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7.12 20:05 수정 : 2012.09.14 09:08

영화 예고편을 만드는 김기훈 감독의 편집실엔 거창한 장비 대신 손때 묻은 컴퓨터가 놓였다. 그는 포털사이트에 올린 <도둑들> 예고편에 “재밌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며 웃었다. 사진·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송기자·조피디의 엔딩크레디트 ‘세 줄 밑’] 영화 예고편 감독 김기훈

그는 느닷없이 사랑에 사로잡히는 ‘찰나의 순간’에 빗댔다. “한순간에 사랑에 빠지듯,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한순간을 위해 예고편을 구성하죠.”

그 순간으로 이끄는 그도 “도덕적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다. “예고편은 가장 맛있는 부분을 선별해 요리해 내놓는 거와 같죠. 그런데 제가 봐도 재미없는 영화가 있다는 게 딜레마죠. 그래서 ‘재미있는 영화는 더 재미있게, 재미없는 영화는 덜 재미없게’ 만들려고 하죠.”

타짜·마더·도둑들 등 80편 제작
예고에만 쓸 장면 직접 찍기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 중요해
영화책보다 심리학책 더 봐요”

10일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하하하필름프로덕션’ 김기훈(35) 감독은 “평소 뮤직비디오를 좋아했는데, 영상이 2분 넘어가면 지루하게 느끼는 직업병 같은 것이 생겼다”며 웃었다. 그 자신이 극장용 30초, 온라인용 2분 예고편으로 2시간짜리 영화에 끌리도록 마음을 낚아채는 승부사이기 때문이다. 영화 조감독이 하이라이트 모음 수준으로 ‘개봉박두 예고편’을 편집하던 시대를 지나, 이젠 예고편 전문제작사 감독들이 ‘30초의 유혹’을 만든다. 이런 변화는 영화 <접속>(1997) 예고편을 기점으로 시작돼 2000년대 중반부터 활성화됐다. 김 감독의 프로덕션은 <타짜> <마더> <박쥐> <써니> <완득이> <댄싱퀸> <은교> 등 화제작 80여편의 예고편을 연출했다. 10여개 예고편 제작업체 중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미녀는 괴로워>처럼 예고편에만 쓸 장면을 그가 직접 찍기도 한다. <아저씨> 예고편은 배경음악이 좋아, 거꾸로 영화 마지막 장면에 삽입되기도 했다. 올해 한국영화 최고 기대작 <도둑들>(25일 개봉) 예고편도 그의 손을 거쳤다.

“2월부터 마케팅 담당, 제작사, 투자사들과 모여 어떤 콘셉트로 할지, 내용을 얼마나 노출할지 회의를 했죠. (맛보기) 티저 예고편에선 최동훈 감독과 (스타) 배우들의 조합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을 줄 수 있으니 내용을 많이 감췄고, 메인 예고편은 보석을 훔치는 과정과, 인물간의 갈등이 살짝 드러내는 선까지 보여줬죠.”

전지현과 김수현의 키스장면이 스쳐가는 회심의 카드도 심었다. “요즘 (관심이) 뜨거운 김수현과 전지현이 같이 있는 장면에서 임팩트가 커지는” 효과를 겨냥한 것이다. 짧은 예고편에서도 그만한 설득력이 있어야 관객이 수긍한다고 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남편(이선균)이 아내(임수정)와 이혼하려 하는데, ‘세상에 임수정과 이혼한다고?’ 하며 이해 못하는 관객도 있죠. 배우 이미지가 영향을 끼치는 경우죠. 그래서 예고편도 ‘이렇게 임수정이 예쁜데 영화에서 굉장히 수다스러운 여성’이라는 순서로 보여주면 극적 효과가 살아나는 거죠.”

“영화 작품 자체가 좋으면 가공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가공”이라고 믿는 그는 “사랑의 정서를 전하는” 멜로영화 예고편 연출이 쉽지 않다고 했다. “영화 관계자들이 모여 멜로영화 예고편 회의를 하면, ‘이게 사랑이다’, ‘이게 더 슬프다’며 의견이 제일 많아요. 각자 생각하는 사랑이 다 다르니까요.”

그래서 그는 예고편이 대중과의 팽팽한 심리싸움이라고 보고, 영화서적보다 심리학 책을 더 찾아서 본다. 그는 봉준호 감독이 “예고편이 정말 좋다”며 박수를 쳐줬다는 <마더>를 떠올렸다. “‘원빈과 김혜자씨가 모자 사이다, 살인사건이 났다, 원빈이 잡혔다’ 정도를 보여줬는데, 관객들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각자 스토리를 상상하더라고요. 많은 정보를 주지 않아도, 관객의 상상을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영화 예고편 감독은 영화의 베일을 살짝만 벗기는 직업이다. 블라인드에 감춰진 그의 작업실이 베일 속에 숨은 영화처럼, 살짝 보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하고 6개월간 만화가 문하생을 했던 그는 검정고시를 거쳐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영화 <소름> 조명부 막내 생활과, 광고 촬영부를 지냈다. 2006년 즈음, ‘하하하필름프로덕션’에 있던 과 친구가 “너 홍콩 도박영화도 좋아하니 <타짜> 예고편 만들어볼래?”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영화를 할까, 광고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예고편이 ‘영화 광고’잖아요. 이건 운명이다 싶었죠.”

“영화는 작품으로 남지만, 예고편은 상영이 끝나면 사라지고 마는 게 아쉽지만” 이런 ‘눈물’들이 그를 이 일에 붙잡아두고 있다.

“<로보트 태권브이 복원판>(2007) 예고편 때 과거의 향수가 생각나게 흑백사진들을 직접 찍어 구성했는데, 어떤 분이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예전엔 ‘예고편에 낚였다, 예고편이 더 재밌다’고 하면 좋았는데, 결국 흥행엔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았죠. 관객과의 공감을 더 고민하게 된 거죠.”

삶에서도 그렇듯, 결국 콘텐츠 없이 겉만 치장하는 것은, 마음을 사로잡는 ‘유혹의 기술’이 될 수 없단 얘기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영화 예고편 제작감독인 김기훈 감독은 “재미있는 영화는 더 재미있게, 아주 재미없는 영화는 덜 재미없게 예고편을 만든다”고 말했다. “여기 보세요” 했더니 “이렇게요?” 하며 손가락을 찌르듯 쑥 내민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송 기자·조 피디의 엔딩크레디트 ‘세 줄 밑’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