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16 18:21
수정 : 2013.01.1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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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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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따루주모의 술타령
나는 어릴 때부터 외국어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나라의 말을 배웠다. 시골 출신이라서 그런지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알게 된 한국 펜팔친구들 때문에 한국어도 공부하고 싶었는데 대학교에서 기회를 얻었다. 한국어는 다른 언어들과 확실한 차이가 느껴졌다. 교과서 내용이다. 한국어 교과서에는 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오늘 소주 한잔 할까요?”, “맥주 한잔 얼마예요?” 등의 문장들을 외운 기억이 있다.
술은 한국에 와서 배웠다. 술친구들이 늘 옆에 있어서 재미있는 대학교 술 문화를 많이 소개해줬다. 한국의 술 문화 중 가장 놀랐던 것은 요일을 가리지 않고 마신다는 것이었다. 핀란드에서는 주중에 술을 마시면 이상하게 본다. 안주 문화도 인상적이었다. 군침을 돌게 하는 한국 안주에 반해 1년 동안 먹다가 10㎏이나 쪘다! 술 게임의 재미에 빠져서 친구들이 모이기만 하면 바로 게임하자고 졸랐다. 한국인들과 한잔할 때는 기억할 것이 정말 많다. 두 손으로 따라주고 받는 것, 술을 받으면 잔을 내려놓기 전에 입에 살짝 대는 것, 윗사람과 건배할 때 잔을 낮추는 것, 어른 앞에서 돌아서 마시는 것 등. ‘주도’라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로 술에 대한 애착이 많은 민족인 것만은 분명하다.
‘술’ 하면 핀란드도 안 빠진다. 추운 나라이기 때문에 도수가 높은 술이 발달했다. 국민 술이라고 불리는 ‘코스켄코르바’(Koskenkorva)가 대표적이다. 원래는 감자로 만들었으나 요즘은 보리로 만드는, 38도의 증류주다. 보드카는 아니다. 애칭이 ‘코수’(Kossu)인 이 술은 현재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다. 코수에 암모니아와 감초를 추가하면 핀란드 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살마리’(Salmari)가 된다. 검은색의 한약 향이 풍기는 술이다. 요즘은 센 술보다 맥주나 알코올이 들어 있는 사이다가 대세다. 핀란드 전통술 중에 막걸리 같은 발효주도 있긴 하다. 물, 이스트와 설탕을 넣어서 발효시키는 것인데 아쉽게도 요즘 인기가 없어서 나도 한 번도 마셔본 적은 없다.
한국의 술 문화 중 가장 특이한 점은 장례식장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장례식 때 술을 마시면 안 된다. 한국에서는 많이 마시는 사람들도 있어 신기하고 어색했다. 장례식장에 처음 갔을 때 실수한 기억이 난다. 소주 한잔 받고 건배도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은 아니라고 어르신께서 가르쳐주셨다. 얼마 전 서울 남가좌동 모래내시장에서 40년 넘게 소머리국밥과 수수부꾸미 장사를 하신 이의 남편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갔다. 그분이 남편을 즐겁게 보내야 된다며 막걸리 한잔 내게 권했다. 죽음도 즐겁게 보내겠다는 풍속은 참 좋은 것 같다.
두 나라의 술 문화의 차이 중 하나는 술값이다. 한국은 엄청 싸고 핀란드는 주세가 높아서 엄청 비싸다. 핀란드에서는 알코올로 인한 사회적인 부작용이 많다. 한국인들은 그렇게 마시면서 왜 사회문제가 안 되는지 정말 궁금하다. 핀란드에서는 술을 쉽게 살 수 없다. 도수 약한 맥주만 일반 마트에서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판다. 다른 술은 ‘알코’(Alko)에서 구입해야 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저녁 8시까지만 문 연다. 물론 공통점도 있다. 친해지려고 한잔을 기울이는 점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무뚝뚝한 편이라서 맨정신에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나도 원래 내성적이라서 잘 모르는 사람들과는 거의 한마디도 안 한다. 그런데 한잔하면 있던 벽도 없어지고, 마음도 편해지고 빨리 친해진다. 한잔을 기울이면서 정을 나누는 한국의 술 문화가 내 적성에 더 잘 맞는 것 같다.
살미넨 따루 ‘따루주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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