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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1.07 18:24 수정 : 2012.11.07 18:24

[매거진 esc] 따루주모의 술타령

일면식 없던 나에게 찾아와 따뜻한 조언을 해주고 간 두 노인 잊을 수 없어

가게를 연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어느 화요일 저녁, 늘 그랬듯이 힘차게 출근을 했다. ‘따루주막’에 오후 5시부터 나를 기다린 손님이 있었다. 가게 문을 여는 시간은 5시지만 나는 7시쯤 출근한다. 처음 뵙는 신사 두 분이었다. 두 분은 굉장히 깔끔한 옷차림에 멋쟁이였다. 나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서 인사를 하시는 게 아닌가! 잠깐 이야기를 나누자고, 꼭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고 하셨다. 겁도 났다. 낯선 이의 심각한 표정에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손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주모로서의 의무다. 주막에서 해야 하는 것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급하게 외투만 벗고 앞치마를 둘러매고 어르신들 앞에 앉았다. 두 분은 보통 분들이 아니었다. 한 분은 한국전쟁 때 비행기 조종사였고, 한 분은 고위 군 관계자였던 것이다. 연세도 여든이 넘었다. 그런 분들을 만나니 정말로 신기했다. 그때까지 한국전쟁은 그저 역사 교과서에서만 등장하는 일이었다. 그다지 큰 관심은 없었다. 당시에 전쟁에 실제로 참여했던 분들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질문을 막 쏟아냈다. 그때 어떠셨는지? 무섭지 않으셨는지?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그때 두 분이 나한테 중요한 말씀이 있다고, 일단 들어보라고 하셨다.

따루 제공
무슨 말씀일까 궁금증이 커졌다. 드시고 계신 병어구이(사진)가 맛이 없다는 이야기일까? 두 분 고향의 막걸리가 없어서 서운하다는 이야기일까? 나와 마주보던 어르신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따루씨, 한국을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한국 사람들 중에 좋은 사람도 많지만 나쁜 사람도 없지 않아 있어요. 사람을 잘 봐야 하고 너무 쉽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누가 돈을 빌려 달라거나 투자해 달라고 하면 절대 하지 마세요.” 내 옆에 앉으신 비행기 조종사였던 분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신신당부를 하셨다. 아마도 먼 나라에서 와서 주막을 하는 내가 신기했으리라! 이 조언을 나한테 꼭 해주고 싶어서 가게까지 왔다는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감동했다. 이방인인 내가 한국에 살면서 사기당할까봐, 상처받을까봐 걱정이 되셨던 것이었다. 오랫동안 한국에 살면서 그렇게 예의바른 분들을 처음 보았다. 가끔 나한테 초면에 반말을 하는 손님들이 있다. 나는 나이가 많든 적든 손님과 주모는 서로 존칭을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제일 싫다. 반말을 하는 손님에게는 나도 불쾌한 표정으로 짧은 반말을 던진다. 그러면 같이 온 이가 말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반말을 하는 손님은 싫다. 그날 오신 두 어르신은 사실 반말을 편하게 하셔도 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예의바르게 존칭을 쓰셨다. 그야말로 신사들이었다.

두 어르신처럼 나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러 오는 손님이 참 많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감사하고 힘이 된다. 그날 이후로 두 어르신을 뵌 적은 없지만 언제 한번 다시 뵙기를 바란다.

살미넨 따루 ‘따루주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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