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9.24 20:48 수정 : 2012.09.25 15:46

[또다른 성범죄, 청소년 성매매]
거리의 아이들이 운다 ⑤ 착취

가출팸서도 거리서도 ‘성적 착취’
“남자 상대하는 내가 비정상인지
아저씨들이 비정상인지 헷갈려요”

가출 소녀 선화(가명·15)는 거리에서 감금당했다. 학대와 폭력이 싫어 집을 뛰쳐나왔지만 거리에서 또다른 폭력을 만났다. 소녀들을 이용해 돈 버는 어른이 있었고, 돈을 내고 소녀들을 해코지하려는 어른도 있었다.

선화에게 ‘조건만남’을 강요한 ‘가출팸’의 우두머리는 30대 남자였다. 스스로 조직폭력배라고 했다. 자신의 존엄을 팔아 돈을 번 선화는 정작 그 돈에 손도 대지 못했다. “다른 사생활을 아예 못하게 했어요. 밖에 못 나가니 돈 쓸 일도 없고, 돈을 주지도 않고….”

친구들과의 만남은 금지됐다. 선화의 인터넷 메신저 계정도 없애게 했다. 화장실 가는 일조차 허락을 받아야 했다. “감금이나 매한가지였어요.” 다섯달 동안 선화는 날마다 가출팸 우두머리의 지시에 따라 아저씨들을 상대했다. 하루에 세 차례씩 불려 나가는 날도 잦았다.

지난 7월 선화는 가출팸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긴 싫었다. 또다시 혼자가 된 10대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선화는 수수료 1만원에 남자들을 연결해주는 아저씨를 만났다. 처음엔 폭력과 강압에 못 이겨 나섰지만, 이제 선화는 성매매를 생계수단으로 삼는다.

돈을 주고 선화를 이용하려는 어른들이 없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선화의 눈으로 본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법과 도덕을 어기며 10대 소녀를 사려는 어른은 차고 넘쳤다.

“조건만남 하면 참 별사람을 다 보는 것 같아요.” 누구인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일일이 물어보진 않았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도 많아요.” 어느 날엔 스스로 대기업에 다닌다는 아저씨도 만났다. “이런 거 왜 하냐”고 물은 사람은 아저씨가 아니라 선화였다. “어린애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를, 사람을 그냥 도구로 보는 거죠.”

선화를 도구로 취급하는 어른들은 돈으로도 장난을 쳤다. 어리다고 더 만만히 보는 것 같았다. 만남 뒤에 돈을 주지 않고 달아나는 일은 다반사였다. 주로 젊은 사람들이었다. 선화의 ‘스폰서’가 되어주겠다는 아저씨도 있었다. “한달에 230만원 줄게.” 사기꾼이었다.

습관적으로 10대 소녀를 성매매하는 아저씨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아저씨들은 흥정과 요구에 능숙했다. 그들은 단속이나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성범죄 전과자 뉴스가 언론에 오르내리는 순간에도 선화를 찾는 어른들은 줄지 않았다. “집 뛰쳐나와서 남자들 상대하는 제가 비정상인지, 저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아저씨들이 비정상인지 헷갈리기도 해요.”

정혜원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연구원은 선화가 아니라 ‘아저씨들’이 비정상이라고 말한다. “미성년 성매매는 엄연한 아동학대다. 외국에선 미성년자가 동의한 성매매도 강간으로 처벌한다. 한국에선 그런 인식과 제도가 부족하다”고 정 연구원은 말했다. 한국의 법치가 정말 살아있다면 15살 선화를 만난 아저씨들 모두 성폭력 범죄자가 될 것이다.

여전히 날마다 아저씨들을 만나는 선화는 “나이 많은 남자들은 무조건 싫고 더럽다”고 말했다. 11살 때 자신을 추행한 친아버지를 포함해서 그렇다. 가난한 집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는 뒷골목에서, 변두리의 어두운 모텔방에서 선화는 그리고 소녀들은 언제나 약자였다.

제 몸을 밑천 삼아 하루를 사는 선화는 앞으로 살 일이 막막하다. 그만둔 지 1년도 더 된 학교에 돌아가기는 두렵다. 지적 장애를 앓는 동생, 우울증에 걸린 엄마, 자신을 추행한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더 끔찍하다. 쉼터에 가도 감금생활이 시작된다고 들었다. 다른 언니들처럼 집창촌에 들어가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 위 기사와 관련 없음)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 가출한 10대 여학생들이 심야영업을 하는 서울 동대문의 대형 패션상가의 비상구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도 계획도 선화는 하지 못한다. 그저 하루하루 보낼 뿐이다. 꿈이 아주 없진 않다. 누군가 이 무시무시한 거리생활을 끝내게 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그게 누구인지 선화는 아직 잘 모른다. “돈 벌어 성형수술 하고 돈 많은 남자 만나면 되지 않을까요.”

엄지원 박아름 조애진 기자 umkija@hani.co.kr

⑥ ‘둥지’에서는 또다른 성범죄, 아동·청소년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점검합니다.

거리의 아이들이 운다

① 만남
▷ ‘조건만남’ 아저씨들은 제가 미성년자인거 알아요

② 폭력
▷ 주말만 오는 아빠 “엄마 닮은 년” 온몸 때려

③ 탈출
▷ 갈곳 없어 찾아간 가출팸서 대장 오빠 “할 일이 있는데…”

④ 추락
▷ “재워준다고 해 갔더니 성폭행”…병 얻어도 돈 없어 방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거리의 아이들이 운다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