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10 18:32
수정 : 2012.10.10 18:32
[매거진 esc] 따루주모의 술타령
펜팔 친구로 맺어진 한국과의 인연…가게 터 찾아 홍대 앞 삼만리
많은 사람들이 나보고 용감하다고 한다. 한국까지 와서 막걸리 장사를 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라고, 내국인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나의 생각은 다르다. 나는 한국에서 수년 동안 살았고,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살고 싶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망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내가 한국에 처음 온 것도 이런 ‘부딪쳐 보자’ 심리 때문이었다. 스무살 때쯤 한국어를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말리진 않았지만 걱정은 많이 하셨다. 그 먼 나라 언어를 배워서 어떻게 취직하려고? 당시 1990년대 말은 핀란드에 진출한 한국 기업도 거의 없었다. 핀란드도 인문대는 취직이 어려웠는데, 더구나 한국어라니!
한국어에 빠진 이유는 오로지 펜팔 때문이다. 한국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이 좋았다.
부모님은 이제 걱정을 안 하신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다니러 온 부모님은 내 가게를 보고 안심을 하셨다. ‘운문산생동동주’를 아버지께 드렸는데 좋아하셨다. 막걸리 마니아가 되신 아버지를 위해 고향 방문길에는 항상 막걸리 몇 병을 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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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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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은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될지 몰랐다. 대학교에서 경영학도 전공했지만 한국의 사업 환경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마침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외국인을 위한 무료 창업반이 열렸다. 2주 동안 저녁마다 한국 비즈니스 문화부터 노무관리까지, 사업계획서 작성부터 사업자 등록까지 다양한 것을 배웠다. 교실에 모인 20여명 정도의 외국인들은 국적도 다양했다. 멕시코, 캐나다, 나이지리아, 러시아, 일본, 중국 등.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도 제각각이었다. 무엇보다도 나와 상황이 같은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이 났다.
수업 중에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권리금의 개념이었다. 월세와 보증금을 주었으면 됐지, 전에 그 자리에서 장사하던 사람에게 돈을 왜 줘야 돼? 심지어는 교회도 권리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핀란드나 다른 나라에는 그런 제도가 없다. 어떤 학생이 강사에게 권리금은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안 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강사는 대답을 못 했다.
실제로 홍대에서 가게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하자 가혹한 현실과 부딪혔다. 내가 볼 때 장사가 안되는 곳인데 권리금을 8000만원이나 달라고 하는 것이다. 장사가 그렇게 잘되면 계속하지 왜 떠나는 거지? 혹시 몰라 발이 퉁퉁 부을 정도로 권리금이 없는 곳을 찾아다녔다. 어디를 가든 상황이 비슷했다. 심지어 1억이 훨씬 넘는 곳도 많았다. 앞이 막막했다. 바로 그때 한 줄기 빛이 비쳤다. 서교동성당을 지나가다가 옆 골목에 크레인으로 땅을 파고 있는 현장을 발견했다. 신축공사였다. 숨어 있는 골목이었지만 20m만 가면 유동인구가 꽤 많은 거리가 있었다. 신축공사라면 권리금이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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