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27 19:14
수정 : 2013.02.27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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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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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대리의 직장생태보고서
언제부터였을까? 출퇴근길 전철역 출입구나 점심시간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서 마주하는 전단지 아줌마들은 일상 속 당연한 풍경이 됐다. 때로는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저씨도 있고 아르바이트 삼아 나온 앳된 학생들도 있지만 주로 중년 혹은 노년의 여성들이 그 일에 참여하기에 편의상 ‘전단지 아줌마’로 통칭해도 무방하리라.
길바닥에 나뒹구는 사금융 혹은 퇴폐업소 전단지, 집 문 앞에 붙은 배달음식 전단지와 그들이 나눠주는 것의 차이점은 행인들과 잠시나마 감정교환을 필요로 한다는 점 아닐까?
“열 가지 반찬 나오는 된장찌개 백반이 육천원”이라든가 “어제 오픈한 깨끗한 식당에서 해장국 한번 잡숴 봐요” 같은 기계적 멘트는 지폐 계수기 같은 잽싼 손놀림과 버무려져 그녀들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았다. 하루 몇시간씩, 수년간 경험이 축적될수록 전단지 소진 속도는 빨라진다. 정확히 검증된 바는 없지만 속도는 광고효과로 여겨지고 임금으로 연결된다.
일대의 전단지 배포활동 패턴을 꿰고 있고 갈 식당을 일행들과 미리 정한 뒤 사무실을 나서는 도시인들에게 전단지 아줌마는 불필요한 쓰레기를 안겨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요즘은 일대 지리에 어두운 외지 사람일지라도 식사시간을 앞두고는 스마트폰 검색을 통해 행선지를 정한 경우가 다반사다. ‘나눠주는 자’와 ‘받기 싫은 자’는 별말 없이 한 치 거리에서 몇초간 첨예한 감정교환을 한다.
좀처럼 주머니 밖으로 손이 나오지 않을 만큼 춥던 지난겨울 어느 날, 점심시간의 여의도 식당 밀집 지역에서 목격한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도열한 아줌마들은 종종걸음을 옮기던 아가씨의 팔춤에 전단지를 욱여넣으려 했고 끝내 받기를 거부하던 그의 품에서 종이들은 맥없이 떨어져나갔다. “어휴, 저 싸가지 없는 것 좀 봐. 몇장 받아주면 팔목이 부러지나?”라며 성토하던 아줌마를 앞세워 도열해 있던 모두가 비난의 한마디, 경멸의 눈초리를 쏴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가씨는 한마디 대꾸도 못한 채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수십장까지 전단지를 흔쾌히 받아 들어주는 영업팀 ㄱ대리는 “전단지를 빨리 소진해야 저분들은 일을 끝낼 수 있다”며 “몇십장이 쌓이면 거추장스럽긴 하지만 적당한 쓰레기통에 버려주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지만 배포를 맡긴 가게 주인 입장에서 보면 생돈을 내다버리는 셈이다.
복수의 전단지 아줌마에 따르면 길거리 배포 작업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대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마저 일감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단다.
승자가 없다. “그나마 전단지를 배포하지 않으면 손님은 더 떨어진다”는 자영업자들은 불안감 해소 차원에서 일을 계획하고, 일을 하는 사람은 낮은 수익을 감수한다. 스마트 기기로 무장한 행인들은 ‘전단지 집중 배포 지역’을 지날 때 온정이든 냉정이든 불필요한 감정을 소비하며 힘들어한다. 많은 사무실이 문을 닫은 지난 토요일 아침, 조용한 전철역 주변에서 전날 길바닥에 내버려진 전단지를 쓸어 담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만이 분주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익숙한 풍경에서 불편함이 밀려왔다.
H기업 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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