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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1.01 20:04 수정 : 2012.11.05 23:28

<용의자 엑스> 소품 담당인 김순근 팀장이 31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있는 소품업체 ‘모도아트’ 사무실에서 웃음을 짓고 있다. 김 팀장은 “요즘 다른 영화를 찍느라 두달 넘게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송 기자·조 피디의 엔딩크레디트 ‘세 줄 밑’ 보러가기

소품 창고에 냄비·첼로·가구…
“부잣집·가난한 집 다 채울 양”
여배우 느낌 보라색으로 설정
다리미도 같은색 찾느라 고생
두 달간 집에 못가는 등 바빠
스태프 낮은 임금 올려줬으면

소품 창고 구석의 책꽂이에 헌법·민법·국제법 등의 법학 서적들이 보였다. “창고의 책들로 사법시험을 준비해도 되겠다”고 하자, 그는 “가능할 것”이라며 웃었다. 창고엔 숟가락·도자기·냄비·첼로가방·가구들이 빼곡했다. “여기 소품들로 부잣집이나 가난한 집의 세간살이를 다 채울 수 있죠.”

먼지가 덮인 ‘더 퍼펙트 넘버’(완전한 수)란 수학책도 눈에 띄었다. 현재 145만명을 모은 영화 <용의자 엑스(X)>(감독 방은진)에서 수학 천재교사 ‘석고’를 맡은 배우 류승범이 영화에서 끼고 다닌 책이다. 다른 수학 원서에 책 표지만 만들어 붙였다고 한다. “표지가 실제 원서와 똑같으면 저작권에 저촉될 수 있어 여러 외국 수학 서적들의 표지들을 조합해 만들었죠. 표지를 짙은 청색으로 만들어 어두운 ‘석고’의 분위기를 표현했고요.”

[엔딩크레디트 세줄밑] ‘용의자X’ 소품 팀장 김순근

31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서 만난 소품업체 ‘모도아트’의 김순근(36) 팀장은 “관객들은 모르겠지만…”이라며, <용의자 엑스>의 ‘숨은 소품’ 몇 가지를 꼽았다.

“석고의 방의 시계가 총 10개예요. 숫자에 민감한 캐릭터이니까요. 집착하는 성격을 보여주려고 연필통의 연필들도 모두 뾰족하게 깎아두었죠. 옆집 여자 ‘화선’(이요원)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색을 보라색 계통으로 잡았는데, 화선이 전남편의 목을 졸라 죽일 때 쓰는 (전깃줄이 달린) 다리미도 흰색 바탕에 보라색이 있는 걸 구입했죠.”

주인공 ‘석고’를 맡은 류승범이 소품으로 사용한 수학원서.
“이건 (소품 담당들의) 잔재미인데”라며, ‘화선’의 조카가 학교에서 받은 상장과 트로피 소품을 제작하면서, “상장 속의 교장선생님 이름을 내 이름으로 적었다”고 했다. 화선이 “그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어 석고에게 건넨 종이는 영화 막판 눈물을 자극하는 장치인데, “이요원씨가 아니라, 미술팀 스태프가 쓴 글씨”라고 했다. 그는 “화면에선 쓱 지나가는 그런 작은 소품들이 모여 (영화 흐름을 이어가는) 하나의 큰 이미지를 만든다”며 “카메라 앵글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소품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어떤 소품은 중요한 상징물이 되기도 하고,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용의자 엑스>에서 화선이 이사를 와 석고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며 짓는 미소는, 석고가 화선이 살인 혐의에서 벗어나도록 알리바이를 짜주며 희생하는 동기가 된다. 그때 음식인 ‘잡곡 주먹밥’이며, 화선이 석고를 위해 싸준 ‘데리야키 치킨’ 도시락 모두 미혼인 김 팀장이 만들었다. “영화가 보통 외진 곳에서 촬영하니까, 재료를 사다 현장에서 만드는 게 낫다 싶어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용의자 엑스>에서 조민범(조진웅) 형사의 경찰공무원증.
어떤 물건이 언제 쓰일지 몰라 고물상에서 물건을 가져오기도 하고, “영화에 딱 맞는 그림이 있으면 화가에게 부탁”하기도 해야 하며, 이번 영화의 노숙자촌처럼 없던 공간을 꾸미고 소품을 제작하기도 한다. 책이 많았던 석고의 방은 폐업하려던 부산 헌책방 두 곳의 책을 모두 사서 채웠다. 때론 자신이 입던 작업복들을 이번 영화의 경찰서처럼 형사들이 입는 옷으로 걸어놓기도 한다. 석고가 화선에게 수차례 전화하는 언덕 위 공중전화 부스는 고속도로 터널 안에 긴급전화용으로 설치하려 했던 것을, 한 전화부스 제작업체한테서 어렵게 구했다.

“그런데 그 부스 안에 뜻밖에도 거울이 달려 있었죠. 영화에선 그 거울에 류승범씨의 표정이 담기는 등 중요하게 쓰였더군요. (그 소품을 얻은 게) 운이 좋았어요. 구하기 힘든 것을 찾아냈을 땐 기분이 좋아요.”

요즘 한석규가 주연인 영화 <나의 파파로티>에 참여하느라 “두 달 넘게 집에 못 갔다”는 그는 가끔 “왜 이렇게 험한 일을 하나”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베트남전이 배경인 2008년 영화 <님은 먼 곳에>에선 배를 타고 가는 병사 200명의 군용 가방을 두둑하게 보이게 하려고, 부산 다대포바다 앞에서 밤새 5톤 분량의 왕겨를 가방에 채운 적도 있다.

단편영화 연출을 준비하다, 영화 세트 제작 일을 거쳐 소품 담당을 한 지 7년째인 그는 “작업강도에 비례해 소품 담당 스태프의 낮은 임금도 현실화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소품이 없으면 영화 세트 공간을 채울 수 없으니, 내가 없으면 영화를 못 찍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영화의 모든 물건을 내가 관리한다는 매력도 있다”고 했다.

지방촬영을 마치고 이날 돌아온 김 팀장이 창고 밖으로 나오자, 두 마리의 개가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올해 초 드라마 <난폭한 로맨스>에 출연시키려고 사온 ‘녀석’들이다. 그는 실제 출연한 한 마리는 “합격”으로, 같이 촬영장에 갔다가 캐스팅되지 못하고 돌아온 한 마리는 “퇴짜”로 부른다며, 두 개를 정겹게 바라보았다.

파주/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영상·사진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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