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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26 20:25 수정 : 2012.09.14 09:44

배우 지망생들이 ‘이용직 액팅스쿨’에서 이씨의 신호에 따라 감정 연기에 몰입하고 있다.

[송기자·조피디의 엔딩크레디트 ‘세 줄 밑’] 연가시 ‘감염연기 지도’ 이용직

첫 출연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에서 대사라곤 “으아아~” 정도였다. “술집 탁자를 엎으면” 되는 역이었다. 극장에 갔더니 그 장면은 편집된 채 보이지 않았다. 영화 끄트머리에 소개되는 ‘건달똘마니2 이용직’이란 이름만이, 사라진 단역의 흔적과 비애를 드러낼 뿐이었다.

1920년대 배경의 영화에서 조연으로 뽑혀 출연 계약을 하러 가려던 아침이었다. “어머니랑 손잡고 좋아하던” 그날, 갑자기 “다른 분이 하게 됐다”는 연락이 왔다. 그 ‘다른 분’은 12년이 지난 지금 스타가 됐으니, 만약 원래대로 그가 출연했다면 이후 ‘고기집 건달1’ ‘양아치1’ ‘선원2’ ‘이씨’ 역들만 해온 배우로서의 궤적이 조금 달라졌을까?

연기자 이용직(39)은 상영중인 저예산영화 <철암계곡의 혈투>에서 비로소 “극중 이름을 가졌다”며 웃었는데, 이 작품에서조차 “작두”로 불린다.

그가 현재 435만명을 모은 영화 <연가시>에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땐, ‘강원 지역 경찰’ 단역을 따내기 위함이었다. 오디션 연기를 본 연출부가 뜻밖의 제안을 또 하나 내밀었다. “기생충 ‘연가시’에 감염된 연기도 한번 보여주실래요?”

서울 논현동에서 운영하는 연기아카데미 ‘이용직 액팅스쿨’에서 23일 만난 그는 <연가시> 배우·스태프 명단에 ‘경찰’ 역과, ‘연가시 감염자 연기지도’란 특이한 직함을 동시에 올렸다. 물을 갈구하는 감염자 모습을 오디션 자리에서 “딱 5분간 고민한 뒤”, 생생히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 몸에 기생하는 연가시가 조종하는 대로 강으로, 수영장으로, 횟집 수족관으로 달려들고, 격리 수용된 체육관에서 목이 말라 절규하는 ‘감염자 보조출연자’들의 집단적 공포연기를 모두 지도했다. 영화의 긴장된 정서를 만든 숨은 공신이지만, 정작 배우로선 영화에서 20초쯤 얼굴을 비춘다.

“소아과 의사로 있는 지인의 병원에 갔어요. 발열·배설·경련을 일으키다 탈수 증상을 보이며 축 처진 아이들의 모습을 많이 참조했죠.”

건달1…선원2…단역인생 십수년
연가시서 생생한 감염 공포연기
영화 긴장감 끌어올린 숨은 공신

연기강사 고생끝 액팅스쿨 운영
“어머니앞 남우조연상 타는게 꿈”

제작진은 “폭력성을 지닌 좀비와는 달리 보였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감염 1·2·3기 증세를 세분화하고, 3기 증상에 대해선 “누가 잡아도 뿌리치지 말고 넘어져도 바로 일어나 물만 보며 직진할 것, 좀비로 보이지 않게 손을 올리지 말 것, 무표정으로 입술이 마른 듯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구체화했다. 그가 가르치는 배우 연습생들과 함께 ‘감염자 연기 시범영상’을 찍어, 영화촬영 2~3주 전부터 무술팀과 단역 연기자들에게 보여주며 지도했다.

“물에 뛰어드는 감염자들은 거의 무술팀들이 했고요. 다른 영화에서 가만히 서 있거나, 지나가는 정도만 연기했던 엑스트라분들은 감염연기가 힘드니까, ‘내가 무슨 배우냐’며 다음 촬영에 안 나오기도 했어요. 그럼 새로 온 분들을 포함해 200~300명 정도를 데리고 촬영 1시간 전에 다시 교육해야 했죠.”

기자에게 감염자 연기를 보여주던 그를 보더니, ‘액팅스쿨’의 한 연습생은 슬쩍 “배우들보다 연기를 더 잘하세요”라고 얘기했다. 이 말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우리들의 잭샘”(이용직 선생님의 애칭)의 연기를 많이 봤으면 하는 바람으로도 들렸다.

“굶는다고 배우 되는 걸 처음엔 부모님이 반대하셨죠.”

“손을 들면 좀비 같으니까 ‘물~!’이라고 외칠 때 한번만 손을 들라고 했어요. 누가 잡아도 싸우지 말고 무조건 앞으로 곧장 가라고 했죠.” 영화 <연가시> 감염자들 연기지도를 위해 이용직씨가 찍은 시범 동영상에서 추린 그의 다양한 얼굴 표정들.
그의 어머니는 여성들이 남성·여성 연기를 모두 하는 ‘여성국극’ 출신 배우 김길자씨다. 그의 나이 19살 때, 악극단 배우이기도 했던 아버지가 암으로 가족 곁을 떠난 뒤, 그는 “그 후 6년간 내 청춘 암흑기였다”고 떠올렸다. 25살에 서울예대 연극과에 들어간 그는 “거기 영화촬영 들어가나요?”라고 물은 뒤 영화사에 프로필을 들고 다녔고, 연기학원에도 들어가 아이들을 가르쳤다. “꽤 인기 있는 연기강사”였지만, 연기자 위탁교육을 맡긴 매니지먼트사가 폐업해 강의료를 주지 않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못 받은 돈이 자동차 벤츠 두 대 값은 될 것”이라며, 아픈 기억을 이젠 웃음 지으며 털어버린다. 오히려 “그래도 통장에 남은 50만원으로 사무실이 있는 여기(액팅스쿨)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그는 남상미·이하나·서효림, 요즘 인기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연인으로 나오는 오연서·강민혁 커플, 씨엔블루·티아라·카라 등 배우 초년생 가수들의 연기 기초를 잡아주기도 했다.

선악이 공존하는 양면성 얼굴을 가진 그는 “한 장면을 찍어도 소중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하죠. 내 연기를 보고, 한 명이라도 울거나 웃고, 그들 삶에 영향을 주는 배우가 되면 행복할 것 같다”면서도, “대중에게 보이지 않으면 배우라 할 수 없으니 이런 얘기도 부끄럽다”고 했다. 그러더니 “빨리 안 될 수 있지만…. 사실 꿈이 있다면…”이라며 다시 말을 뗐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우조연상을 드리고 싶어요.” 그는 올해 일흔셋인 어머니가 그래서, “구십 넘어서까지 오래 아들 곁에 있어주기를” 원했다.

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동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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