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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27 18:21 수정 : 2012.08.29 16:14

이대리 제공

[매거진 esc] 이대리의 직장생태보고서

양악수술 뒤 턱에 끈 매고 강남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러다 나도 병원 달려가겠네

나의 출퇴근 코스에 놓인 신사역은 소비와 유행, 미에 대한 욕망이 들끓는 곳이다. “강남구와 서초구를 가로지르는~ 트렌드 중심지인 가로수길에~ 핫(Hot)한 클럽 멋진 여자 슈퍼카 모는 남자~ 예술가들 에너지도 넘쳐나지요~ 구경 한번 와보세요~” 조영남씨가 부른 ‘화개장터’의 현대식 버전을 만들어 본다면 그 무대로는 북적이기만 하는 강남역, 너무 비싼 청담동, 평균 연령대가 낮은 홍대보다 이곳이 적절할 듯싶다.

이처럼 볼 것 많고 활력 넘치는 신사역 근방에서 몇 년 전부터 눈에 띄는 새로운 종족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바로 ‘턱끈족’이다. 이제 곧 국어사전 혹은 위키백과에 등재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종족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각지거나 큰 스스로의 얼굴 윤곽을 적극 부정하여 대자본을 투입해 성형외과 전문의(때로는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와의 협업도 일어남)로부터 양악 수술을 받은 후 완치과정에 이르는 중에 병원에서 제공한 턱끈을 매고 다니는 종족.”

심각한 콤플렉스나 질환에 대한 치료 차원의 접근을 폄훼할 의도는 없으니 관련업계 종사자들과 환자분들은 항의를 자제해주시길 바란다. 기억건대 4~5년 전만 해도 ‘턱끈족’은 쉽게 관찰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콧대를 만지신 것으로 보이는 ‘마스크족’들만이 간간이 눈에 띌 정도였다. ‘마스크족’들이 ‘턱끈족’으로 급속히 진화한 계기는 무엇일까? 아마도 드라마틱한 성형 전후 사진이 우리에게 익숙해지면서부터일 것이다.

연예인들은 “양악 수술 하다가 죽다 살아났음!”이라며 ‘부활’과 함께 쟁취한 작고 예쁜 얼굴을 자랑한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며 볼 수 있는 대형 광고물에서는 창조주와 ‘맞짱’ 뜨는 ‘의느님’(놀라운 솜씨로 재창조를 성공시키는 의사들을 지칭하는 속어)들의 ‘재창조물’들이 “너도 한번 깎아보는 게 어때?”라고 손짓한다. 광고물 속 주인공들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어린 시절 벽안의 서양인을 처음 봤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드라마틱한 변신의 주인공들은 처음엔 괴이함으로 다가왔지만 볼수록 친숙해졌고, ‘할리우드 스타 길거리 패션’처럼 구매충동도 일으킨다. 심지어 난 남자인데도 말이다!

‘소두 종결자’에 ‘롱다리’로 태어나는 한국인의 비율이 얼마나 되기에 전형적 ‘조선인 체형’인 나는 ‘몹쓸 것’이 되어야 했을까? 생각이 길어질 때쯤 내 손을 잡고 신사역 주변을 걷던 전형적 ‘조선 여인의 체형’인 아내도 요즘은 가끔 “나도 한번 깎아볼까?”라는 말을 꺼낸다. ‘아내여, 나는 생명보험의 수급자가 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서른이 넘으면 연예계 데뷔도 쉽지는 않다네. 그리고 신랑 주머니 사정은 그리 넉넉지 않아. 그러니 자격증 딴다며 사다 놓고 방치해 둔 두꺼운 책을 개시해 보는 게 어떨까?’ 물론 이런 말은 입 밖에 꺼내면 큰 화를 입으니 속으로만 삭인다.

얼마 전 메릴 스트립이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로 분한 영화 <철의 여인>을 봤다. ‘브이(V) 라인 얼굴’ 광고물에 익숙해진 나는 잠시 불경스러운 생각을 했다. ‘메릴 스트립 여사도 좀 깎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가만… 데미 무어도 한국 배우였다면 좀 깎아야 했겠지?’

잠시 외출했던 정신머리는 금세 돌아왔다. 누나들, 안 깎으셔도 돼요!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서구보다 크고 각진 얼굴에 대한 톨레랑스가 더 부족해졌을까요? 맙소사.

H기업 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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