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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26 18:10 수정 : 2012.09.26 18:10

이대리 제공

[매거진 esc] 이대리의 직장생태보고서

1997년 구제금융을 기점으로 완전히 바뀐 기업과 샐러리맨들의 삶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종영됐다. 이 드라마는 특히나 지금 30대 중반이 된 나 같은 ‘대리급’ 또래가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겪은 경험을 깨알같이 재현해 ‘그들만을 위한 힐링’을 시켜줬다.

90년대 후반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한 마지막 시기다. 대학 새내기 시절 값싼 시티폰을 휴대폰처럼 보이기 위해 공중전화 옆을 배회하며 통화를 하고, ‘삐~잉~칭칭칭’ 하는 모뎀 연결음과 함께 밤새 피시통신에 매달린 기억은 돌이켜보니 천지가 개벽할 징조쯤 됐나 보다.

세상은 큰 변화를 이어왔고 불과 15년 전의 추억도 어느덧 아련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때에 비해 우리는 생활의 무게에 덜 허덕이고 있을까? 직장인들 입장에서 ‘차라리 1997년 그대로였으면’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정리해봤다.

1997년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500만명 남짓이었고 삐삐 사용자는 그 세배 정도였다.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 가입자 수 3000만명 시대에 살고 있고, 그 여파로 개인의 영역과 업무 영역이 희석되는 아픔도 겪는다. “쉬고 있지? 미안한데…”로 시작되는 전화를 불쑥불쑥 받는 것도 모자라 잠들 무렵 “클라우드 시스템에 접속해서 내일 발표자료 최종수정 부탁해”라는 ‘카톡’까지 받는 지경이다. 물론 업무 시간을 개인 에스엔에스(SNS) 활용으로 침범하기도 하는데, 둘을 상계처리 해보면 일에 집중하는 시간의 총량은 그 시절과 비슷하지 않을까? ‘8282119’라는 메시지가 와도 “지하에 있어서 안 터지던데요” 한마디면 깔끔하게 상황이 정리됐던 ‘삐삐시대’가 문득 그리워진다.

97학번인 나는 막역하게 지내던 한살 위 친한 형이 있었다. 교복을 갓 벗은 나와 자주 대폿집에서 마주 앉은 그는 밤 11시를 넘어서면 귀가를 위해 자리를 박차곤 했다. 바로 심야 영업시간 제한 때문이었는데, 밤 12시를 넘겨가며 술을 마실 수 있던 공간은 편의방이나 일부 불법 업소뿐이었다. 하지만 술집이라면 응당 심야영업을 하고 있는 요즘 유독 술이 약한 직장 동기는 술만 들어가면 “밤새 빛나는 네온사인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입니까!”라며 “‘엔드리스 회식문화’를 끝장내려면 심야 영업시간 제한을 부활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무엇보다 97년 12월,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신청을 기점으로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다시피 한 것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아쉬워할 대목이다. 한 유통업체 김 부장은 “말단 직원이었던 90년대 초만 해도 점심에 낮술 한잔 걸치고 와서 한숨 잔 다음에 석간신문을 뒤적이다 퇴근하는 부장이 그렇게 부러웠는데 지금은 부장이 되었지만 옛날 말단 시절보다 더 바둥댄다”며 “이렇게 바둥대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신세인데 애사심, 충성심 운운했다가는 사무실에서 왕따 된다”고 한숨을 내쉰다.

우리 30대 중반의 대리들에게도 드라마 속 윤태웅(송종호 분)같이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건 너무 막연한 일일까? 국가신용등급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과 한국 사회의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32위를 차지했다는 뉴스가 2012년 지금의 우리를 기록해 주고 있다.

H기업 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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