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9.19 22:23
수정 : 2012.09.19 22:23
[매거진 esc] 따루주모의 술타령
막걸리 마니아였던 나는 어떻게 주막을 차리게 됐나
나는 주모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우선 막걸리 공부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막걸리에 대해서 잘 알아야지만 손님들에게도 설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까지는 막걸리를 마실 줄만 알았지 역사도 모르고 빚는 법도 잘 몰랐다. 2010년 허시명 선생이 운영하는 막걸리학교에 입학하면서 탁주, 동동주, 진땡이, 누룩, 독, 효모, 술밥, 항아리 등 신기한 개념들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수많은 양조장을 방문해서 막걸리가 어떻게 빚어지는지 내 눈으로 보기도 하고 익어가는 막걸리의 아름다운 소리를 내 귀로 들어보기도 했다. 부산 금정산성막걸리 양조장, 경북 상주 은자골탁배기 양조장, 대구 불로막걸리 양조장, 경남 하동 악양막걸리 등 여행 갈 때마다, 틈날 때마다 다녔다. 1년 정도 걸렸다. 지금도 가고 싶은 양조장이 너무 많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제 전라도 쪽을 다녀볼 생각이다.
막걸리의 맛은 지역마다, 양조장마다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막걸리가 살아 숨 쉬는 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막걸리학교를 졸업해서 주막을 할 장소도 알아보고 메뉴도 고민하고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았다. 가게 준비하는 데 어려움도 많았다. 홍대 인근에서 마음에 드는 신축건물을 찾았는데 계약하려고 하니까 계속 지연되었다. 부동산업자는 계속 일주일 뒤에 계약할 터이니 기다리라고 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알고 보니 건물주가 젊은 외국 여자가 과연 장사를 잘할 수 있을까라고 의심했기 때문에 계약이 안 되었던 것이었다. 결국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가져가고 직접 만든 영상을 노트북으로 보여주고야 건물주의 마음을 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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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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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막걸리집이 아닌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하고 싶었다. 전통 안주뿐만 아니라 회부터 탕까지, 각 계절의 싱싱한 재료를 사용해서 매일 바뀌는 메뉴를 만들고 싶었다. 봄이면 도다리 세꼬시, 여름이면 민어전, 가을이면 전어구이, 겨울이면 과메기를 내 식탁에 내놓고 싶었다. 핀란드 사람이라서 핀란드 술도 당연히 소개하고 싶었다.
준비를 다 마친 다음 2010년 10월 말에 ‘따루주막’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그날의 설렘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손님이 하나도 안 오면 어떡하지? 망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컸다.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첫날에는 손님이 너무 많이 와서 정신없이 뛰었다.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라 주문을 잘못 받는 등 실수도 많았다. 그런데 손님들은 유쾌하게 내 실수를 받아주었다. 손님들이 나를 ‘주모!’라고 부를 때마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외국 사람이 막걸리집을 한다는 것은 한국 사람들에게 참 신기한 일인 것 같다. 특히 막걸리에 대해서 설명할 때 사람들이 나를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눈에 파란 렌즈만 낀 한국 사람이 아니냐’는 칭찬도 들었다.
지난 2년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 같아서 행복하다. 막걸리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기 때문에 주모의 길은 나한테 딱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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