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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1.14 18:10 수정 : 2012.11.14 18:10

[매거진 esc] 이대리의 직장생태보고서

정치권 성희롱 발언 논란 단상… ‘홍어×’ 샐러리맨에게도 대변인이 필요해

대선을 앞두고 ‘아랫도리’ 논쟁이 한창이다. ‘여성대통령론’을 주장하는 후보측에 대해 한 교수는 “생식기만 여자”라고 했고,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해 한 국회의원은 “국민을 홍어×(생식기)으로 생각하는 국민 사기쇼”라고 말했다. 발언의 전후 맥락이나 비난의 품격은 차치하고 이런 발언이 직장 내에서 나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고용노동부 누리집은 직장내 성희롱을 ‘성적인 언동 등으로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그 밖의 요구 등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듣는 사람이 불쾌감이나 피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다.

중공업 회사에 근무하는 여자 과장 ㄱ씨와 동료들은 회식 때마다 수준 높은 농담이랍시고 뱉어대는 임원의 발언에 기겁한 경험이 잦다. 그는 앞접시를 사용하는 식당에 가면 “뜨끈한 국물 담을 수 있는 볼(Bowl) 좀 갖다 줘요”라고 여종업원에게 습관처럼 말하며 엉큼하게 웃는다. 식상할 때도 됐건만 그 멘트만 나오면 임원 이하 간부들은 맞장구를 쳐대며 낄낄댄다. ‘볼’(Bowl)은 남성 생식기의 일부를 지칭하는 영어단어인 ‘볼’(Ball)과 발음이 유사하고 ‘뜨거운 국물’ 역시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알량한 영어 실력을 백분 활용한 무작위적 배설이다.

하지만 ㄱ씨도 성희롱 가해 여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고백한다. 갓 졸업한 신입 남자사원 ㄴ씨가 여직원 무리와 함께 점심을 먹고 길거리를 걸을 때 지나가는 남자의 밋밋한 엉덩이를 타박한다든가 “저렇게 업된 엉덩이는 한달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진귀한 것”이라며 키득거린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누구의 문제 제기도 없이 몇 년이 지나자 모두가 만성이 됐다. 이처럼 언어 성폭력 행위는 밥벌이, 동료, 직급이라는 단어 앞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또한 불균형한 성비를 나타내는 직장에서는 혼자만의 속앓이로 끝나기 일쑤다.

특이하게도 “생식기만 여자”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아닌 ‘영계 선호 취향’의 제3자가 발언자의 ‘직장상사’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국민을 홍어×으로 생각하는”이라는 모욕의 대상을 특정 짓기 애매한 이 발언에 대해서는 누가 문제를 제기해야 옳을지도 애매하지만 대변인 조직에서 상대방을 향해 일침을 날린다. 우리를 대신해 누군가가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준다면 직장인들도 좀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식기)이라는 단어는 연령과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너무 자주 쓰고 있기에 대체로 욕설이라는 자각도 하지 못한다. 구성원 대다수의 성별이 ‘×’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개인적으로 ‘×’이라는 단어를 가장 빈번하게 접했던 시기는 군 복무 시절이었다. 타박이나 푸념, 농담, 훈련 등 생활 저변에 ‘×’이라는 표현은 함께했다. 그렇게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군 전역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 ‘×’은 홍어의 ‘그것’처럼 만만하고 가벼운 표현이 됐다.

그렇지만 세상의 반은 여자이기에 수많은 ‘×들’(마초적인 여성 포함)은 배려의 내면화와 조심성의 습관화가 필요해 보인다. 상명하복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지만 우리 ‘만만한 홍어×들’이 선대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는다면 직장내 ‘신사의 품격’은 적어도 정치권보다는 빨리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글·일러스트레이션 H기업 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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