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6 20:51
수정 : 2013.11.06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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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미넨 따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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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매거진] 따루주모의 술타령
등산을 참 좋아한다. 특히 요즘 같은 맑은 가을날에는 아삭아삭한 공기를 마시면서 산에 올라가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핀란드 사람이기 때문에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산을 찾는다. 그런데 사실은 북한산 같은 ‘인기쟁이’ 산에 가면 혼자 있기는커녕 줄줄이 서서 올라가야 해서 답답하다. 대신에 서울의 내사산(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덜 알려진 산길을 걷다 보면 자연의 향기를 잔뜩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는 등산 갈 때 꼭 챙겨야 하는 것이 몇 개 있다. 최신 등산복(특히 빨간색 옷이 인기 많은 것 같다), 김밥, 모자, 선글라스는 필수품인데 하나 더 붙이자면 막걸리다. 주말에 산에 가면 홍대 앞과 비슷한 풍경이 연출된다. 등산객들이 돗자리를 깔고 큰 소리로 웃으며 친구들과 얘기한다. 돗자리 위에는 김밥도 있고 파란 막걸리 병들도 뒹군다. 등산하다가 막걸리 한잔 하고 누워서 쉬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사진)
사실 나도 산만 가면 막걸리 생각이 절로 난다. 사람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면 에너지 보충이 필요한가 보다. 혼자 가도 배낭에 막걸리 한 병은 꼭 챙긴다. 올라가다가 힘들어도 막걸리 생각에 꾹 참는다. ‘조금만 이따가 마실 수 있다, 조금만 참으면 마실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막걸리는 산에서 마시면 안 되는 것이었다. 지난번에 우리 어머니가 한국에 오셨을 때 산에 같이 갔다. 정상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잔 같이 들이켰다. 그때 산 ㅈ꼭대기를 지키던 군인이 우리에게 다가와 여기서 술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 내려갈 때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이해가 된다. 몸이 힘든 상태에서 갑자기 술이 들어가면 보통 때 마신 것보다 더 빨리 알딸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막걸리를 음료수 병에 담아서 산에 올라갔다가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딱 두 잔만 마신다. 땀을 흘리며 마시는 막걸리 맛은 설탕 뽑기보다도 더 달콤하다.
핀란드 사람들도 힘든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것이 있다. 뜨끈뜨끈한 베리주스다. 특히 스키를 타고 돌아오면 그 주스가 와인처럼 온몸에 퍼지면서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어릴 때 동생과 스키 타러 가면 어머니가 항상 보온병에 그 주스를 넣어 주었는데 아직도 날씨가 추워지면 막걸리보다 그것이 더 먹고 싶어진다. 이 말을 믿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긴 하지만 ㅋㅋ.
봄철 모심기할 때 밥 대신에 막걸리로 허기를 달랬던 것처럼 등산 갈 때도 막걸리를 찾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래도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막걸리는 내려와서 도토리묵무침과 먹는 것이 딱이다. 불광동 염소탕도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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