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9.17 20:30
수정 : 2012.09.19 08:57
독일 튀빙겐 독창적 마을 로레토
시는 재개발 밑그림만 그리고
주민이 설계·건축 도맡아 시행
안전하고 생태적인 주거지 탈바꿈
이상형 마을 만들기 사례로 각광
살고 싶은 곳에서 살 권리, 주거권이 현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개발과 철거로 내쫓기기 일쑤였던 시민들이 벗, 자연 등과 이웃하며 사는 행복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독일 튀빙엔시 로레토 마을은 주민들이 공동체를 꾸려 관·기업 위주의 막개발을 막고 대를 이어 살고 싶은 곳을 일궈냈다. 일본 세타가야구는 민·관이 20여년 전부터 자연공원, 공동육아 공간, 임대아파트 등을 만들어 소통하는 주거지를 꾸려가고 있다. 두 곳 모두 주민들이 제 권리를 찾아나서고 자치단체가 이를 뒷받침해 이룬 변화다. 이런 ‘사회혁신’에는 주민이 앞장서는 참여가 필수요소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살 마을을 내 손으로 일굴 수 있을까? 독일 남서부 튀빙엔시 로레토 마을에선 이 꿈이 곧 현실이다. 주민들은 독일 으뜸 도시라며 엄지를 추켜세운다. 자타공인 독일 마을 만들기의 이상형으로 꼽힌다.
네카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튀빙엔시는 서울을 닮았다. 한강 남쪽 강남에 부자 마을이 형성됐고 강북 쪽에 덜 사는 마을이 이뤄졌다면, 네카강은 반대다. 강 북쪽은 대학, 행정기관, 상가 등이 들어서 일찌감치 개발됐지만 남쪽은 더뎠다. 주말인 지난 8일 낮 튀빙엔시 강북 쪽 시청 앞 광장 주변엔 북적댔다.
그러나 네카강을 건너자 한산했다. 강북이 자동차 중심이라면 강남은 자전거·보행자가 더 눈에 띄었다. 로레토 어귀에 다다랐지만 집단 휴가라도 떠난 듯 적막하기까지 했다.
|
독일 튀빙겐시 로레토 마을 옛 프랑스군 카지노(지금은 시민학교) 앞 광장에서 지난 8일 열린 로레토 마을 축제에 참가한 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춤을 추고 있다.
|
100여m 더 들어가니, 이내 사람들의 웃음, 음악, 박수, 환호 등이 가득찼다. 학교 운동장보다 큰 광장에 수백여명이 몰려 있었다. 중심지여서 상가 등이 빽빽할 거라는 예상은 바로 빗나갔다. 해마다 이맘때 열리는 로레토 축제 현장이다. 마을 대표격인 에리카 블래시우스는 “2005년부터 여는 마을 조성 기념 축제”라며 “마을잔치인데 이젠 이웃마을 주민까지 찾아오는 지역 대표 축제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책·장난감 같은 중고 물품 벼룩시장이 섰고, 브라질 민속 무술인 카포에라 시범, 에콰도르 민속춤 등 공연, 만화그리기·종이접기 등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만화가 하이모 킨즐러는 “마을 주민들이 자신의 장기를 선보이거나 재능을 기부하는 축제”라며 “축제를 통해 얼굴을 익히고 마음을 열면서 우리 마을은 독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 됐다”고 자랑했다.
로레토는 ‘3무’, ‘3다’ 마을이다. 차량·담장·다툼은 없고, 공원·개성·수다는 많다는 것이다. 표현처럼 차량과 담장은 눈에 띄지 않고, 대신 공원과 개성 만점 건물들이 수두룩했다. 1991년 튀빙엔시가 로레토 마을을 개발하면서부터 이어져온 마을의 전통이다. 로레토는 ‘주민의 마을’로 유명하다. 주민들은 건축 공동체(바우 게마인샤프트·Bau Gemeinschaft)를 꾸려 직접 마을을 개발했다. 1만8000㎡를 개발하는 데 건축 공동체 50~60개가 꾸려졌다.
우베 불프라트(47) 튀빙엔시 도시건설계획 담당은 “주민들과 시가 독창적인 마을을 만들자고 합의한 뒤, 시는 재개발 밑그림만 그리고 건축 계획, 설계, 시가지 조성, 건축 등 모든 것을 이들 게마인샤프트가 헤쳐나갔다”며 “대규모 건설회사 등을 배제하고, 공개경쟁 입찰로 시공업체를 선택하자 건축비도 10% 이상 절감됐다”고 말했다. 주민 건축 공동체는 마을 외곽에 주차장을 조성하고, 마을 안에 차량을 들이지 않았다. 담장도 두지 않았다. 주차와 담벽이 차지할 공간에다 공동 정원·공원을 조성했다. 대부분 3~5층 건물이지만 외벽 색, 모양, 지붕형태 등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2차 대전 승전국인 프랑스군이 주둔하던 당시 카지노나 병영 건물 등도 고스란히 남겨 재활용했다. 카지노는 시민학교로, 병사 숙소 등은 어린이 교육 공간 등으로 탈바꿈했다.
주민 브랜트 마이어는 “공동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200~300m를 걸어야 집에 닿지만, 걷는 동안 이웃과 이야기하면서 더욱 친해진다”고 말했다.
로레토의 변신에 호응이 크자, 튀빙엔시 북동쪽 루스트나우 1만5000㎡도 2009년부터 또다른 로레토로 개발되고 있다. 2015년까지 조성될 루스트나우에는 ‘역동적인 노인들’이라는 공동체 등 40여개 주민 바우 게마인샤프트가 형성됐다.
주민들이 주축을 이뤄 건축 공동체를 꾸리고 협의하면서 마을을 구상하는 동시에 제 집을 설계·시공하는 사이, 시정부나 기업들은 이를 뒷받침하고 협력하는 로레토 마을 만들기가 독일의 미래형 주거개발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튀빙엔(독일)/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