 숨진 것으로 돼 있다. 소녀의 검시는 그날 아침 8시45분께 이뤄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소녀의 사망시각이 9.7~15.3시간 전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가깝게는 밤 12시께, 멀게는 전날 오후에 숨졌다는 뜻이었다. 송씨의 ‘자백’과 배치됐다. 경찰 초동수사가 엉망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었다. 송씨를 체포했던 형사가 ‘무죄’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배제한 사실도 밝혀냈다. 송씨 등이 경찰에서 진술한 동선대로라면, 수원역 2층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자취가 남아야 했다. 담당 형사는 무인카메라 영상을 확인했으나, 송씨 등이 등장하는 장면을 찾지 못했다. 형사는 이 사실을 수사기록에 남기지 않았다. 송씨를 잡아들인 경찰이 다른 사건에서 강압수사를 벌인 사실도 밝혀졌다. 수원 노숙소녀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 뒤인 2007년 5월21일 수원의 한 건물 화장실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숨진 채 발견됐다. 수원남부경찰서 강력팀은 지적장애 2급의 10대 소녀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비정한 엄마’로 몰아갔다. 그러나 소녀는 아기를 낳은 적도 없었다. 10대 지적장애인을 붙잡아 강압수사를 펼친 것이다. 담당 팀은 송씨를 잡아들였던 바로 그 팀이었다. 지난 6월 대법원은 송씨의 재심을 결정했다. “무죄를 선고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됐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⑧ ‘상흔’에서는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노숙인과 가출 청소년들의 후일담이 이어집니다. [무죄의 재구성] 노숙소녀 살인사건 ① [자백] 지적 장애 나씨, 감방생활이 두려워 송씨를 지목하다 ② [회유] “나가게 해줄게” 형사의 구슬림에 넘어갔다 ③ [반전] 처음엔 노숙인의 범행이라더니, 이제는 가출 10대가 ‘진범’이라고… ④ [조작] 울면서 “결백” 외치자 검사 “너 연기 잘한다” ⑤ [호소] “쌤만은 저를 믿어주세요” 한통의 편지 ⑥ [증거] “인철이도 아이들도 그 고등학교에 간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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