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송 기자·조 피디의 엔딩크레디트 ‘세 줄 밑’ 보러가기
‘남영동 1985’ 미술감독 최연식 차라리 그는 고문실이 “꿈에서라도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의 그 끔찍한 곳을 가늠할 길이 없어서였다.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자료들은 “그곳이 좁았으며, 물고문하는 욕조가 있었고, 자해할 수 없게 책상·의자는 고정돼 있었으며, 근처 서울역 기차소리 정도가 새어들어오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에 머물렀다. 이들은 “몇 층인지도 모르게 끌려갔으며, 복도는 길었고…”라고 그곳을 그려내면서도, 공간 구석구석을 또렷하게 형상화하진 못했다. 그는 “그 공간에서 느낀 공포 때문에 실제 공간을 현실감 있게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다”며, 어쩔 수 없었던 그들의 ‘기억의 한계’를 도리어 안타까워했다. 고문실 내부의 배치도는 고증을 따르되, 공간의 정서는 피해자들이 지금도 지워내지 못하는 두려움이 느껴지게 했다. “공간 구성이 간단하지만 답답하고, 벽으로 가로막혀 있으며, 항상 감시당하는 느낌”을 주려 했다고 한다. “나도 이 안으로 끌려왔다면, 스스로 죽을 수도 없는, 그 답답함이란 어떤 것일까 상상하며 만들었다”는 것이다. 13일 서울 시내 작업실에서 만난 최연식(36) 미술감독은 22일 개봉하는 영화 <남영동 1985>(감독 정지영)의 ‘1985년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실’을 재현했다. 실제 515호보다 갑절은 크게 만든 7평(23.14㎡) 규모 세트를 경기도 양수리 종합촬영소에 지었다. 영화의 90%가 이 공간에서 만들어진다. [엔딩크레디트 세줄밑] ‘남영동1985’ 미술감독 최연식
죽음의 공포 컸는지 기억 한계
“꿈에서라도 봤으면” 마음 간절 무겁고 어두운 흑백톤 많이 써
가해자의 핏빛 서린 눈과 대비
고문 폭력성 도드라지게 설계 515호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에 고문당한 곳이다. 그는 “고문실을 만들며 내 마음도 먹먹했고, 영화 대부분이 한 공간에서 벌어지니까 부담도 컸다”고 했다. 최 감독은 “인물만 컬러로 보이고, 515호 내부는 무겁고 어두운 흑백으로 보였으면 했다”고 한다. 고문당하는 극중 ‘김종태’(박원상)의 발가벗은 몸과, 고문을 가하는 이들의 핏빛 서린 눈, 김종태의 입에 뿌리는 빨간 고춧가루가 515호의 흑백 톤과 대비되어, 고문의 폭력성이 더 드러나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
영화 <남영동 1985〉에서 고문 공간을 재현한 최연식 미술감독을 13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영화 공간을 만드는 미술팀은 마술팀”이라고 말했다.
|
|
영화 <남영동 1985>에 나오는 대공분실에서의 고문 장면.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