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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13 20:59 수정 : 2013.02.16 14:16

이대리 제공

[매거진 esc] 이대리의 직장생태보고서

이번 설 명절도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진부한 표현의 당사자로 지냈다. 타향살이를 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러했듯이 우리 부부는 대수송 예약 당일 오전 11시 무렵 각자의 직장에서 코레일 누리집에 매달렸다. 결연한 각오는 대입 수능 당시에 못지않게 끓어올랐다. 그리니치 표준시(GMT)를 표시하는 타이머를 모니터에 띄워놓고 왕복 차편을 입력해놓은 창을 두어 차례 점검했다. 10시59분59초에서 11시 정각으로 넘어가는 찰나, 우리 부부는 마우스 왼쪽 버튼을 ‘광클’했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이 이 정도일까? 잠시 후 아내는 “대기표에 걸려서 하행선은 구했어”라는 반쪽짜리 승전보를 전해왔다. 하이에나처럼 상행선 남는 표를 찾아 헤매던 우리는 좌석이 따로 떨어진 무궁화호 티켓 두장을 확보하며 ‘명절 준비 스테이지1’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때로는 기차 암표를 구입해서, 가끔은 편도 일곱 시간이 넘도록 고속버스 안에서 주리를 트는 경험을 거듭하며 ‘왜 꼭 정해진 날짜에 약속이나 한 듯 온 나라가 이 지옥도를 그려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귀성과 귀경이라는 말이 표현하듯 이 문제는 서울 혹은 대도시에 생산성 높은 일자리에 비교적 높은 수입을 얻기 위한 노동력이 집중되어 발생한다. 만약 여름휴가 기간처럼 근로자들이 열흘 안팎의 기간 중 사나흘을 선택해 ‘명절 기간’으로 운용할 것을 정부가 권장하면 어떨까? 기업은 휴업을 하지 않아도 되고 고향 오고 가는 길은 지금보다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아직도 탕건을 쓰고 수십명이 모여 제사를 지내는 꼿꼿한 집안이라면 음력 명절 당일에 제사를 지내면 될 것이고, 몇 대 위의 제사는 할아버지대의 제사와 몰아 지내는 융통성 있는 집안이라면 특정일을 정해 ‘그들만의 명절’을 지내면 될 일 아닌가?

도시인들이 이렇게 음력 명절 당일을 은연중에 지켜나가는 이유는 농경사회로부터 전해 내려와 굳어진 습관 때문일 것이다. 먹고 난 뒤 한숨 자고 나면 얼굴에 유전이 형성될 만큼 기름진 명절 음식을 처치곤란일 만큼 준비하는 행태도 맥락을 같이한다. 트위터 아이디 @WayneHiding은 ‘레명절트러블’이라는 제목으로 “찌짐! 찌짐! 끝도 없는 부침개!” “찌짐! 찌짐! 먹지도 않는 거!” “찌짐! 찌짐! 고추에 정구지!” “찌짐! 찌짐! 별 맛도 없는 거!”라는 글을 써 열띤 호응을 얻었다.(‘정구지’는 부추의 경상도식 표현)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이 받은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많았고 옆에서 그것을 뒤집어쓴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았다는 반증이다.

요즘 좀처럼 접하기 힘든 시청률 45%를 넘긴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후 ‘시월드’는 관용어가 됐다. 지난해 9월 종영한 이 드라마 이후 추석을 전후해 명절증후군을 소개하는 다양한 언론 보도에서 ‘시월드’라는 단어는 열쇳말처럼 쓰였다. 남자 된 입장에서는 듣기 싫은 단어다. 내 집안을 비하하는 의미가 내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런 표현이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은 이유에 대해서는 다 같이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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