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21 17:31
수정 : 2012.11.22 14:09
[매거진 esc] 따루주모의 술타령
외국인 손님들 막걸리 맛본 뒤 “이런 맛 처음이다” 잇따라 추가 주문
요즘 외국에서도 막걸리의 인기가 대단하다. 하지만 아직도 막걸리를 마시는 외국인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신기해한다. 사실 나도 같은 외국인이지만 약간 놀랍다. 6개월 전이었다. 외국인 다섯명이 주막에 왔다. 우리 가게는 99%가 한국 손님이다.
금발머리에 안경을 낀 외국 남자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저희는 한국말을 잘 몰라서 메뉴판 읽기가 어려워요.” 가슴이 뜨끔했다. 1년 전부터 만들겠다고 생각했던 영어 메뉴판을 아직 만들지 못했다. 나도 외국인인데 말이다. “어떤 막걸리부터 마셔보는 것이 좋을까요?”
야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질문이었다. 혼자 고민하지 않고 나한테 막걸리를 추천해달라고 하는 이를 좋아한다. 막걸리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누룩, 효모, 발효 같은 단어들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막걸리를 처음 접한 그들의 입맛을 어떻게 사로잡을까 고민이 시작됐다. 고민 끝에 부드러운 막걸리부터 마셔보라고 권했다. 공주 알밤을 넣어서 만든 막걸리인데 한국에서 유명한 밤 아이스크림(바밤바)과 맛이 비슷하다.
“진짜 맛있다!”, “이런 맛은 처음이다!” 반응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뜨거웠다. 그들은 궁금해하는 것도 많았다. “제가 듣기로는 막걸리가 하얀색인데 이것은 왜 노란 거예요?”, “막걸리의 도수가 어떻게 되나요?” 막걸리에 대해서 수다 떨다가 막걸리 한 통이 금방 사라졌다.
“이제 뭐 먹을까요?” 나에게 또 추천을 부탁했다. 상쾌하고 청량감이 있는 막걸리를 권했다. 쌀 반, 밀 반으로 빚은 상주 은자골 탁배기 한 통을 주었다. “진짜 시원하네요! 우유에 사이다를 섞은 것 아니에요?” 두번째 막걸리도 그들의 입맛에 맞는 모양이었다. “막걸리만 드시지 말고 안주도 좀 드셔야죠.” 한국에서는 보통 술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안주도 같이 먹는다고 설명했다. 안주를 먹으면 술이 덜 취하고 위도 보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안주문화에 익숙지 않아 막걸리만 마시고 싶다고 했다.
한 남자가 나한테 마지막으로 한 병만 더 추천해달라고 했다. 사실 처음부터 소개하고 싶었던 막걸리가 있었다. 부산 금정산성막걸리. “진정한 막걸리의 맛을 한번 느껴보시겠어요? 약간 힘들 수도 있는데.” “그러면 지금까지 마신 막걸리는 진짜 막걸리가 아니었다는 말이에요?” “그게 아니죠. 다 진짜 막걸리들인데 이것은 옛날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달지 않고 시큼한 요구르트 같은 막걸리예요.”
“우와, 이런 맛도 있었어요?” “훌륭하네!” 외국 손님들은 이 막걸리에 홀딱 반해버렸다. 그 이후로 그들은 우리 가게를 종종 찾는다. 특히 안경을 낀 금발머리 남자는 골수 단골이 되었다. 그는 어김없이 금정산성막걸리를 찾는다.
외국 손님들을 만나고 나서 나의 편견은 깨져버렸다. 텁텁하고 시큼한 맛도 외국인의 입맛에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살미넨 따루 ‘따루주막’ 대표
사진 박미향 기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