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11 20:18
수정 : 2013.12.12 12:25
|
사진 살미넨 따루 제공
|
[매거진 esc] 따루 주모의 술타령
어릴 적엔 1년이라는 기간이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 같다. 2012년 송년회를 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13년 송년회를 하라니 말이다. 사실 나는 친구들하고 송년회를 못한 지 3년 됐다. 연말에 주모 자리를 비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신에 많은 손님들의 송년회 모습을 봐왔는데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우선 ‘위하여’를 많이 외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고향이 같은 남자 12명이 왔는데 소주 35병을 마시면서 5분에 한번씩 큰 목소리로 ‘위하여’를 외쳤다. ‘위하여’ 라운드가 끝난 다음에 술 게임을 해 결국 몇 명이 잠들어버렸다. 이런 것이 ‘전통적인’ 송년회라고 할까? 하지만 이런 모습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요즘은 술 대신 공연을 보러 가거나 봉사를 하는 등 다양하고 이색적인 송년회를 하는 회사가 많다고 들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내 친구는 송년회 생각만 하면 벌써부터 죽고 싶다고 한다. 크레용팝 의상을 입고 ‘빠빠빠’를 팀원들과 부르기로 결정이 났다. 평소 쑥스러움이 많은 이 친구는 공연을 하기 전에 막걸리 한잔을 마실 생각이다.
핀란드의 송년회는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작은 크리스마스 파티라고 부른다. 크리스마스가 핀란드의 가장 큰 명절인데 그 전에 친구들과 모여서 파티를 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 파티는 한국의 송년회와 똑같이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난다. 핀란드에서는 회식을 보통 1년에 한번밖에 안 한다. 어쩌다 한번만 하는 것이니만큼 세게 논다. 회사 동료끼리 밥도 술도 먹고, 노래도 부르고, 핑크빛 ‘썸씽’이 일어나기도 한다.
송년회에서 빠지면 안 되는 것도 있다. 선물이다. 모든 사람은 작은 선물을 준비해 와 파티가 끝날 때쯤 무작위로 하나씩 뽑아 갖는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음식이 물론 있어야 한다. 처음은 ‘글뢰기’라는 따뜻한 술부터 시작한다. 글뢰기에는 보드카, 베리주스, 와인과 계피가 들어가는데 재료들을 섞어서 낮은 불에서 천천히 데운 술이다. 데운 다음에 잔에 아몬드 플레이크와 건포도를 넣어서 마신다. 글뢰기는 식도를 거쳐서 배까지 퍼지는 따뜻한 느낌이 최고다. 역시 추운 겨울밤에 글뢰기만한 게 없다.
핀란드식 쌀죽도 준비한다. 한국의 죽과 다른 점은 우유에다 끓인다는 것이다. 설탕과 계피를 넣어 달다. 자두로 만든 푸딩을 위에 얹어서 나눠 먹는 것이 전통이다. 죽 속에 큰 아몬드 하나를 숨겨서 아몬드를 찾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노래를 해야 한다. 한국 친구들에게 핀란드식 쌀죽을 주면 처음에는 적응을 못한다. “죽이 왜 단맛이 나지?”라고 묻는다. 고정관념을 버리면 달콤하고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송년회는 살사 동호회 연말 파티였다. 맛있는 뷔페 음식에다 멋진 공연도 보고 춤도 실컷 췄는데 뒤풀이는 아침까지 이어졌다. 그래도 필름은 안 끊겼다. 올해 나는 친한 친구들과 모여서 홍어에다 막걸리 한잔으로 송년회를 하련다.
사진 살미넨 따루 제공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