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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25 17:50 수정 : 2012.08.29 16:14

이대리 제공

[매거진 esc] 이대리의 직장생태보고서

4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골프가 가지는 특별한 또는 별것 아닌 의미

입사 직후 신입사원 교육을 위해 3인 1실의 숙소를 처음 배정받던 날, 같은 방을 쓰게 된 동기들은 내게 “운동 좀 하시나봐요?”라는 말로 인사를 건냈다. 웨이트트레이닝과 수영으로 다져 놓은 당시 내 몸의 체지방률은 7%대. 이젠 볼록한 술배를 달고 다니는 30대 중반의 아저씨가 된 나는 “운동 좀 하셨었나봐요?”라는 과거완료형의 질문을 받는다. 알량하게 남아 있는 ‘갑빠’의 흔적 때문인가 보다.

근 10여년 만에 만난 대학선배에게 소주 한잔 걸친 나는 농을 건넨다. “선배, 학교 다닐 때 운동하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는데. 그때 우리 동기들이 면회 갔던 거 기억나요?” 때로는 몸뚱어리를 크게 쓰지 않는 행위도 우리는 운동이라 부른다.

이처럼 다양한 종목과 행위를 아우르는 운동이란 단어는 40대 중반 이상의 ‘멘털’을 지닌 직장인들에게는 단일 종목으로 통하는 것 같다. 바로 골프다.

“이 대리는 운동 좀 하나?”라는 질문에 “웬만한 건 다 좋아하는데 등산은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요”라고 답했다가 그들만의 묘한 키득거림을 느낀 후 나는 ‘왜 그놈의 종목만이 ‘운동’이란 이름으로 불릴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됐다.

나름대로 내려본 결론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은폐엄폐’주의. 풀어서 말하면 ‘나의 골프를 윗선에 알리지 말라’ 정도 되겠다. 골프가 사치스러운 스포츠이자 상류층 여가의 대명사이던 시절, 자가진단 결과 사회적 지위가 살짝 부족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종목명을 거론하기에 부담스러워 은어를 통해 소통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둘째, ‘이너서클 만들기’. 다른 스포츠에 비해 돈이나 권력 중 어떤 하나라도 지닌 부류가 접근이 용이한 종목 특성이 있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네트워크들은 다른 분야에서 이뤄지는 것들에 비해 좀더 높은 경제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가설 아래 얻어진 음모론이다.

셋째, ‘며느리도 몰라’ 설. 골프를 친 후 함께 샤워하던 한 무리가 “오늘 운동 재밌었지?”, “오늘 운동 꽤 긴장됐어”와 같은 대화를 나누자 옆에 있던 일행이 ‘음… 그냥 운동이라고 하니 왠지 있어 보여’라고 생각해 흉내내기 시작했고, 그것이 확산됐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단 ‘운동’을 발음할 때 적절한 자부심과 시건방, 익숙함, 약간의 재수없음이 버무려져야 따라하고 싶어진다는 확산의 전제조건이 있다.

더 많은 의견을 알아보기 위해 ‘자식까지 찾아주는 네이×’에 ‘골프만 운동이라 부르는 이유’라는 검색어를 넣었다. 강산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분의 의견이 눈에 띈다. ‘초짜에게는 K1 같은 무서운 격투기, 90돌이에게는 운동신경을 요하는 도전적인 스포츠, 80돌이에게는 육체와 정신이 섞인 내기게임, 허구한 날 치는 나 같은 놈에겐 그냥 의미 없는 습관.’ ‘운동’이라는 보통명사를 특정 종목을 지칭하는 데 쓰는 것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자치기하면서 돈내기나 하는 게 무슨 운동?”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골프를 운동으로 부르는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애정남도 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답이 안 나오는 복잡한 문제를 고민하다 받은 스트레스는 운동으로 풀자. ‘스크린’이나 한번 칠까? ‘운동’보다 담백하게 들리긴 하지만 영화계 사람들이 반감을 가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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