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25 20:06
수정 : 2013.12.2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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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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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따루주모의 술타령
한국만큼 폭탄주 문화가 발달한 곳도 없을 것이다. 소맥, 소사, 소콜, 맥콜, 고진감래주, 오십세주, 홍익인간주, 소백산맥 등 셀 수 없이 많다. 얼마 전에 어떤 손님이 나보고 “장사하는 것이 쉽지 않지” 하면서 고진감래할 것이라고 했다. 고진감래 한잔 하자는 말인 줄 알고 재료를 준비하려고 했더니 고진감래라는 것은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뜻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때까지 고진감래는 폭탄주 이름인 줄 알았다. 폭탄주의 주원료는 소주, 맥주나 양주가 많은데 막걸리는 어떨까?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은 ‘막사’가 가장 대표적이다. 사실 폭탄주 개념보다는 칵테일에 가까운 것 같다. 폭탄주는 이 술 저 술 다 섞어서 독한 술을 만드는 반면에 칵테일은 기본 술에 다른 술을 섞을 때도 있지만 과일이나 음료수 같은 것을 섞기 때문에 순하다. 그런데 공통점은 똑같이 ‘훅 간다’는 것이다. ‘막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은데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다음날 속이 아파 많이 고생한다. 한번은 지인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던 중 갑자기 그가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막걸리에 타 먹자”면서! 신기한 것은 ‘막소’는 소주의 맛도, 냄새도 하나도 안 나고 그냥 막걸리 같았다. 참 무서운 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막걸리 붐이 일면서 다양한 칵테일막걸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막걸리에는 보통 다른 술을 섞지 않고 과일주를 섞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는 솔직히 칵테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친하게 지내는 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술집에서 술을 마실 때의 일이다. 홍합탕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서비스로 바나나막걸리가 나왔다. 마시는 순간 정신이 몽롱해졌다. 술에 취해서 그런 게 아니라 맛있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걸쭉하고 달았지만 거부감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워낙 진해서 거의 죽 같았다. 그때부터 가끔 가게에서 배고플 때 직원들하고 바나나막걸리를 만들어 마신다. 정해진 비율은 없고 그냥 바나나 2~3개를 까서 막걸리랑 믹서기에 돌리면 된다. 시럽 같은 것을 첨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바나나가 아주 잘 익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 어떤 막걸리와 섞느냐에 따라서 맛도 달라진다. 고소한 맛을 원한다면 검은콩막걸리와, 시원한 맛을 즐기고 싶다면 청량감이 있는 막걸리가 어울린다. 보드레한 느낌이 좋다면 개도막걸리에 섞는 것이 좋다. 개도막걸리는 팔도 막걸리여행서인 <막걸리기행>에 등장한 술이다. 전남 여수의 개도에서 빚는 막걸리라고 한다. ‘개도’는 작은 섬을 거느리고 있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란다. 섬에서 만든 막걸리라서 다른 곳의 막걸리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나의 바나나막걸리는 사실 술 개념이 아니라 간식이다. 두 잔 마시면 배가 불러서 밥 한 끼만큼 포만감이 생긴다. 바나나막걸리를 마시면서 막걸리의 역사가 생각난다. 역시 막걸리는 끼니 사이에 허기를 달래는 술이다.
살미넨 따루 ‘따루주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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