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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05 17:44 수정 : 2012.09.06 14:16

‘따루주막’의 풍경. 따루 제공

[매거진 esc] 따루주모의 술타령

나는 주모다. 대한민국의 제1호 외국인 주모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주막을 운영하는 외국인 주모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 사람들에게 주모라고 소개를 하면 다들 웃는다. 조용한 핀란드에서 역동적인 한국까지 와서 어떻게 주모가 되었는지 많이들 궁금해한다. 그래서 나를 소개해주겠다.

내가 막걸리와 인연을 맺은 지는 14년이 되었다. 1998년의 무더운 여름, 한국에 처음 여행 와서 고려대학교 앞에 있는 안암골고시원에 묵게 되었다. 내 친한 펜팔 친구가 고대생이라서 그 저렴한 숙소를 소개해주었다. 시원한 나라에서 온 나한테는 한국의 24시간 찜통더위가 견디기 무척 힘들었다. 고시원 방에 에어컨이 있긴 있었는데 고장 난 지 오래였다. 땀을 뻘뻘 흘리던 어느 날, 친구가 ‘코리안 피자’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코리안 피자? 뭔지 무지 궁금했다. 제기시장의 허름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거기서 막걸리와 파전이라는 찰떡궁합을 처음 알게 되었다. 파랗고 투명한 병에 들어 있는 막걸리는 다른 술들과 달리 부드럽게 넘어갔다. 톡 쏘는 우유를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수가 낮으면서도 잘 취하는 막걸리에 반해버렸다. 그 당시에는 막걸리가 고려대 앞 주점에서만 빼고 인기가 별로 없는 술이었는데 나는 열렬하게 사랑했다.

막걸리의 맛도 입에 맞았지만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는 나에게 막걸리는 친구를 사귈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주기도 했다. 같이 딱 한 잔만 하면 바로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다. 말이 조금 서툴러도 한국어로 말할 용기도 생겼고 한국 사람들과 끈끈한 정도 나눌 수 있었다. 그때부터 막걸리는 나의 벗이 되었다. 기쁘면 기쁨을 더해주고, 슬프면 슬픔을 달래주는 동반자가 되었다. 비만 오면 생각나는 나의 ‘절친’이 되었다.

한국에 살면서 막걸리를 계속 마셨는데 조금씩 막걸리의 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막걸리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양조장이 거의 800곳이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지역별로, 양조장별로 막걸리의 맛이 다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행 갈 때마다 그 지역의 막걸리를 맛보았다. 그리고 4~5년 전부터 꿈을 가지게 되었다. 주모가 되고 싶다는 꿈!

꿈에서 현실까지 가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2010년 초에 방송에서 주막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어떤 분이 방송을 보고 투자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사실 그때까지 주모가 된다는 것은 먼 꿈일 뿐이었는데 꿈을 실천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결국 그분과는 하지 않게 되었지만 조금씩 내 꿈을 현실로 바꾸기 시작했다.

핀란드가 고향인 살미넨 따루(35)는 헬싱키대학교와 헬싱키 폴리테크닉대학교에서 동아시아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2007년부터 3년간 한국방송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방송활동을 시작했고 프리랜서로 동시통역과 번역 일도 한다. 우리 막걸리에 대한 특별한 애정으로 2010년부터 홍익대 인근에 ‘따루주막’을 열었다. 〈esc〉는 격주로 따루의 좌충우돌 ‘주막’사를 연재한다. 핀란드인의 시선에서 보는 우리 술 문화부터 그가 소개하는 핀란드 술까지 다양한 술 이야기가 연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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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esc : 따루주모의 술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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