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7.03 20:44 수정 : 2013.07.04 10:12

이대리 제공

이대리의 직장생태보고서

직장생활은 ‘책임의 연속’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담당자 혹은 관리자 등으로 불리며 일을 해 나가고 책임을 진다. 하고 있는 일이 ‘내 일이자 조직의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다. 일을 하며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고 회사는 수익을 창출해 더 많은 성과보상을 하는 아름다운 모습 말이다.

지난달 삼성경제연구소는 직장인 회원 8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통해 ‘대한민국 직장인의 행복을 말하다’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의 평균적인 행복도는 55점으로 나왔다. 보고서는 개인의 감정상태 유지나 직장 내 관계 맺기와 함께 일의 의미를 느끼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미루어 짐작건대 내 일이자 조직의 일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에 놓인 직장인들이 꽤나 많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주변을 관찰해보면 개인의 의지와 전혀 무관한 일을 맡아 책임을 지게 되고 예상 밖의 피해까지 입어 일의 의미를 상실하는 직장인들이 보인다. 한 중견 소비재 기업의 광고 담당자인 ㄱ대리는 대학에서 광고학을 전공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유력 공모전에서 수차례 입상한 경험도 있다. 공교롭게도 그는 입사 후 한 번도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광고 시안에 나이 지긋한 회장님의 취향을 반영하다 보면 ‘7080 스타일’의 결과물만 나오기 때문이다. ㄱ대리는 “청소년 대상의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는데, 광고 선호도 조사를 해 보면 주력 시장에서 늘 하위권”이라며 “내 이름이 담당자란에 올라가 있는 것에 회의감을 느낄 때가 잦다”고 말했다.

유사 업종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ㄴ과장은 ㄱ대리와 반대의 경우를 경험했다. 사장님이 주도해서 만든 제품에 담당자로 이름을 올린 그는 영업조직의 전폭적인 지원사격으로 엉겁결에 목표 대비 200%가 넘는 실적을 올린 것이다. ㄴ과장이 이듬해 최우수사원에 선발되어 해외여행을 떠난 사이, 그의 뒤를 이어 해당 브랜드 관리를 맡은 ㄷ대리는 소위 말하는 ‘남의 똥’ 치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영업조직에서 ‘밀어내기’ 해놓은 제품들이 시장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유통기한이 지나 반품으로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ㄷ대리는 “오롯이 조직을 위해 희생했지만 내게는 엉망진창으로 매겨질 인사평가만이 기다리고 있다”며 “대신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억울하고 분하지만 ㄴ과장이나 사장님 누구도 미안하다는 내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팀을 보내 현 상황을 추궁하는데 아연실색했다”고 말했다. ㄷ대리는 이후 이직을 통해 ‘빼앗긴 행복’을 스스로 되찾았다.

‘남의 똥’ 치우기의 괴로움은 비단 조직생활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냉방기기 스위치에 손을 대려다가도 사방에서 ‘블랙아웃’ 운운하며 겁을 주니, 절전 스트레스는 뜬금없이 국민적 과제가 됐다. 사고는 원전에서 치고 수습은 전기료 꼬박꼬박 내는 국민이 하는 꼴이다. 스스로 책임질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되면 회사는 옮기기라도 쉽지, 전기 마음대로 못 쓰게 한다고 이민을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항의라도 대차게 할 법한데, 우리 국민들 이럴 때 보면 우직할 정도로 잘 참는다. 책임 밖의 일을 떠맡기는 회사도 많고 불행하지만 묵묵히 일하는 사람도 많을 법한 조건이다. 적당히 참자. 암 걸릴라.

H기업 이대리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이대리의 직장생태보고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