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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 안 아펙(APEC) 특별회의장에서 열린 제20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참석해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위) 지난 5일 낮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038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에서 일본에서 온 여성사연구회 회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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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책 미래를 열자
② 역사정책 있어야 역사갈등 푼다
최근 한-일 관계를 보면, 정상적인 국가 사이의 외교라고 하기엔 미흡하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느닷없는’ 독도 방문은 그 이후 행보를 보면 잘 짜인 외교 정책의 일환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떤 일관성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독도 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겠다던 청와대는 며칠 지나지 않아 해양시설물 건설과 같은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조처를 잠정 중단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 뒤 대통령은 독도 방문 이유로 ‘위안부’ 문제 미해결을 언급했다. 그것도 모자라 일본 천황의 방한 조건으로 “독립운동하다 돌아가신 분들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그야말로 느닷없음의 연속이었다.
한-일 감정적 외교신경전 가열과거사 청산·교과서 문제 뒷전
한일 역사공동연구위 활동 재개
적극적 자료발굴·진실규명 필요 그런데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 대통령은 일본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발언이 잘못 전달되었다는 변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발언이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일왕이 방한해 한마디 해야 (과거사 문제가) 훨씬 쉽게 해결 된다”는 의미였다고 했다. 대통령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해명을 해야 하고, 그것이 또다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대통령의 ‘돌출외교’가 오락가락 행보를 하는 동안 일본은 일관성 있게 ‘위험한’ 외교를 보여주었다. 독도 문제에 강력 반발하던 노다 총리는 급기야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1993년 ‘위안부’ 강제동원의 국가개입과 강제성을 인정한 이른바 ‘고노 담화’의 계승을 언급했지만,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이후 일본의 정치가들은 앞 다투어 고노 담화뿐 아니라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사죄 발언까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일 양국이 정치 공방을 일삼는 동안 과거사 청산은 더욱 어려워졌다. 한국의 경우에는 독도가 분쟁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외국에 알리는 꼴이 되었다. 무엇보다 연일 이어지는 언론 보도 덕분에 무관심하던 일본인들이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교과서에서 독도 문제를 배워야만 하는 일본 중학생들이 그것이 틀린 이야기가 아니라는 확신과 맹목적인 반한의식을 갖게 만들었다는 점은 뼈아픈 부분이다. 또한 일본의 애국주의적 우경화를 촉진하고, 민주·시민세력의 약화를 초래했다는 점은 오랫동안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 청산문제와 교과서 문제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도 명백하다. 그동안 피해자들이 아무런 실익을 얻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극단을 치닫던 한·일 양국이 택할 수 있는 외교적 대응은 두 가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정치적 이득을 위한 공방을 일삼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 정권 아래서 정치적 타협을 시도하는 것이다. 또다른 한 길은 한-일 관계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과거사 청산 전반에 관한 대화와 대전환을 모색하는 방법이다. 두 정권이 20%대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지지율과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남겨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자의 길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공은 다시 시민사회로 돌아왔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정권의 이해관계보다는 피해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사외교 정책을 요구해 왔다. 피해자들은 수십 년 동안의 싸움 끝에 한국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과 식민지 지배 자체가 불법행위였음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사법부의 판결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런 불합리함을 원천적으로 지탱해주는 것이 한일협정 체제임이 증명되었다. 또한 한-일 간의 과거사 청산 문제는 개별 문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음도 명백해졌다. 한 달여의 불필요한 공방을 통해서 한·일 시민사회는 본질적인 해결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강제성에 대한 증거 논란보다는 적극적인 자료 공개와 학술적 진실규명이 먼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권의 향배와 무관한 일관된 역사정책이 한·일 양국을 관통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한-일 간 모든 과거사를 논의할 수 있는 민관합동의 대화기구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최종적으로 이 기구가 한일협정 체제의 불합리함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협정체결을 중재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지원한다면, 좀더 본질적인 해답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두 정권이 1년 이상 정지시켜 놓은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먼저 재개해 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것이다. 한 가지만 더 유념하자. 한국이 풀어야 할 역사분쟁의 과제는 비단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만은 아니다. 중국과의 분쟁은 당장 현실문제가 되어 있다. 한-일 간에 외교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동안 중-일 간에는 영토문제가 가장 큰 외교문제가 되었다. 한국은 장기적으로는 베트남·북한·미국 등과도 역사청산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은 과거사 청산이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의미한다. 일본과의 과거사 청산 경험은 장래의 분쟁에 좀더 올바르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한-일 과거사 청산의 새로운 역사정책이 절실하다. 이신철/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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