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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0.24 17:29 수정 : 2012.10.24 17:29

[매거진 esc] 따루주모의 술타령

파란 눈 외국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고 계약서에 도장 찍기까지

막걸리집을 열겠다는 내 결심은 홍익대 인근 가게들의 비싼 권리금 때문에 접을 위기에 처했다. 그때 서교성당 옆 신축공사 현장을 발견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신축건물에 권리금이 있을 턱이 없으니! 놓치면 안 되는 기회다. 동네 부동산중개소를 돌아다니며 그 자리를 누가 담당하는지 알아보았다. 한참 돌아다니고 난 뒤에야 찾을 수 있었다.

커피숍들이 많은 길에 위치한 부동산중개소였는데 들어가서 바로 계약하고 싶다고 했다. 사장님이 나를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파란 눈의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니까 신기했나 보다. 처음에는 원룸을 찾는 줄 알고 방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 성당 옆에 식당을 하고 싶다고 설명했더니 그제야 내 말을 알아들었다. 공사는 아직 몇 달 더 해야 되기 때문에 계약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하며 나를 더욱더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다음부터 부동산 사무실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주인장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갤러리에서 파는 호랑이 그림도 선물하고, 점심도 같이 자주 먹었다. 해가 지면 “술 한잔 해요” 주인장 소매를 잡아당겼다. 삼겹살을 구워먹고 맥주도 마셨다. 주인은 점점 웃는 낯으로 나를 대했다. 월세 협상도 하고 보증금도 맞췄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계약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항상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조금만 있으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말 지치고 힘들어서 포기할까 했다.

따루 제공
5월의 어느 날, 부동산업자가 계약을 할 때가 되었다고 사무실에 오라고 했다. 무척 신났다. 그날 사무실에 가보니 양복을 입은 60대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흰머리에 친절한 얼굴이었다. 그분은 건물주였다. 인사하자마자 나한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막걸리 장사 하고 싶다고? 가만히 있어 봐.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됐어? 양주도 아니고 왜 막걸리집을 하고 싶어? 요리도 할 줄 알아?” 결국 계약은커녕 나한테 가게를 빌려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외국인 여자인데다 방송을 통해서 얼굴을 조금 알렸으니 누가 나를 ‘얼굴마담’ 정도로 쓰려는 것으로 의심했던 것이었다. 연예인의 이름을 빌린 가게들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는 소리를 들어서 나를 못 믿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실 서운했다. 직접 하려고 하는 건데. 핀란드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는데 말이다. 포기할 순 없었다. 이 가게를 얼마나 원하는지 한번 보여주자고 결심했다.

건물주를 처음 뵈었을 때 착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은행 지점장까지 했던 분인데 설득력 있게 설명하면 나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실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사업계획서를 철저히 준비했다. 나는 막걸리를 공부할 정도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 가게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적었다. 타깃은 30~50대 직장인이고 메뉴는 신선한 재료로 홍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요리를 만들 계획이고, 가격대는 너무 싸지도 않고 너무 비싸지도 않게 잡을 거라고 적었다.

내가 방송에서 막걸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습과 사업을 같이 할 주방장이 티브이 요리대회에서 1등을 한 장면을 편집해서 2분짜리 동영상도 밤새 만들었다. 잠을 못 자서 아침에 눈이 새빨갛게 변했지만 찬물로 샤워해 정신을 겨우 차릴 수 있었다. 준비한 것을 보여준 뒤 건물주의 표정을 초조하게 살폈다. 한결 부드러워진 인상이었다. 그제야 내 열정에 감동을 받은 듯했다.

“그래. 잘해봐.” 건물주의 한마디로 몇 달 고생이 끝났다. 그날 막걸리 진하게 한잔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살미넨 따루 ‘따루주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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