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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13 20:23 수정 : 2012.09.14 09:45

9년째 특수분장을 해온 윤황직씨가 11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작업실에서 <공모자들> <이웃사람>에 등장했던 주검 모형 ‘더미’ 앞에 서 있다.

[엔딩크레디트 세 줄 밑] 특수분장 전문 윤황직씨

두팔 잘린 몸·피 묻은 다리…
작업실에 ‘시체’가 주렁주렁
모형이지만 핏줄까지 생생해
해부학 책·수술영상 보며 공부
‘공모자들’ 등 영화 30편 참여
“제 작품이 피노키오처럼 된다면”

작업실에 들어서자,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젊은 여성이 전라의 몸으로 천장에서 기자를 내려다 보았다. 피 묻은 다리와 손들이 고기 덩어리들마냥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가슴이 난도질 당하고, 두 팔이 잘린 몸통도 벽에 걸려 있다. 피부 구멍, 검버섯, 수염을 깎은 직후의 푸르스름한 피부색까지 생생히 표현돼 있다. ‘더미’(Dummy)라 불리는 모형 인형들이라지만, 눈이라도 뜨고 노려볼 듯해 기자는 순간 멈칫했다. 윤황직(33) 실장은 웃음을 지었다.

“저야, 공포를 느끼지 않죠. 진짜처럼 보이면 기분이 더 좋고요. 피와 상처가 잘 표현되면 징그러운 게 아니라 예쁘게 보이고, ‘아~멋있다’란 생각이 들죠.”

이 건물을 청소하는 할머니도 모형 시체가 즐비한 이곳을 이젠 “아무렇지 않게 드나든다”며 웃었다. 배우들 중엔 “자기와 똑같이 생긴 모형 인형을 보지 않으려는 분도 있다”고 했다. 피부와 질감이 비슷한 실리콘으로 만든 “3차원 입체의 자신과 마주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11일 저녁 서울 시내 작업실에서 영화 특수분장 업체 ‘제페토’를 운영하는 윤 실장을 만났다. 물엿과 식용색소를 섞어 만든 피로 범벅이 된 얼굴, 실리콘을 덧대 퉁퉁 부운 눈처럼 보이게 하는 분장에서부터, 시체나 몸에 칼을 대는 장면에 쓰이는 가짜 모형을 만드는 것까지 특수분장이 맡는다. 그는 물컹한 주먹 하나를 가리켰다. “진짜 주먹으로 치면 위험하니까, 가짜 주먹 끝에 달린 쇠 고리를 잡고 때릴 수 있게 만든 거죠.”

그는 최근 동반 흥행 중인 범죄스릴러 <공모자들> <이웃사람>에 특수분장 스태프로 참여했다. 납치돼 사우나실에서 장기가 적출 당하는 여성(정지윤)의 몸은 진짜인 듯 감쪽같지만, 배우의 몸에서 직접 본을 뜬 실리콘 재질의 모형이다. “가발과 눈썹들을 붙이고, 실리콘은 반투명이니까 사람 피부처럼 (분장으로) 색깔을 넣어” 완성했다. “3주간 제작했다”고 한다.

극중 오달수씨의 목에서 피가 쏟아지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다”고 떠올렸다. “피가 흘러나오는 가느다란 관을 목 주변에 두르고 그 위에 인조 피부를 덧댔는데, 목이 두껍게 보이지 않으면서 피가 적절한 순간에 뿜어 나오게 해야 했기”때문이다. 주인공 임창정한테 맞아 동공에 핏기가 서린 최다니엘의 눈엔 실핏줄이 터진 효과를 내는 렌즈를 넣었다. 임창정이 차에 매달렸다가 굴러 떨어지는 장면에선 체형이 비슷한 모형 인형을 사용했다.

<이웃사람>에서 살인범한테 살해당한 경비 아저씨의 모형 손. 주름과 핏줄까지 생생하게 표현됐다.(위), <공모자들>에서 임창정이 차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위해, 배우와 체형만 비슷하게 만든 모형 인형. (아래)
<이웃사람>에선 연쇄살인범(김성균)이 토막낸 경비 아저씨의 시신들을 만들었지만,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잔혹했던 탓인지 영화에선 잘려나갔다. 그는 “손과 얼굴이 잘 표현됐는데 좀 아쉽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주름과 울퉁불퉁한 핏줄이 진짜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살인범이 상대의 머리를 가격하는 데 쓴 둔탁한 둔기도 작업실에 걸려 있었다. “그게 모형이었군요”라고 묻자, 그는 “칼을 휘두르는 장면에서도 진짜 칼을 쓰진 못하죠. 배우가 다칠지도 모르니까요”라고 말했다.

특수분장팀으로 왕성히 활동하는 대표적 업체가 3~4개인데, 그는 “난 아직 배우는 학생 같은 입장”이라고 했다. 특수분장 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선 가장 어리지만 <7광구> <써니>, 개봉 예정인 <간첩> <타워> 등 30편 남짓 참여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영화를 좋아했는데, 좋아하는 일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 “사부”로 부르게 된 특수분장계의 이창만 실장(올 3월 작고)에게 9년 전 “죽도록 일하고 싶다”는 편지를 무턱대고 보냈다. 3년 전 1000만원을 들고 독립해 지하실에 작업실을 얻었고, 지금은 좀더 넓은 공간으로 옮겼다.

“사부께서 이 일은 평소 사람을 관찰하고, 그림 그리고, (조각상을 만드는) 조소를 열심히 훈련하는 기본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죠.”

특수분장을 배우던 20대 시절 끼고 살던 스케치북 하나를 꺼냈다. 잔 근육, 뼈로 이뤄진 사람의 신체를 그린 그림들이었다. 사람 몸을 만들기에, “해부학 책과 관련 사진도 많이 보고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들이 사람 몸을 해부해, 장기를 꺼내는 영상들을 보기도 했죠.”

그는 “관객들이 좀더 자극적이고, 강렬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원하는데, 그런 새로운 효과들을 개발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했다. 회사 이름 제페토는 동화 속 피노키오를 만든 아저씨 이름이다. “(특수분장으로) 만든 것이 (피노키오처럼 영화에서) 살아 움직였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제페토를 꿈꾸는 ‘젊은 청춘’의 작업실 벽엔 “아들이 무엇을 하든 믿어준다”는 어머니가 붙인 부적과 모정이 함께 걸려 있었다.

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영상·사진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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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송 기자·조 피디의 엔딩크레디트 ‘세 줄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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