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9.11 19:37
수정 : 2012.09.1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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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학술단체협의회·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422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역사정의실천연대’ 발족 기자회견에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 개악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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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입맛대로 역사교육 개정
교육 중립성 심각하게 훼손돼
수정된 역사교육과정 철회하고
민간참여로 중립성 확보 과제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가 고시한 ‘2009 개정 교육과정’과 그에 따라 제시된 교과서 집필 기준은 역사학계와 교육현장을 큰 혼란에 빠뜨렸다.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쳐 쓰게 하는 등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어져온 역사 인식과는 다른 인식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2009 개정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에 따라 새로 쓰인 중학교 역사 교과서 9종은 현재 검정을 통과해 교육 현장에서 채택을 위한 검토를 거치고 있다.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내년에 검정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처럼 논란이 많았던 새 교과서의 내용은 과연 어떨까? 검정 교과서들을 검토해본 이성호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집필진이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의 문제점을 최대한 의식해, 기존 교육과정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면서 썼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예컨대 집필기준에 따르느라 ‘자유민주주의’란 용어를 쓰지 않을 수 없지만, 제목에서 한 차례 제시하고 지나가는 등 대부분의 교과서들이 논란 많은 교육과정 내용과 집필 기준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역사학계와 교육계가 정치적 입김에 맞서 수세적이나마 방어에 성공한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된 건 아니다. 사회·도덕 과목에서는 ‘민주주의’를 가르치는데 역사 과목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하는 모순은 교육 현장에서 해결할 방법이 없다. 제헌 헌법에 담긴 다양한 이념적 갈래도 설명하기 어렵다. ‘선방’이라곤 해도, 이승만의 독립운동이나 이승만 정부의 공에 대한 기술이 기존보다 늘어나는 등 새 교육과정·집필기준의 의도가 교과서에 반영된 것도 사실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교육 과정을 다시 손질할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교육 현장에 또 한 차례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 불가피하다. 결국 교육 현장에 침투한 정치적 입김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만드는 것이다.
안병우 한신대 교수는 “역사 서술과 역사 교육의 내용에 정부가 직접 개입함으로써 그동안 표방해온 교육의 중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됐을 뿐 아니라 역사 교육의 정치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한다. 결국 역사 교육의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과제라는 것이다.
안 교수는 먼저 지난해 정상적 절차를 따르지 않고 수정된 역사 교육과정을 철회하고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또 정권의 성향에 따라 역사 교육의 방향과 내용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교육과정 개정에 10~12년 정도 일정한 주기를 설정하는 방법과 교육과정을 ‘대강화’하고 집필기준을 폐지하는 등 교육 현장의 재량권을 키우는 방법을 제시했다. 역사 연구·교육 전문 학회 등 민간 주체들이 역사 교육 내용을 주도하게 하고, 검정위원을 선정할 때 학계와의 협의를 거치도록 하거나 역사 과목을 사회 교과로부터 별도 교과로 독립시키는 등의 조처도 대안으로 제안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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