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29 15:52
수정 : 2012.08.29 16:15
[매거진 esc] 이대리의 직장생태보고서
사무실을 날아다니는 온갖 종류의 새들, 나는 어떤 유형?
인간과 조류는 공통점이 거의 없는 종이다. 하지만 인간은 새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선사시대 동굴벽화나 신화에는 새의 날개를 단 인간의 모습이 있다. 시간이 흐른 뒤 인간은 결국 하늘을 날았다. 타산지석으로 일취월장한 셈이다.
시선을 우리 주변으로 돌려보자. 인간은 고기나 알, 깃털을 얻기 위해 새들을 이용해 왔고, 새들은 인간이 경작한 부산물이나 건축물의 한구석에 집을 짓기 위해 인류의 곁을 맴돌아 왔다. 대다수 고용주와 종사원의 관계와 일치하는 상부상조의 관계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가까워졌지만 새는 조류독감이라는 몹쓸 전염병을 옮기기도 한다. 우리는 사무실에서 조류독감을 퍼트리는 새 같은 존재들을 가끔 발견할 수 있다.
구매실 채 대리는 두마리 뻐꾸기가 못마땅하다. 직속 선배인 방 과장은 업무 지시를 내려놓고 스스로 기획해 진행한 일인 양 윗선에 보고한다. 채 대리는 “남의 둥지에 알 까놓고 도망가는 뻐꾸기와 진배없다”며 방 과장을 ‘뻐꾸기1호’라 부른다. ‘뻐꾸기1호’는 동료들의 업무 사례를 수집, 정리해 개인블로그를 꾸며놓고 이를 보고 연락해 온 외부 기업이나 기관으로부터 강연을 위탁받기도 한다. 전후 사정을 아는 몇몇은 이런 ‘뻐꾸기1호’의 행태에 기가 막혀 하지만 나름 ‘전문가’ 직함으로 불리기도 하는 방 과장을 바라보며 “인간계에는 자연계처럼 자정작용이란 없는 것 같다”며 한탄해 마지않는다.
‘뻐꾸기2호’라 불리는 영업팀 오 차장은 준수한 외모의 여직원들에게 추파를 던지기로 유명하다. 오 차장의 ‘뻐꾸기’는 그닥 조화롭지 못해 스스로의 입지만 좁힐 뿐이지만 입으로만 바짝 오른 양기는 쉬이 내려갈 것 같지 않다.
‘타조’들은 전국의 사무실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리더의 유형이다. 조금 껄끄럽지만 명명백백한 사안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팀원들의 의견을 구한 후 “그래, 이 정도는 경영진에서도 인지하는 편이 낫지”라며 호기롭게 보고서를 들고 사무실을 떠난다. 몇 분 뒤 윗선 설득에 실패한 그들은 ‘나야 할 결론’에 맞춰 사실관계를 재배열할 것을 지시한다. 허공에 대고 철통방어하는 신세는 모래에 머리를 묻고 몸을 모두 숨겼다고 생각하는 타조의 모습과 닮아 슬프다.
‘올빼미’들은 부하들의 심리적 단합을 본의 아니게 유도하기도 한다. 부부 관계가 소원한 자금실 유 부장은 해가 떠 있을 때 주로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일과를 마무리해야 할 다섯시 무렵이면 그는 ‘만찬멤버’를 조직하는 데 힘쓴다. 밥을 먹고 기운을 차려야 조금이라도 집에 늦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밥당번’에 차출되어야 하는 부하직원들은 “법인카드로 회사 인근 편의점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수입맥주를 저녁마다 사다 마시는 찌질함에 질려버렸다”는 한목소리를 내며 대동단결하고 있다.
이 외에도 자신의 충성심을 표현하기 위해 복명복창에 힘쓰는 ‘앵무새’, 우아한 명품백을 메려고 긁은 카드값을 메꾸기 위해 수면 아래서 진을 빼는 ‘백조’, 큰 부리 가득 사무실 소모품들을 집으로 실어 나르는 ‘펠리컨’ 등 다양한 조류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이 모든 것, 혹은 두가지 이상을 종합한 ‘하이브리드 새’도 가끔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함축적인 단어로 그들을 지칭한다. ‘개새’.
글·그림 H기업 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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