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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1.28 18:18 수정 : 2012.11.30 10:34

[매거진 esc] 이대리의 직장생태보고서

출근해서 시간 때우기, 오너 눈치 보기로 승승장구하는 그들은 어떤 회사를 다니는 걸까?

회사(會社)는 ‘모여서 일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휴대용 전자기기와 탄탄한 정보기술(IT) 인프라 덕에 우리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도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지만 모여서 일하기 위해 이른 아침 ‘지옥철’ 탑승을 마다하지 않는다.

회사라는 공간의 최대 강점 중 하나는 신속한 면대면 의사소통일 것이다. 제아무리 화상통화나 클라우드컴퓨팅이 발달했다 할지언정 ‘선배’, ‘후배’ 호칭과 함께 진행하는 일의 ‘쿵짝’에는 비할 바 아니다. 하지만 사무실에 모인다는 것이 반드시 ‘능률’, ‘성과’ 같은 아름다운 단어들과 버무려지지는 않는다.

에너지기업에 근무하는 ㄱ대리는 놓고 간 지갑을 찾기 위해 어느 휴일 사무실에 들렀다가 귀신을 본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운동복 차림의 초췌한 ㄴ팀장이 자기 자리에서 웹서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팀장은 “집에 있으면 애랑 놀아줘야 하고 일이 없더라도 사무실에 나오는 편이 좋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소속 기업은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고 조직원은 그 에너지를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ㄴ팀장은 이밖에도 연차휴가 내놓고 출근하기, “우리 땐 결혼휴가도 반납하고 일했다”, “포상휴가는 회사를 위해 사용해야 그 취지가 더 빛나는 법”과 같은 명대사를 남기며 부하들을 ‘멘붕 상태’로 이끈 뒤 ‘일 많이 하는 팀장’으로 인정받아 ‘생명 연장의 꿈’을 이뤘다.

이런 사례를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해사(害社) 행위’에 가깝지만 안타깝게도 상당수 조직의 인사평가 시스템은 ㄴ팀장과 같은 사람 앞에서 무력해지고 교란된다. ‘해사 행위’를 넘어 조직을 서서히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사례 역시 심심찮게 주변에서 목격할 수 있다. 이런 사례에는 ‘모여서 죽어간다’는 의미로 ‘회사(會死) 행위’라는 이름을 붙여 보자.

굴지의 생활용품 제조업체에 다니는 ㄷ대리는 최근 출시 전 신제품 품평을 위한 사내 패널에 선정됐다. 10여명으로 구성된 패널 회의에서는 “핵심 콘셉트가 불분명하다”, “기존 제품의 시장을 침식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와 같은 가감없는 비판이 제기됐다. 회의가 거듭되면서 쌓인 의견을 종합한 결과치는 부정적이었다. 평소 같으면 보완을 통해 출시 일정을 연기하거나 개발 계획이 취소될 만한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제품은 비판받던 콘셉트 그대로 예정된 일정에 시장에 나가 고전을 거듭한 끝에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렸다. 그 무렵 야외 흡연공간에서 허탈한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 있던 ㄹ과장은 “오너가 필이 꽂혀 진행한 아이템에 누구도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할 수 없었다”며 “제품 실패에 따라 인사고과가 엉망이 됐지만 처음과 달리 오너는 내게 관심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객관적인 조사 결과를 통해 윗선에 직언할 의무가 있었던 단위조직장이나 해당 프로젝트를 지시한 경영진은 ㄹ과장이 받은 인사고과상의 불이익의 절반만큼이라도 아파했을까? 그리고 이런 이력이 쌓이면 회사의 수명이 팍팍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회사(會社)에 다니고 있습니까, 해사(害社)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회사’(會死)에서 죽어가고 계십니까? 해사나 회사(會死)가 마구 달려나갈 때 브레이크는 제대로 작동할까요?

글·일러스트레이션 H기업 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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